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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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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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목사(光州牧使) 김윤현(金胤鉉) 6월 16일 도임 보고
    호남계록(湖南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22년(1885)6월 24일 승정원 개탁이번에 도착한 광주 목사(光州牧使) 김윤현(金胤鉉)의 첩정(牒呈)에, “목사는 통훈 대부(通訓大夫) 황해도 서흥 부사(瑞興府使)로 올해 4월 14일 정사(政事)에서 본직에 이배(移拜)되어, 하직인사는 생략하라는 관문(關文)을 받들고 6월 16일에 도임(到任)하였습니다.”라고 보고해 왔습니다. 연유를 치계하오니 잘 아뢰어 주소서.광서 11년 6월 24일
    2023-08-16 | NO.570
  • 광주목사(光州牧使) 김윤현(金胤鉉)을 사관(查官)으로
    호남계록(湖南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22년(1885)12월 10일 승정원 개탁이번에 도착한 형조(刑曹)의 계하 관문(啓下關文)에, “이번에 계하한 본조(本曹)의 계목(啓目)에, ‘올해 3월 15일 동가(動駕)하실 때 위외(衛外)에서 격쟁(擊錚)한 사람의 원정(原情)은 정식에 따라 후록(後錄)하였습니다. 그 원정을 가져다 살펴보니, 화순(和順)에 사는 전(前) 현감(縣監) 김규문(金奎文)의 처 지씨(池氏)가 자신의 수양자(收養子)인 김봉근(金鳳根)이 멸륜패상(滅倫敗常)을 끝도 없이 행하고 패악한 무리와 한통속이 되어 제 어미를 구박하고 가산을 탕진하여 굶어죽을 지경을 면하기 어려우니 김봉근을 파양(罷養)하게 하고 패악한 무리를 엄히 징계해서 풍화(風化)를 바로잡기를 청원한 일입니다. 패악한 습속은 우선 두더라도 윤기(倫紀)가 관련되는 일이니 본도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여 바로잡아 다시는 번거롭게 호소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아뢴 대로 윤허한다고 판하(判下)하였다. 판부의 뜻을 잘 받들어 시행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그 원정(原情)은 전례대로 관문에 후록(後錄)하였기에, 이 소장(訴狀)의 사연을 보니 비록 단지 동성(同姓)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수양한 은혜가 없지 않은데 검을 뽑고 돌을 드는 등 말할 수 없는 짓을 하고, 패악한 무리와 한통속이 되어 집에 간직하던 물건을 탈취하고 제 어미를 구박하여 굶어죽을 지경을 면하기 어렵다고 하니, 패륜(敗倫)과 멸법(蔑法)이 이보다 심함이 없다. 자세히 그 정상(情狀)을 조사하여 과연 원사(爰辭)와 같으면 김봉근을 파양하고 엄히 징계해서 풍화를 바로잡고, 한통속인 패악한 무리 신재홍(申在洪) 등은 모두 엄히 처분하여 그 죄를 징계하고, 훔쳐 팔아먹은 전답(田畓)의 답권(畓券 논문서), 타조(打租) 등의 물건은 일일이 찾아 주어 다시 호소하는 폐단이 없게 하며, 거행한 상황을 전례대로 계문(啓聞)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즉시 도착한 형조의 관문 요지〔節該〕에, “원래의 관문이 영에 도착하기 전에 추심(追尋)하여 중도에 이미 다시 상고하였다. 원래의 관문이 도착한 날에 전례대로 시행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상 관문 2통의 내용이었습니다.일이 윤기(倫紀)에 관계되어 더구나 갑절 더 신중하게 살펴야 하므로 광주 목사(光州牧使) 김윤현(金胤鉉)을 사관(查官)으로 별도로 정하여 그로 하여금 철저하고 상세히 조사하게 해서 풍화를 바로잡고 패악한 무리는 죄를 징계하도록 하였습니다. 답권과 타조를 찾아 주는 일은 관문의 내용에 따라 거행할 계획입니다. 연유를 아울러 치계(馳啓)하오니 잘 아뢰어 주소서.광서 11년 12월 초10일[주-D001] 격쟁(擊錚) :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이 궁궐에 난입하거나 임금이 거둥할 때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자신의 사연을 직접 호소하는 행위.[주-D002] 타조(打租) : 소작료 징수 관행의 하나로 농작물을 수확하고 탈곡, 도정까지 하여 소정의 비율에 따라 지주에게 납부하는 것. 가장 널리 행해진 방식임.
    2023-08-16 | NO.569
  • 광주목사(光州牧使) 김윤현(金胤鉉)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
    호남계록(湖南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23년(1886)정월 13일 승정원 개탁매년 봄 맹월(孟月 1월)에 동반(東班 문반(文班)) 3품 이상 서반(西班 무반(武班)) 2품 이상은 각각 수령과 변장에 합당한 사람을 천거하되 모두 세 사람을 넘을 수 없다고 법전에 실려 있습니다. 신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병사(兵使) 조희철(趙羲轍)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나주 목사(羅州牧使) 박규동(朴奎東)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광주 목사(光州牧使) 김윤현(金胤鉉)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능주 목사(綾州牧使) 홍우경(洪祐慶)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남원 부사(南原府使) 민길호(閔吉鎬)가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진도 부사(珍島府使) 장봉진(張鳳鎭)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장흥 부사(長興府使) 유치희(兪致喜)가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순천 부사(順天府使) 이범진(李範晉)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담양 부사(潭陽都護府使) 김승집(金升集)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장성 부사(長城府使) 이희(李僖)가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무주 부사(茂朱都護府使) 김우근(金右根)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여산 부사(礪山府使) 이인술(李寅述)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방답 첨사(防踏僉使) 우창배(禹昌培)가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고금도 첨사(古今島僉使) 정흥득(鄭興得)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임자도 첨사(荏子島僉使) 김효원(金孝源)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도합 단자 32건을 모두 봉하여 올려 보냅니다. 