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 7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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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 전(宋純傳)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 송순 전(宋純傳)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 과재(果齋) 이중열(李中悅)송순의 자는 수초(遂初)이며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경술년 대간에서, 구수담(具壽耼)과 결탁하고 다른 논의를 선동했다는 일로써, 귀양 보내기를 청해서 서천(舒川)으로 정배되었고, 이기가 정승이 파직된 뒤에 다시 서용되었다. 선조조(宣祖朝) 무진년 봄에 수상(首相) 이준경이 경연에서 아뢰기를, “송순은 선조(先朝)의 옛 신하로서, 재기(才器)가 준수하니 뽑아 쓰기를 청합니다.” 하니, 우참찬(右參贊)을 임명하였다.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광주(光州) 고향에 돌아가서 산수에 노닐면서 수양에 전심하였는데 향년은 80여 세라고 이른다.
- 2020-09-25 | NO.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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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宋純)- 客舍訪梅有感 二首
- 一樹繁梅滿院香 故園歸思忽如狂年來應被東君笑 花下深杯久不嘗玉雪枝枝滿意開 輕風終日送香來簿書未暇酬佳節 空對春光恨莫裁-면앙집(俛仰集) 권3송순이 객사에 핀 매화를 보고 감흥을 읊었다
- 2018-07-26 | NO.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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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 기언 별집 제10권 / 발(跋)
- 송 상공(宋相公) 간독첩(簡牘帖)의 발 계미년(1643, 인조21) 봄에 영남 관찰사 임공(林公)이 동쪽을 순행(巡行)하던 길에 바닷가로 나를 찾아왔다. 그때 나에게 면앙정(俛仰亭) 송 상공의 편지 세 편이 든 서첩(書帖) 하나를 보여 주었는데, 그 지면에 ‘임 진사(林進士)’, ‘임 상사(林上舍)’, ‘임 정자(林正字)’라고 쓰여 있었으니, 모두 우리 외조(外祖) 백호공(白湖公)을 가리킨 말이다.그중 한 편지는 면앙정이 시를 지어 달라고 청한 것이고, 또 하나는 시를 받은 뒤에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었다. 이 두 편지는 연월(年月)이 병자년(1576) 5월과 6월로 되어 있는데, 그때 우리 백호공이 중부(仲父)의 상을 당하였으니, 편지에서 “정자공(正字公)의 부음(訃音)을 받았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 말이다. 정자공은 뛰어난 기개와 큰 재주가 있었으나 배척당한 채 고향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편지에서 슬프고 애석한 뜻을 거듭 말하였다. 우리 백호공이 그 이듬해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그때 대부(大府) 절도공(節度公)이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차 바다를 건너가서 과거에 합격한 영광을 고하려 하였다. 이때 상공이 은근하게 여행길의 안부를 물었으니, 이것이 또 한 편지이다.편지를 읽어 보니 상공의 풍신(風神)과 의기(意氣)가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오래된 편지라서 종이가 떨어져 나간 곳이 많으나, 연월일은 모두 남아 있어서 알아볼 수 있다. 상공은 중종ㆍ인종ㆍ명종을 섬기고 선조 18년인 을유년(1585)에 이르러 네 조정을 거친 기로(耆老)로서 치사(致仕)하고 별세하였으니, 연세가 90여 세였다고 한다.아! 정자공이 10년 전에 가장 먼저 돌아가셨고, 또 상공이 별세한 3년 뒤에는 우리 백호공이 별세하였다. 사상(使相)은 정자공의 친손이고 나는 백호공의 외손이다. 지금 이 편지를 거의 6, 7십 년이 지난 뒤에 헌 상자 안의 버려진 종이 속에서 찾아냈는데, 글씨가 또렷하여 어떤 일은 아무 해에 있었고 아무 말은 어떤 일과 관계가 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처럼 역력하니, 마주 대하매 옛일에 대한 감회가 끝이 없다.