그런데 제주 목사(濟州牧使) 홍규(洪圭)가 천거하는 단자는 동 주가 바다 밖 절도(絶島)라서 아직 나오지 않았으므로 보고해 오기를 기다려 추후에 올려 보낼 계획입니다. 연유를 아울러 치계하오니 잘 아뢰어 주소서.광서 12년 정월 13일관찰사 윤(尹)의 천거 단자수령(守令)에 적합한 3인…전(前) 봉사(奉事) 김요영(金堯英), 전 참봉(參奉) 황병수(黃秉秀), 전 가감역(假監役) 김동석(金東錫).변장(邊將)에 적합한 3인…절충 장군(折衝將軍) 장희풍(張喜豐), 절충 장군 이재섭(李在燮), 가선 대부(嘉善大夫) 김준희(金俊喜).병사 조희철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공사관(公事官) 이기방(李起邦), 선전관(宣傳官) 정희열(鄭熙烈), 선전관 한규석(韓珪錫).변장에 적합한 3인…사과(司果) 신태훈(申泰勳), 절충 장군 방수찬(房洙燦), 출신(出身) 백동조(白東祚).나주 목사 박규동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전 감역(監役) 서인순(徐璘淳), 전 감역 정재범(鄭在範), 석성 현감(石城縣監) 이주필(李周弼).변장에 적합한 3인… 전 오위장(五衛將) 손응설(孫應契), 전 오위장 최정권(崔廷權), 출신 김보선(金普善).광주 목사 김윤현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창평 현령(昌平縣令) 윤원(尹瑗), 정읍 현감(井邑縣監) 한용원(韓龍源), 임실 현감(任實縣監) 이문연(李文淵).변장에 적합한 3인…전 오위장 최시묵(崔時黙), 전 오위장 최형식(崔亨植), 출신 박의풍(朴義豐).능주 목사 홍우경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호조 좌랑(戶曹佐郎) 박교양(朴敎陽), 동몽교관(童蒙敎官) 윤상철(尹相澈), 태릉 영(泰陵令) 홍종철(洪鍾喆).변장에 적합한 3인…전 사과(司果) 박지규(朴志奎), 전 오위장 김필현(金弼鉉), 전 사과 문찬석(文贊錫).남원 부사 민길호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김병완(金炳琬), 경모궁 영(景慕宮令) 오우선(吳友善), 금부도사(禁府都事) 이능구(李能九).변장에 적합한 3인…전 오위장 백재명(白載明), 전 오위장 이진항(李震沆), 전 수문장(守門將) 백영균(白永均).진도 부사 장봉진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이희일(李熙一), 부장(副將) 심흥택(沈興澤),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 이교영(李敎榮).변장에 적합한 3인…출신 방병구(方柄九), 출신 허상(許尙), 출신 김필조(金弼祚).장흥 부사 유치희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창평 현령(昌平縣令) 윤원(尹瑗),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만익(李萬翼), 무장 현감(茂長縣監) 이희익(李熹翼).변장에 적합한 3인…사과(司果) 위남(魏楠), 사과 엄흥국(嚴興國), 사과 김용달(金龍達).순천 부사 이범진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공조 정랑(工曹正郎) 이범선(李範善), 금부도사 심상황(沈相璜), 부사과(副司果) 이교석(李敎奭).변장에 적합한 3인…출신 정치명(鄭致明), 출신 최상헌(崔祥獻), 출신 이기민(李基民).담양 부사 김승집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창평 현령(昌平縣令) 윤원(尹瑗), 임실 현감(任實縣監) 이문연(李文淵),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 오영석(吳榮錫).변장에 적합한 3인…금성 별장(金城別將) 박동국(朴同國), 전 오위장 김관표(金寬杓), 전 오위장 국은묵(鞠殷黙).장성 부사 이희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창평 현령(昌平縣令) 윤원(尹瑗), 동복 현감(同福縣監) 조성희(趙性憙), 옥구 현감(沃溝縣監) 기양연(奇亮衍).변장에 적합한 3인…전 별장 이용중(李容中), 전 만호 김종우(金鍾祐), 전 만호 김두환(金斗煥).무주 부사 김우근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전 부솔(副率) 김병식(金炳軾), 전 판관 양주방(梁柱邦), 전 감역(監役) 김석구(金錫九).변장에 적합한 3인…한량(閑良 무과 응시자 혹은 무반 출신자로서 아직 무과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 김재홍(金在洪), 출신 김환창(金煥昌), 한량 김문귀(金文龜).여산 부사 이인술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전 우후(虞候) 오윤영(吳允泳),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 이병덕(李秉德), 전 사과 서상선(徐相璇).변장에 적합한 3인…동지(同知) 황종구(黃鍾九), 전 만호 이성윤(李盛潤), 중추부사(中樞府事) 강응주(姜應周).방답 첨사 우창배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김재석(金在奭), 중추부사(中樞府事) 이승윤(李承潤),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 손은달(孫殷達).변장에 적합한 3인…자헌 대부(資憲大夫) 최두환(崔斗煥), 가선 대부(嘉善大夫) 임병섭(林秉燮), 절충 장군(折衝將軍) 오준환(吳俊煥).고금도 첨사 정흥득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통훈 대부(通訓大夫) 김수억(金壽億), 전 감목관(監牧官) 한억길(韓億吉), 전 수문장(守門將) 이종선(李鍾善)변장에 적합한 3인…가선 대부(嘉善大夫) 천재길(千載吉), 가선 대부 신흥성(申興成), 출신 박원근(朴元根).임자도 첨사 김효원의 천거 단자수령에 적합한 3인…전 교리(校理) 신덕균(申德均), 전 감역(監役) 정해추(鄭海陬), 전 주서(注書) 고시면(高時勉).변장에 적합한 3인…출신 김홍석(金泓錫), 출신 이봉식(異鳳植), 출신 김선익(金善翼).[주-D001] 출신(出身) : 문ㆍ무과(文武科) 또는 잡과(雜科)에 급제하고 아직 출사(出仕)하지 못한 사람. 주로 무과 급제자를 지칭함.[주-D002] 우후(虞候) : 조선 시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의 보좌관으로서 병마우후(兵馬虞候)는 종3품, 수군우후(水軍虞候)는 정4품이었다. 병마우후는 병사(兵使)의 유고(有故) 시에 도내의 군사 전반을 다루는 일 외에도 여러 읍(邑)을 순행하면서 지방군 훈련, 군기(軍器) 정비 상황 등을 살피고 명령 전달과 군자(軍資)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수군우후는 충청도, 전라좌ㆍ우도, 경상좌ㆍ우도의 5수영(水營)에만 있었는데 그 역할은 병마우후와 유사했을 것으로 추측됨.
    2023-08-16 | NO.568
  • 광주목사(光州牧使) 민영우(閔泳愚) (1886.6.27. 제수)
    호남계록(湖南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23년(1886)9월 26일 승정원 개탁이번에 도착한 광주 목사(光州牧使) 민영우(閔泳愚)의 첩정(牒呈)에, “목사는 통정 대부(通政大夫) 강원도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지난 6월 27일 정사(政事)에서 본직에 제수되고 하직인사는 생략하라는 관문(關文)을 받들고 9월 16일에 도임(到任)하였습니다.”라고 보고해 왔습니다. 연유를 치계하오니 잘 아뢰어 주소서.광서 12년 9월 26일
    2023-08-16 | NO.567
  • 광주목사(光州牧使) 조이숙(趙怡叔)이 부채를 보내 준 데 대해 사례하면서 장구(長句)로 소회(所懷)를 읊다 - 택당선생 속집 제3권
    광주목사(光州牧使) 조이숙(趙怡叔)이 부채를 보내 준 데 대해 사례하면서 장구(長句)로 소회(所懷)를 읊다. - 택당선생 속집 제3권 / 시(詩)  :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합죽선(合竹扇)에 바람 일자 송화(松花) 가루 부스스 / 湘筠發籟松墮膩힘찬 붓글씨에 용이며 뱀이 꿈틀꿈틀 / 紙背透見龍蛇字편지 뜯고 부채 보며 홀로 탄식하면서 / 開書覽物獨歎息우리 님의 진중한 뜻 감사를 드렸다오 / 爲謝美人珍重意생각하면 뇌우가 이반을 일으킬 때 / 憶昨雷雨振泥蟠공 역시 관복(官服) 입고 금문에 들어와서 / 公亦束帶來金門선실의 자문 받들어 은밀히 논했나니 / 密論時承宣室問오직 일편단심이라 드높은 한상도 몰랐지요 / 危衷不識漢相尊장부에겐 높은 벼슬 그저 초개(草芥)일 뿐 / 男兒軒冕付土苴조복(朝服) 벗고 전성백(專城伯) 부임하실 때 / 金帶去作專城居마루 위에 촛불 켜고 시가(詩歌)를 읊고 / 高吟舊刻堂上燭남문(南門)의 옷깃 부여잡고 이별주를 들었지요 / 別酒仍摻郭南裾휴옹은 벌써 작고하고 악옹은 귀양을 가 있으니 / 休翁已歿岳翁幽천지가 넓다 한들 우리가 설 땅이 어디리요 / 天地雖寬吾輩隘문성 역시 태미 옆에 계셔야 옳겠거늘 / 文星合在太微側어찌하여 초라하게 남극과 짝하고 계시나요 / 落落胡爲伴南極 무등산 꼭대기 줄지은 돌기둥 한번 보소 / 君不見無等山頭片石橫하늘 흐려 비 올 적엔 소리내어 크게 울 듯 / 天陰欲雨時一鳴 가을 쑥대 속에 파묻혔다 무시마오 / 莫欺埋沒秋蓬中한밤중 산골짝에 맑은 무지개 토하리니 / 猶令夜壑吐晴虹[주-D001] 조이숙(趙怡叔) : 이숙은 조희일(趙希逸)의 자(字)이다.[주-D002] 뇌우가 …… 때 : 인조반정이 일어난 때를 말한다. 이반(泥蟠)은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용(龍)을 뜻한다. 조식(曹植)의 ‘청초강강동표(淸招降江東表)’에 “구름 위로 솟구칠 수 있는 것은 흙탕물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요, 뒤에 펼 수 있는 것은 그 전에 구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夫凌雲者 泥蟠者也 後伸者 先屈者也]”라는 말이 있다.[주-D003] 금문(金門) : 학사(學士)가 대조(待詔)하는 금마문(金馬門)의 준말로, 보통 학사원(學士院) 혹은 조정의 뜻으로 쓰인다.[주-D004] 선실(宣室) : 한(漢) 나라 미앙궁(未央宮)에 속한 궁전 이름으로, 황제가 재계(齋戒)하던 곳인데, 한 문제(漢文帝)가 이곳에서 가의(賈誼)를 접견하고 자문을 구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48 賈誼傳》[주-D005] 한상(漢相) : 한 나라 가의(賈誼) 당시의 재상이라는 말로, 즉 조희일 당시의 정승이었던 이원익(李元翼)을 가리킨다. 인조(仁祖) 2년에 이원익과 절친한 인물이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있었는데, 그는 적임자가 못 된다고 조희일이 탄핵하자, 이원익이 이를 받아들여 체직(遞職)시키도록 했던 일이 있었다.[주-D006] 전성백(專城伯) : 하나의 성읍(城邑)을 전담하는 어른이라는 말로, 지방 장관의 별칭이다.[주-D007] 마루 …… 읊고 :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마루 위에 촛불 아직 켜기도 전에, 자리 털고 일어나며 벌써 갓을 바로 쓰네.[堂上燭未秉 座中冠已峨]”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3 詠興五首》[주-D008] 휴옹(休翁)은 …… 가 있으니 : 휴옹은 심광세(沈光世)의 호이고, 악옹(岳翁)은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을 가리킨다. 심광세는 인조 2년(1624)에 이괄(李适)의 난으로 피난한 왕의 행재소(行在所)를 찾아가던 도중에 부여(扶餘)에서 병사(病死)하였고, 이안눌은 이괄의 난을 방관했다는 삼사(三司)의 탄핵을 받고 부처(付處)되었다.[주-D009] 문성(文星) …… 계시나요 : 문재(文才)가 뛰어난 조희일이 임금 옆에서 보좌하지 못하고 남쪽 고을 수령으로 물러나 있다는 말이다. 문성(文星)은 문재(文才)를 주관한다는 문창성(文昌星) 혹은 문곡성(文曲星)을 가리키고, 태미(太微)는 북두칠성 근처의 별자리로 제왕 혹은 조정을 가리킨다.[주-D010] 무등산 …… 울 듯 : 광주(光州) 무등산 서쪽 양지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 개가 즐비하게 서 있어 일명 서석산(瑞石山)이라고도 하는데, 하늘이 가물다가 비가 오려고 할 때나 오랫동안 비가 오다가 개려고 할 때에는 산이 우는 소리가 수십 리 밖까지 들린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5 光山縣》*서석대 입석대 광석대[주-D011] 한밤중 …… 토하리니 : 조희일의 맑고도 의기(義氣)에 찬 노래가 울려 펴질 것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조식(曹植)의 ‘칠계 팔수(七啓八首)’에 “옷소매를 휘날리니 구주(九州)에 바람이 일고, 격앙(激昻)을 하니 그 의기(義氣)가 무지개로 비추도다.[揮袂則九野生風 慷慨則氣成虹蜺]”라는 표현이 있다.