몇 년 전에 내가 호남을 여행하였을 때 담양(潭陽)에서 상공의 묘소에 참배하고 면앙정에 올랐었다. 그러고는 그 자손을 방문하여 유고(遺稿) 속에서 〈을유년 10월에 임 한림과 금강에서 뱃놀이하다〔乙酉冬十月與林翰林泛舟錦江〕〉라는 시 3수와 〈낙봉과 호음 두 선생의 운을 써서 귀래장에게 올리다〔駱峯湖陰二先生韻奉贈歸來丈〕〉라는 시 2수를 얻었으니, 이는 모두 우리 외고조(外高祖) 대윤공(大尹公)과 주고받은 시이다. 대윤공이 상공과 함께 중종조에 벼슬하여 일찍이 한림으로서 북도 병마평사(北道兵馬評事)가 되었으며, 명종 때에 벼슬이 동경 대윤(東京大尹)에까지 이르렀다가 뒤에 좌천되어 광주(光州)에서 별세했으니, 귀래당(歸來堂)은 별호이다.지금 대윤공의 시 5수를 간독첩에 이어서 썼는데, 사상(使相)이 장차 낙봉과 호음의 시를 아울러 구하여 이 첩에 옮겨 쓰겠다고 한다. 이어서 나를 위해서 말하기를,“지금 내가 다행히 이 편지를 얻었으니 자네는 기록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하므로, 삼가 그 대략을 위와 같이 쓴다.[주-D001] 송 상공(宋相公) : 송순(宋純, 1493~1582)으로,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수초(遂初)ㆍ성지(誠之), 호는 기촌(企村)ㆍ면앙정(俛仰亭)이며, 부친은 증 이조 판서 송태(宋泰)이다. 1519년(중종14) 별시 문과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거치고 의정부 우참찬으로 은퇴하였다. 면앙정가단(俛仰亭歌壇)의 창설자이자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서 조선 시가문학에 크게 기여하였다.[주-D002] 임공(林公) : 임담(林墰, 1596~1652)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요(淸曜)이며, 부친은 감사 임서(林㥠)이다.[주-D003] 백호공(白湖公) : 임제(林悌, 1549~1587)로, 본관은 나주,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ㆍ풍강(楓江) 등이며, 부친은 절도사 임진(林晉)이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시인이며, 한문소설, 시조 등을 남겼다.[주-D004] 정자공(正字公) : 임복(林復, 1521~1576)으로, 본관은 나주, 자는 희인(希仁), 호는 풍암(楓巖)이며, 부친은 승지 임붕(林鵬)이다. 1546년(명종1) 증광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에 등용되었다가 이듬해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삭주에 유배되었다. 1551년(명종6) 특사령으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선조 초에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무고를 받아 취임하지 못하고 고향에 은거하였다.[주-D005] 대부(大府) 절도공(節度公) : 대부는 부군(府君)과 같은 말로 부친을 뜻하고, 절도공은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부친 임진(林晉, 1526~1587)을 가리킨다. 임진은 자가 희선(希善)이며, 1546년(명종1) 무과에 합격한 뒤 훈련원 정(訓鍊院正), 전라도 수군절도사, 제주 목사(濟州牧使), 오도 병마절도사(五道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주-D006] 사상(使相) : 관찰사(觀察使)로서, 여기에서는 영남 관찰사 임담(林墰)을 가리킨다.[주-D007] 낙봉(駱峯) :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호이다.[주-D008] 호음(湖陰) : 정사룡(鄭士龍, 1494~1573)의 호이다.[주-D009] 귀래장(歸來丈) : 임붕(林鵬, 1486~?)으로, 미수의 외고조부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거(仲擧), 호는 귀래당(歸來堂)이며, 부친은 임평(林枰)이다. 1521년(중종16) 별시 문과에 합격하여 삼사(三司)의 관직, 승지, 병사(兵使), 경주 부윤(慶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주-D010] 대윤공(大尹公) : 임붕이 경주 부윤을 지냈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 2022-05-03 | NO.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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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次光州喜慶樓韻