    2020-09-27 | NO.566
  • 광주목사로 부임하는 곽문징(郭文徵)을 전송하는 서(送郭光州文徵序)
    아! 수십 년 동안에 군과 나눈 만남은 항상 나그네 길에서였다. 지금 나는 가련하게도 벌써 늙어 인사(人事)를 기약하기 어렵다. 더구나 광주는 경성에서 천 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닌가.미수(眉叟) 허목(許穆) 《기언》 별집 제8권 / 서(序)
    2023-06-28 | NO.565
  • 광주목사의 운을 쓰다〔用光牧韻〕- 기대승
    객지에서 상봉하니 흥이 쉬이 일어나 / 客路相逢興易漫한잔 술로 다시 붉은 얼굴 빌렸네 / 一杯聊復借紅顔성안에는 일 많은 줄 오래전에 알았지만 / 久知城郭眞多事운림에도 한가롭지 못함 아울러 깨달았네 / 倂覺雲林亦不閑바람 힘이 점점 가벼워 나무에 연기 어리고 / 風力漸輕烟拂樹봄기운 못 움직이니 눈이 산을 묻었구나 / 春光難動雪埋山지난날 손을 잡은 무궁한 뜻은 / 向來把手無窮意스스로 유유히 가고 옴을 자유롭게 하세 / 且自悠悠任往還/고봉집 제1권 / [시(詩)○외집(外集)]
    2023-06-16 | NO.564
  • 광주와 나주의 유생(儒生)에게 답함 - 한수재선생문집 제19권
    광주와 나주의 유생(儒生)에게 답함 - 한수재선생문집 제19권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1641~1721)삼가 보내 주신 편지를 받아 보고 고해 주신 뜻을 잘 알았습니다. 지난번에 김생(金生)이 나주 제유(諸儒)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두어 분[數公]의 배향에 관한 일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생각에는, 두 박공(朴公)은 향사하는 곳이 한두 군데에 그치지 않고, 관해(觀海 임회(林澮)) 역시 조정에서 정포(旌褒)하는 은전을 입었으니, 온 고을의 공공한 논의를 인하여 이미 건립된 사우(祀宇)에 배향되는 것이 별로 해로울 것이 없을 듯하기에, 매우 훌륭한 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첨존(僉尊)의 편지가 이와 같으므로, 이제야 비로소 다사(多士)들의 의논이 서로 모순됨이 있음을 알고서 자못 의아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일의 여하를 막론하고 과연 당초부터 온 고을의 공공한 뜻이 아니었다면 이 천 리 밖에 있는 내가 어찌 강제로 권하거나 저지할 수 있겠습니까.대저 경현서원(景賢書院)과 월정서원(月井書院)에 대해서는 내가 외람되이 원임(院任)이 되어 있으니, 원중의 모든 일은 부득불 참여해야겠지만 그 밖의 향론(鄕論)이야 어찌 일마다 간섭해야겠습니까. 모름지기 양찰하시어 다시는 그런 일을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하사우(西河祀宇 서하는 이민서(李敏叙)의 호임)를 별도로 세우는 일에 대해서는 의논이 이미 귀일되었다 하니, 앞으로는 서로 싸움의 단서가 없겠습니다.
    2020-09-29 | NO.563
  • 광주의 무등산을 보며[光州無等山] - 점필재집 시집 제21권
    광주의 무등산을 보며[光州無等山] - 점필재집 시집 제21권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푸르고 푸른 서석산 가을 하늘에 솟았는데 / 蒼蒼瑞石聳秋空보통 십 일 동안을 안중에 들어온다네 / 十日尋常在眼中희경루 앞에서 다시 머리 돌려 바라보니 / 喜慶樓前更回首구름 연기 잠깐 걷히자 영궁이 보이누나 / 雲煙纔罅見靈宮이슬비 자욱이 내려 산 기운 차갑더니 / 煙雨冥濛積翠寒오늘 아침에 해 돋으니 봉우리를 드러내네 / 今朝日出露巑岏우뚝한 것이 끝내 여러 산의 어른이라 / 嵬然終是群山長두류산 꼭대기를 보는 것과 방불하구나 / 仿佛頭流頂上看[주-D001] 영궁 : 선인(仙人)의 궁전(宮殿)이란 뜻으로, 산의 승경(勝景)을 의미한다.
    2020-09-25 | NO.562
  • 광주의 설화
    광주광역시에서 옛날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서사 구조를 지닌 이야기. 1. 설화의 정의  설화는 입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입으로 전해 오는 모든 이야기가 설화는 아니다. 일상의 신변잡기, 역사적 사실이나 현재적 사실을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설화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설화는 일정한 서사 구조를 지닌 꾸며낸 이야기이다. 설화 중에는 사실을 가장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사실적인 이야기이며, 사실 여부보다는 문학적인 흥미와 교훈 때문에 존재한다. 현대는 과거와 같은 이야기판을 찾기 힘들고, 설화가 과거와 같이 강한 전승력을 보이지 않아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설화를 대신해서 자신의 경험과 체험을 이야기로 구성하여 전승하는 경우도 있다. 경험담이 인간의 실제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구성의 과정을 살펴보면 허구성과 교훈성, 문학적 흥미성이 첨부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험담 또한 현대의 이야기 문화 중 한 부류로 설정할 수 있다.   2. 설화의 특징  설화는 구전된다는 특징이 있다. 설화의 구전성은 구절구절 완전히 기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핵심이 되는 구조를 기억하고 이에 화자 나름대로의 수식을 덧보태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설화는 단순하면서 잘 짜인 구조를 지니며, 표현 역시 단순하다. 설화의 두 번째 특징은 산문성이다. 설화는 보통 말로 구연되며, 규칙적인 율격은 발견되지 않는다. 설화의 세 번째 특징은 구연 기회의 무제한성이다. 설화는 언제 어느 때나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들을 분위기가 되면 구연될 수 있다. 설화의 네 번째 특징은 화자와 청자가 대면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구술된다는 것이다. 설화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구연되는 이야기 장르가 아니다. 화자는 청자를 상정하고, 청자의 반응을 살피면서 설화를 구연한다.   3. 설화의 분류  설화는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신화·전설·민담이다. 설화는 전승자의 태도, 시간과 장소, 증거물, 주인공과 행위, 전승 범위를 기준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 번째 전승자의 태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화의 전승자는 신화를 진실되고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전승자는 신화를 일상적 경험 이전에 또는 일상적 합리성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믿고, 그 진실성과 신성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전설의 전승자는 이야기가 신성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나, 진실되다고 믿는다. 민담의 전승자는 이야기가 신성하다거나 진실되다고 믿지 않는다. 단지 흥미성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승한다.  두 번째로 시간과 장소이다. 신화는 아득한 옛날, 비일상적인 경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시간에 일어난 일이고, 특별한 신성 장소를 무대로 삼고 있다. 전설은 구체적으로 제한된 시간과 장소를 갖는다. 민담은 뚜렷한 장소와 시간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 번째로 증거물이다. 신화의 증거물은 매우 포괄적이다. 천지창조 신화는 천지 증거물이고, 건국신화는 국가가 증거물이다. 전설의 증거물은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을 갖는다. 전설의 증거물은 자연물, 인공물, 인물 등 다양하다. 민담은 증거물이 없으며, 이야기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네 번째로 주인공과 행위이다. 신화의 주인공은 신(神)이며, 그의 행위는 신이 지닌 능력이다. 신은 보통 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성한 자이며, 인간과 명확히 구별되는 존재이다. 전설의 주인공은 한정될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인간이며, 그의 행위는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던 일이 대부분이다. 민담의 주인공은 일상적인 인간이다. 민담의 주인공은 난관에 부딪혀도 결국 극복하며, 그의 행위는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승 범위이다. 신화는 민족적 범위에서 진실성과 신성성이 인정된다. 씨족적·부족적 신화도 있으나,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될 때 신화로서의 생명을 갖는다. 전설은 증거물의 성격상 대체적 지역적 범위에서 전승된다. 민담은 지역적인 유형이나 민족적인 유형이 있으나, 어느 지역이나 민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민담의 전승은 공동의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며, 분포는 세계적이다.   [광주광역시의 신화]  신화는 신성성이 인정되는 집단의 범위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1. 건국신화: 국가적인 범위에서 신성성이 인정되는, 건국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  2. 시조신화: 성씨의 범위에서 신성성이 인정되는, 시조(始祖)에 관한 이야기  3. 마을신화: 자연마을의 범위에서 신성성이 인정되는, 마을신에 관한 이야기  4. 기타 신화: 신성성을 인정하는 범위가 일정하지 않은 일반적인 신화  광주광역시는 신화에 있어서 전승적 토대가 약한 지역이다. 과거 광주광역시를 배경으로 국가를 건국한 역사적 사건이 없어서 건국신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신화적 성격을 파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견훤(甄萱)[867~936]의 인물전설이다. 견훤은 후백제를 건국한 인물로서 고려 왕건(王建)[877~943]과의 투쟁에서 패배한 인물인데, 견훤에 대한 이야기가 광주광역시 지역에 단편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도시 확장과 개발로 인해서 자연마을이 많이 사라졌다. 자연마을의 소멸은 마을신화의 소멸로 이어졌고, 더이상 전승 채록된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광주광역시의 전설]  전설은 전승 장소, 발생 목적, 설화 대상에 따라 분류된다.  1. 전승 장소: 지역적 전설, 이주적 전설  2. 발생 목적: 설명적 전설, 역사적 전설, 신앙적 전설  3. 설화 대상: 자연물, 인공물, 인간, 신앙 행위  광주광역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전설은 인물전설이다. 김덕령(金德齡)[1567~1596] 인물전설은 광주광역시 전역에서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며, 조정 관료들과 갈등하면서 비극적으로 죽었다. 김덕령 인물전설은 출생담, 비범담, 활약담, 죽음담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 외에도 눌재 박상, 양만용, 배중손, 기대승, 정충신, 나숭대 인물전설이 전한다. 지명전설은 지역마다 다양한 유형으로 전해오는데, 특히 광주광역시의 진산(鎭山)이라 일컬어지는 무등산 주변의 지명전설이 강한 전승력을 지니며 구전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진 인공물인 태봉산과 경양방죽 관련 이야기도 지명전설로 전해지고 있으며,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중심으로 「신거무 장터의 유래」가 다양한 각편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주목된다.   [광주광역시의 민담]  민담은 다음과 같이 세 항목으로 분류된다.  1. 동물담: 동물유래담, 본격동물담, 동물우화  2. 본격담: 현실담, 공상담  3. 소화: 과장담, 모방담, 치우담, 사기담, 경쟁담  광주광역시의 민담은 전설에 비해서 전승력이 약하다. 가장 많이 전승되는 민담은 효행담이다. 「둘째아들이 효자」, 「어머니와 지렁이」, 「아들을 버린 효부」, 「불효의 결과」 등이 광주에서 전승되는 대표적인 효행담이다. 인물전설·지명전설과 연결된 동물보은담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작품이 「광주 경양지」인데, 가난한 농부가 개미를 구해줘서 보은으로 부자가 되어 경양방죽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김방 할아버지와 개미 떼」는 실존인물인 김방이 개미집을 구해주고, 보은으로 쌀을 받아서 경양방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함께 한국 전역에서 전승되는 「구렁덩덩신선비」 유형의 이야기가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참고문헌]장덕순, 『구비문학개설』(일조각, 1971)『광주의 전설』(광주직할시, 1990)『광주의 설화』(광주민속박물관, 2000)『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1-2(국립민속박물관, 2012)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023-07-31 | NO.561
  • 광주의 정즐(鄭隲, 1495~1564)
    *유희춘, 《미암집》 제14권 / 일기(日記) 병자년(1576, 선조9) 12월 7일“광주의 정즐(鄭隲)과 장성의 정운룡(鄭雲龍)이 모두 기고봉(奇高峯)의 제자인데, 지조와 행실이 취할 만한 사람입니다.”용산(龍山) 정즐(鄭騭, 1495~1564) 기대승의 스승이다. 기대승이 첫번째 스승 김공집(金公緝) 밑에서 11새 때 '연구(聯句)'를 지은 4년 뒤인 15세 때 정즐 밑에서 130구에 이르는 '서경부(西京賦)'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용산 정즐의 평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西京賦」가 비록 澁하고 疵한 곳이 조금 있다고는 하나 思가 遠하고, 氣가 壯하며, 語가 高하고, 辭가 達하여 내용이 걸출하여 일찍부터 奇大升의 시문에 대한 자질을 가히 짐작하기에 충분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용산의 평가는 시인으로서 奇大升의 자질을 높이 찬양하는 내옹이다.*2023.6.1. 수정
    2023-05-15 | NO.560
  • 광주의 제유들에게 답하다〔答光州諸儒〕- 미호집
    광주의 제유들에게 답하다〔答光州諸儒〕- 미호집 제8권 / 서(書) : 김원행金元行(1702~1772) 말씀하신 경렬사(景烈祠)에 금남(錦南)을 배향해야 하는지의 여부는, 선향(仙鄕)이 평소 문헌(文獻)이 있는 고을로 일컬어지고 있으니, 서로 더불어 자세하게 강구한 다음 신중하게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 멀리 칩복하고 있는 국외자가 어떻게 감히 참여하여 논할 문제이겠습니까. 그런데 저의 의견을 기다려 결정하시려는 듯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더 두려워 식은땀이 흐르게 합니다. 다만 이미 질문을 받았으니, 감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금남은 비록 대난(大難)을 막은 공로가 있기는 하지만 애초 명예와 절조가 있는 도학자(道學者)와 비길 대상이 아니니, 사림이 굳이 높여서 제사를 받들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도 옳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본래 그 사람은 충의(忠義)가 우뚝하여 한때 기회를 만나 공을 세운 무리와는 격이 다릅니다. 따라서 경렬(景烈)의 명손(名孫)으로 여기에 종향(從享)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 사림이 여기에서 제향(祭享)하는 것이 찜찜할 일은 아닐 듯합니다.애초 일을 시작할 때 자세히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배향된 지가 벌써 여러 해인데 중도에 거두자는 의론을 하는 것은 사체(事體)가 몹시 중대합니다. 대체로 그 사람에게 중대한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시고 난 뒤 다시 내치는 경우는 없으니, 금남이 비록 사문(斯文)과는 상관이 없는 듯하지만, 또 어찌 내칠 만한 허물이 있겠습니까.그리고 우리들이 숭보(崇報)하는 대상은 정위(正位)에 있으니, 어찌 굳이 그 배위(配位)로 인하여 마침내 경건히 모시는 의리를 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어리석은 저의 견해는 이와 같은데 반드시 이치에 맞지는 못할 것입니다. 삼가 여러분들께서 깊이 생각하신 다음 취사하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주-D001] 경렬사(景烈祠) : 고려 시대 명장 정지(鄭地)를 모신 사당으로, 전라도 광주 망월동에 있다.[주-D002] 금남(錦南) :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진 정충신(鄭忠信, 1576~1636)으로,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 명장 정지(鄭地)의 9대손으로 금천군(錦川君) 정윤(鄭綸)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어린 나이로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이괄(李适)의 난에 공을 세워 금남군에 봉하여졌다. 부원수, 포도대장,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광주(光州) 경렬사(景烈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만운집》, 《금남집》,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주-D003] 경렬(景烈) : 정지(鄭地)의 시호이다.