- 雲從瑞石散遙岑 구름은 서석산에서 먼 산으로 흐트러지고面面輕風慰客襟 얼굴에 부는 바람 객의 마음 달래준다照眼榴花經雨色 눈에 비친 석류꽃 비가 지난 뒤에 곱고喜晴鳩鳥隔簾音 날씨 좋아 비둘기는 주렴밖에서 운다高情直寄山嵐外 높은 정(情)은 산 풍기의 밖으로 가고淸想時隨砌竹陰 맑은 생각은 때로 섬돌가의 대나무를 따른다拍檻長歌詩思發 난간을 치며 노래 부르니 시(詩) 생각 절로 나는데更看涼月滿庭心 다시금 시원한 달빛 뜰 가운데 가득하다 -면앙집(俛仰集) 권2
- 2018-07-26 | NO.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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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次光州柳谷野亭韻
- 斷隴臨長路 何年起此亭 溪山詩已就 節序草新靑 日暮無歸客 情深有臥甁 相逢須極樂 霜鬢已衰形-면앙집(俛仰集) 권2송순(宋純, 1493-1582)의 자는 수초(遂初), 성지(誠之)이며 호는 기촌(企村), 면앙정(俛仰亭)이다.
- 2018-07-10 | NO.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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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次喜慶樓韻
- 當年奉養賜專城 당년에 봉양하라고 온 성(城)을 하사하시어罔極鴻恩荷聖明 망극한 큰 은총을 성주께 입었네地近鄕閭多故舊 고향 마을 가까우니 친구가 많고日開樽酒醉歌笙 날마다 열린 술자리 취하여 노래한다風流堪着登樓興 풍류는 등루(登樓)의 흥취가 날 만도 하고聲價初非蓋世英 성가(聲價)는 애당초 세상 덮을 영웅이 아니다膝下歡心兄及弟 슬하에서 즐겁게 해드리던 형과 아우人間何事更爲榮 인간에 무슨 일이 더 영화로우랴 - 면앙집(俛仰集) 권2
- 2018-07-26 | NO.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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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누문에서 김상사 우부를 작별하며(樓門 別金上舍愚夫)
- ‘누문에서 김상사 우부를 작별하며(樓門 別金上舍愚夫)’라는 시를 남기며, ‘광주의 북성 절양루 아래에 문이 있다(光州北城 折楊樓下 有門)’고 설명했다.四面淸風一首詩 사면에 맑은 바람 일수의 시樓頭歌管送君時 누각 위 노래와 피리 그대를 보낸다 秋生應有相求意 가을되면 아마도 서로 생각날 터이니驅馬重來願勿遲 더디지 말고 말을 몰아 다시 오게나-면앙집(俛仰集) :권2
- 2018-07-12 | NO.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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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면앙정에서 무등산을 보며
- 寒沙月照秦淮夜 한사정에 달 비치니 진회의 밤인가 瑞石雲迷蓬島煙 서석산에 구름 자욱하니 봉도의 안개인 듯俛仰乾坤吟得意 면앙정에서 득의한 시구 읊조렸으니 風流不必倩人傳 풍류야 남들에게 전할 필요 없었으리-금계집 외집
- 2018-08-02 | NO.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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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희경루
- 구름은 서석산에서 먼 산으로 흐트러지고/얼굴에 부는 바람 객의 마음 달래준다눈에 비친 석류꽃 비가 지난 뒤에 곱고/날씨 좋아 비둘기는 주렴밖에서 운다雲從瑞石散遙岑 面面輕風慰客襟 照眼榴花經雨色 喜晴鳩鳥隔簾音 높은 정(情)은 산 풍기의 밖으로 가고/맑은 생각은 때로 섬돌가의 대나무를 따른다난간을 치며 노래 부르니 시(詩) 생각 절로 나는데/다시금 시원한 달빛 뜰 가운데 가득하다 高情直寄山嵐外 淸想時隨砌竹陰 拍檻長歌詩思發 更看涼月滿庭心 次光州喜慶樓韻 /俛仰集卷之二 면앙정 주인 기촌(企村) 송순(宋純, 1493~1582)도 희경루에 올라 감정을 보탠다. 그가 희경루에 오른 것은 전라도감찰사 자격으로 올랐다.