    2020-12-14 | NO.559
  • 광주의 지세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광주의 지세에 관한 이야기. 광주광역시의 풍수와 지세(地勢)에 관한 이야기로 태봉산과 학동, 네 곳의 샘과 세 마리 학에 관한 이야기이다.2000년 7월 18일 광주광역시 양동에 거주하는 주민 심봉섭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2000년에 광주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되었다. 광주광역시는 무등산에서 삼각산과 옥녀봉을 거쳐 정기가 흐른다. 삼각산은 배꼽 부분이고 옥녀봉은 청옥등이다. 광주의 탯줄이라 할 수 있는 자리는 현재 광주역 자리로 근방에는 태봉산이 있었다. 옛 어른들은 태봉산이 없어지면 광주광역시가 크게 발전한다고 말하였다. 조선대학교 병원 부근을 학동이라고 하는데, 그곳의 산세가 학(鶴)의 형국이라서 그렇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풍수적으로 학동에서 큰 사람이 날 것이라면서, 학의 목에 해당하는 산의 끝자락을 잘라 남광주역을 만들었다. 그 뒤로 광주광역시에 큰불이 자주 났는데, 이상하게 일본인의 집에서만 났다. 광주광역시에는 네 곳의 유명한 샘이 있었는데, 서동과 양동, 지산동, 서방의 한새암이다. 이곳의 물은 짠맛이 없고 물맛이 좋았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네 곳의 샘을 막은 후부터 광주광역시에 환자들이 많이 생겼다. 예전부터 광주에 돛대[공장 굴뚝] 3개가 생기면 광복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광주 지역의 노동력을 침탈하기 위해 공장들을 계속 세웠는데, 옛 전라남도청 인근인 원머리에 공장을 세웠고, 유동에 제사(製絲) 공장, 그리고 종방[종연방직]을 세운 얼마 후에 광복이 되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에는 세 군데의 학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조선대학교 병원에 학이 있고, 운암동이 백로의 끝자락이고, 상무대 자리가 학의 형국이다.「광주의 지세」의 주요 모티프는 ‘지역의 지세에 관한 풍수’이다. 풍수담의 여러 갈래 중 지역의 형세에 관한 이야기로 지역의 흥망을 지형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광주의 지세를 바꿨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생긴 광주의 여러 변화 양상을 지형의 변화로 연관지어 해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광주의 지세」는 태봉산, 학동의 유래, 네 곳의 샘, 세 곳의 학 등을 광주의 지형과 지세와 연관 지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참고문헌] 장덕순, 『구비문학개설』(일조각, 1971) 『광주의 설화』(광주민속박물관, 2000)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1-2(국립민속박물관, 2012)[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023-08-01 | NO.558
  • 광주학기〔光州學記〕 - 강한집 제9권
    광주학기〔光州學記〕 - 강한집 제9권 : 강한(江漢) 황경원(黃景源 1709~1787)예부터 사제(師弟)의 도리가 결여되었는데 부자(父子)가 그 윤리를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는 은혜를 위주로 하고 제자가 스승에 대해서는 의리를 위주로 한다. 그러나 섬기는 방법에는 다른 점이 있지 않다.스승이 식사를 하시려 하면 옷깃을 여미고 반찬을 차리되 술은 왼쪽에 장은 오른쪽에 놓으며, 채소국을 먼저 올린 뒤에 조수와 어별 반찬을 놓는다. 식사를 마치시면 빨리 달려가 양치할 물을 올리니 이것이 제자가 음식을 올리는 예절이다. 물을 대야에 담아 문으로 들어가서는 빗자루를 잡고 쓰레받기를 내려놓고 아랫목에서부터 물을 여기저기 뿌리는데 경쇠처럼 허리를 굽혀 일을 한다. 청소를 다 했으면 물러나와 쓸어낸 방안의 먼지를 문 안에 모아두니 이것이 제자가 물 뿌리고 쓰는 예절이다.어두워지면 구석에 앉아서 오른손으로는 초를 잡고 왼손으로는 초의 타고 남은 부분을 정리한다. 불이 꺼지려 하면 다시 새 초로 불을 갈되, 앞에 촛불을 잡았던 이는 초의 타고 남은 것을 가지고 나가서 버리고, 뒤에 촛불을 잡은 이는 초가 다 타들어가서 잡을 수 없는 상태를 기다렸다가 들어가 교대하니 이것이 제자가 촛불을 잡는 예절이다.그러나 아들의 직분이 제자의 직분과 같다. 아들의 직분을 잘 닦으면서 제자의 직분을 잘 닦지 못하는 자는 진실로 드물고 제자의 직분을 잘 닦으면서 아들의 직분을 잘 닦지 못하는 자 또한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그 스승을 존경하는 것이요, 스승을 존경하는 것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스승은 존경하는 것이 동일하다.만일 아버지가 일찍이 과오를 저지른 적이 있는데 그 스승이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발설한다면 제자는 더욱 그 스승을 존경하고 감히 원한의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가령 그 스승이 측은히 아파하는 마음으로 제자를 위하여 그 아버지의 과오를 숨겨준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진실로 이와 같다면 아버지에게는 효자가 되고 스승에게는 어진 제자가 될 것이니 어찌 원한을 품고 스승을 배반하여 천하 만세의 비판을 받는 경우와 같겠는가?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면서 단지 배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치기까지 하니 진실로 이른바 인륜의 변고이다.정(鄭)나라 사람이 자탁유자(子濯孺子)로 하여금 위(衛)나라를 공격하게 하니 위나라에서는 유공지사(庾公之斯)로 하여금 자탁유자를 추격하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기를,“나는 병이 나서 활을 쏠 수 없으니 죽게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유공지사가 와서 말하기를“소인은 윤공지타(尹公之他)에게 활쏘기를 배웠고 윤공지타는 선생님께 활쏘기를 배웠으니 저는 차마 선생님의 기술을 가지고 도리어 선생님을 해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지금의 학자들은 유공지사에 미치지 못하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광주는 호남의 도회이다. 그러나 유학을 하는 선비들이 서로 당쟁을 하여 백 년이 흐르도록 조금도 회개를 하지 않고 감히 스승을 존경하는 설을 배척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 때문에 사도(師道)가 나날이 상실되어 주학(州學)이 어지러워졌으니 탄식을 이루 다 할 수 있는가?올해 봄에 안동 김후(金侯)가 수령으로 와서 처음으로 주학(州學)을 수립하였다. 제생이 김후에게 와서 묻기를 “아버지와 스승 중에 누가 더 중합니까?”라고 하자 김후가 “스승이 더 중하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제생들이 부끄러워하며 받아들이고 감히 스승을 존경하는 설을 배척하지 않았다.대개 은혜 쪽으로는 아버지가 중할 때가 있고 의리 쪽으로는 스승이 중할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 김후가 장차 사도를 세워 그 풍속을 바꾸려고 하니 스승이 중하다고 말하는 것이 또한 마땅할 것이다. 주학이 낙성을 고하니 제생들이 김후의 명으로 나에게 와서 기문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자의 예를 천명하여 기문으로 삼는다.[주-D001] 스승이 …… 예절이다 : 관중(管仲)이 지은 〈제자직(弟子職)〉에 나오는 내용이다. 〈제자직〉은 제나라 환공(桓公) 때 세워진 직하학궁(稷下學宮)의 학생 생활수칙이다. 직하학궁은 제나라 정권이 국가발전과 정권을 공고하게 하기 위하여, 인재를 불러 모아 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면서 학술연구와 학생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던 교육기관이었다. 〈제자직〉에서는 존사(尊師) 및 우애(友愛) 정신과 도덕 수양, 학습활동과 생활습관 등 학생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준칙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그 내용은 약 열 가지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식은 기억하기 쉽도록 거의 전부가 1구 4언의 운문으로 되어 있다.[주-D002] 정(鄭)나라 …… 하였다 : 이 이야기는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보인다.光州學記 / 黃景源 自古師弟子之道缺,而父子能全其倫者,吾不信也。子之於父,主於恩,弟子之於師,主於義。然而所以事之者,未之有殊也。師將食,攝衽陳膳,左酒右醬,先菜羹,然後置鳥獸魚鼈。及已食,趨走進漱,此弟子饋饌之儀也。實水于盤,旣入戶,執帚下箕,播諸水,自奧而始,俯仰磬折。旣拚乃退,而所掃室中之塵,聚於戶內,此弟子灑掃之儀也。昏則隅坐,右手執燭,左手正櫛。火將盡,更以新燭承其火,前執燭者,取其櫛而出棄之,後執燭者,候其墮而入代之,此弟子執燭之儀也。然子之職,猶弟子之職也。能修子職而不能修弟子之職者,誠寡矣,能修弟子之職,而不能修子之職者,又寡矣。故尊其父者,所以尊其師也,尊其師者,所以尊其父也。父與師其尊一也。有如其父嘗有過,而其師揚言於衆,則弟子益尊其師,不敢懷怨恨之心。使其師惻然感傷,爲弟子諱其父過,豈不休哉?誠如是,則於其父爲孝子,而於其師爲賢弟子也,豈若怨恨而倍其師,犯天下萬世之議哉? 今之學者,嫉其師,非徒倍之,而又害之,信所謂人倫之變也。鄭人使子濯孺子侵衛,衛使庾公之斯追之。子濯孺子曰:“我疾作,不可以執弓,吾死矣。”庾公之斯至曰:“小人學射於尹公之他,尹公之他學射於夫子,我不忍以夫子之道,反害夫子。”今之學者,其不及庾公之斯,遠矣。光州湖南之都會也。儒學之士,與之黨爭,經百年不少改悔,而敢斥尊師之說者,爲尤多。是故師道日益喪而州學亂,可勝歎哉? 今年春,安東金侯爲之牧,初修州學。諸生有問於金侯曰:“父師孰重?”曰:“師重。”諸生慙服,不敢斥尊師之說。 蓋以恩則父有時而重,以義則師有時而重。今金侯將立師道,以變其俗,謂之師重,亦宜矣。州學告成,諸生以金侯之命,求余之文。故推明弟子之禮以爲記。
    2020-11-03 | NO.557
  • 광주향교(光州鄕校) 대성전(大成殿) 상량문(上樑文) - 고봉집 제2권
    광주향교(光州鄕校) 대성전(大成殿) 상량문(上樑文) - 고봉집 제2권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ㆍ존재(存齋)이며,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삼가 생각건대, 천리(天理)는 사람의 마음에 있어 비록 베어 버리고 녹여 버리려 해도 없어지지 않고, 교화는 시운에 달려 있어 반드시 전파하고 감화시켜야 이루어진다. 이에 학규(學規)를 일신(一新)하고 문묘(文廟)의 모양을 거듭 빛냈다. 상(庠)ㆍ서(序)ㆍ학(學)ㆍ교(校)의 교육을 시행함은 삼대(三代)가 인륜을 밝힌 것이었고, 제기와 우약(羽籥)의 위의(威儀)를 엄격히 함은 만방(萬方)이 선성(先聖)의 제사를 높이 받드는 것이었다.이 동방(東方)은 공자께서도 거주하고 싶어 하신 지방이다. 집집마다 공맹(孔孟)을 외고 있으며 가호마다 주정(周程)을 높이고 있으니 문치(文治)가 크게 빛나고, 시서(詩書)를 열심히 읽고 예악(禮樂)을 좋아하니 선비의 습관이 바르고 순박하다. 백성들이 부유하고 많은 때를 만났으니 참으로 문명하고 덕화가 흡족한 교화를 보게 되었다. 해양(海陽)의 옛 지역은 호남(湖南)의 큰 고을인데 뽕나무와 삼, 벼와 곡식이 가득하니 백성들은 농업을 즐기는 이가 많고, 명경(名卿)과 사대부(士大夫)들이 자취를 이었으니 사람들은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있다. 다만 유궁(儒宮)이 오래되어 기울고 비가 새니, 실로 도맥(道脈)이 따라 쇠퇴하게 되었다. 기둥과 들보, 서까래가 퇴락하니 고로(故老)들은 서글퍼하고 있으며, 등잔불을 켜고 책을 보는 일이 적막해지니 후생들은 나태해져 있다.아, 완전히 보수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고쳐 만드는 것은 다행히 어렵지 않았다. 이는 봄 햇볕처럼 따뜻한 인(仁)과 가을 산악처럼 우뚝한 의(義)를 지닌 성주 합하(城主閤下)를 만난 덕분이다. 문명한 시대의 덕스러운 정사를 펴니 불우(不遇)한 자들이 은혜를 알았고, 창성한 시운의 인재들을 배양하니 방탕한 자들도 학문을 사모하게 되었다. 이에 삼시(三時)의 틈을 이용하여 단시일에 역사를 끝냈다. 공경히 영령(英靈)을 모시는 묘전(廟殿)을 맨 처음 지었고, 인재를 육성하고 육예(六藝)를 강(講)하는 재사(齋舍)를 수리하였다. 여덟 창문이 영롱하니, 몇 길의 담장이 빛난다. 어찌 눈앞에 우뚝 서 있을 뿐이겠는가. 장차 당하(堂下)에서 걸음을 걸으며 학문을 익힐 것이다. 일월이 비치고 사시가 운행되니 유도(儒道)가 크게 밝아짐을 기다리겠고, 종묘(宗廟)가 아름답고 백관(百官)이 풍부하니 누가 성인의 문에 들어가기 어렵다 의심할 것인가. 이는 곧 무성(武城)의 현가(絃歌)와 같으니 삼가 비궁(閟宮)의 의식을 편다.어영차 떡을 들보 동쪽에 던지노니 / 兒郞偉抛樑東하늘이 도맥을 지금부터 융성하게 하네 / 天敎道脉自今隆현가가 어찌 오공만 교화하였겠는가 / 絃歌奚獨化吳公백성의 풍속 예악 속에서 아름다우리 / 民俗熙熙禮樂中어영차 떡을 들보 남쪽에 던지노니 / 兒郞偉抛樑南고기 뛰놀고 솔개 나는 속에 온갖 이치 담겨 있네 / 魚躍鳶飛萬理涵모름지기 명성의 공부 두 가지 세워야 하고 / 須信明誠宜兩立또 경의의 공부 서로 참여해야 함을 알아야 하네 / 也知敬義更相參어영차 떡을 들보 서쪽에 던지노니 / 兒郞偉抛樑西옛 제도와 새로운 규모 밝아 혼미하지 않네 / 舊制新規耿不迷이 도가 크게 형통할 날이 참으로 있으리니 / 斯道大亨眞有日부잣집 아이들 어찌 감히 초라한 반찬 비웃으랴 / 富兒寧敢笑朝虀어영차 떡을 들보 북쪽에 던지노니 / 兒郞偉抛樑北제자들이 지금까지 존경하고 본받는다오 / 子弟于今有矜式훌륭한 규모가 없다고 말하지 마오 / 莫遣諞言敗盛模후현들이 모름지기 다시 윤색을 가하리 / 後賢須復加潤色어영차 떡을 들보 위에 던지노니 / 兒郞偉抛樑上문학의 기염(氣焰)이 만장이나 높으리 / 文焰應知高萬丈우리 임금 보좌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하니 / 輔佐吾君致太平고을마다 장수와 정승이 많이 배출되리 / 井邑翩翩多將相어영차 떡을 들보 아래에 던지노니 / 兒郞偉抛樑下이로부터 궁한 마을에도 아름다운 교화가 흐르리라 / 從此窮閻流美化성인의 도가 하늘에 빛나고 백일처럼 밝으니 / 聖道光天白日明제생들은 마땅히 그 큰 것을 알아야 하리 / 諸生當識其大者삼가 원하건대 상량한 뒤에 패옥(佩玉)을 차고 청금(靑衿)을 입은 선비들이 많고 많아 거문고 타고 글 읽는 소리 양양(洋洋)하게 하고 천백 년 동안 공고(鞏固)해서 비가 침노하거나 바람이 흔들지 말게 하며 억만세에 유전하여 산처럼 높고 물처럼 길 뿐만이 아니게 하소서.[주-D001] 상(庠)ㆍ서(序)ㆍ학(學)ㆍ교(校) : 모두 국가의 교육기관인데, 상ㆍ서ㆍ교는 향교이고, 학은 국학이다. 하(夏)나라 때는 교라 하였고, 은(殷)나라 때는 서라 하였고, 주(周)나라 때는 상이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上》[주-D002] 우약(羽籥) : 문무(文舞)의 하나로, 깃털을 잡고 춤을 추며 약(籥)이라는 피리를 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주-D003] 동방(東方)은……지방이다 : 공자께서 구이에 살려고 하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였다. 이에 공자가 대답하기를 “군자가 거처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하였다. 구이는 동방을 가리킨다. 《論語 子罕》[주-D004] 해양(海陽) : 전라도의 옛 이름이다. 고려 성종(成宗) 14년(995)에 나주(羅州)ㆍ광주(光州)ㆍ정주(靜州)ㆍ낭주(朗州) 등의 주현(州縣)을 해양도라 하였다가 현종(顯宗) 때 강남도(江南道)와 함께 전라도에 합하였다.[주-D005] 삼시(三時)의……끝냈다 : 삼시는 농번기(農繁期)인 봄, 여름, 가을 세 철을 가리킨다. 농번기를 피하여 한가한 틈에 토목공사를 했다는 말이다.[주-D006] 종묘(宗廟)가……것인가 : 성인의 학문을 통달하여 온갖 진리를 쉽게 깨닫는다는 뜻이다.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자공(子貢)이 공자보다 훌륭하다고 평하자, 자공은 “이것을 궁궐과 담장에 비유하면 나의 담장은 겨우 어깨에 미칠 정도여서 그 안에 있는 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나, 부자(夫子)의 담장은 몇 길이나 되어서 그 문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풍부함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였다. 《論語 子張》[주-D007] 무성(武城)의 현가(絃歌) : 무성은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현읍(縣邑)으로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비현(費縣)에 해당하며, 현가는 거문고ㆍ비파 등을 연주하며 시가(詩歌)를 읊는 것이다. 자유(子游)가 무성의 읍재(邑宰)가 되어 백성들에게 예악을 가르쳤으므로, 곳곳마다 현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이는 고을마다 독서하는 소리가 들려 유교가 크게 진작되리라는 말이다. 《論語 陽貨》[주-D008] 비궁(閟宮) : 신(神)을 모신 사당이다. 《시경》〈노송(魯頌) 비궁(閟宮)〉에 “깊게 닫혀 있는 사당이 고요하기도 하다.〔閟宮有侐〕” 하였다.[주-D009] 고기……있네 : 《시경》〈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다다르고, 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르네.〔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말이 있는데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서 이 시를 인용하여 군자의 도가 상하(上下)로 드러난 것으로 설명하였다.[주-D010] 명성(明誠)의 공부 : 명선(明善)과 성신(誠身)의 준말이다. 명선은 선을 밝히는 것으로 지(知) 공부에 해당하며, 성신은 몸을 성실히 하는 것으로 행(行) 공부에 해당한다.[주-D011] 경의(敬義)의 공부 : 마음속으로는 공경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는 의롭게 하는 것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 일을 바르게 하니,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하였다.
    2020-09-13 | NO.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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