- 2020-03-17 | NO.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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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열, 박광후와 이민서에 화운함
- 송자대전 제1권 / 시(詩)○오언 고시(五言古詩) 부 사언(附四言) 박 상사 사술 광후 이 익양 사군의 시에 차운한 시에 화운하여 언실의 담대가 보인 정중한 뜻에 사례하다〔和朴上舍士述 光後 所次翼陽使君韻 以謝偃室澹臺鄭重之意〕 옛날 우리 자양옹께서 / 昔我紫陽翁대은병 봉우리에 거처할 적에 / 身居大隱屛도가 완전하여 집대성하니 / 道全集大成온 천하를 다 포괄하였네 / 乾坤涵八溟경원 연간에 낭패를 당해 / 顚躓慶元間적막하게 순녕으로 돌아가시니 / 寂寞歸順寧이천 문도들이 눈물을 흘렸건만 / 二千徒弟泣하늘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네 / 天不傾耳聽허나 우리는 남겨진 책을 품고 / 而我抱遺編묻고 생각하길 멈추지 않으니 / 問思兩無停표범 반점 하나도 아직 못 봤으나 / 雖未一斑窺배고픔에 초평이 생각나는 듯하네 / 如飢憶楚萍진중한 광산백이여 / 珍重光山伯일찍 스스로 학문의 방도를 세우고 / 早自立門庭더하여 우뚝이 높은 뜻 지녔으니 / 還將壁立志죽을 때까지 시들지 않으리라 / 抵死未凋零백록동 학규를 다시금 천명하여 / 更闡白鹿規선비들이 엄숙히 경서 끼고 공부하니 / 章甫儼橫經세대는 달라도 즐거움은 실로 같은데 / 異世諒同符어느덧 이미 천년이 흘렀어라 / 不覺已千齡생도들 모두가 걸출한 인재인지라 / 生徒皆俊彥애초에 회초리 가르침 필요가 없지 / 初不煩敎刑그대 만나 터득한 바 시험해 보니 / 逢君徵所得넓게 트인 것이 청천을 오른 듯 / 豁若陞靑冥돌아가서 함께 멀리 찾아보세나 / 歸哉共遐尋성인의 문은 본디 빗장이 없다네 / 聖門元不扃[주-D001] 박 상사 사술(朴上舍士述) : 박광후(朴光後, 1637~1678)로,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술, 호는 안촌(安村)이다. 우암의 문인이다. 1666년(현종7)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갑인년(1674) 이후 벼슬할 뜻을 버렸다. 문집으로 《안촌집(安村集)》이 전한다.[주-D002] 익양 사군(翼陽使君) : 당시 광주 목사(光州牧使)로 있던 이민서(李敏敍)를 가리킨다. 익양은 광주(光州)의 별호이다.[주-D003] 언실(偃室)의 담대(澹臺) : 언실은 공자 제자인 언언(言偃), 즉 자유(子游)의 방이라는 뜻으로, 후대에는 지방 수령의 거처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담대는 담대멸명(澹臺滅明)이다. 공자가 무성(武城)의 수령인 자유에게 제대로 된 인재가 있느냐고 묻자, 자유가 담대멸명을 거론하면서 “길을 다닐 때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언의 방에 찾아온 적이 없습니다.[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라고 한 고사가 《논어》 〈옹야(雍也)〉에 보인다. 여기에서는 광주 목사 이민서와 관련하여 박광후를 지칭한 말이다.[주-D004] 옛날 …… 적에 : 자양(紫陽)은 주희의 별호이다. 주희가 무함(誣陷)을 입고 관직에서 물러나 있던 1183년 무이산(武夷山) 제5곡의 봉우리인 대은병(大隱屛) 아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저술과 강학에 전념하였다.[주-D005] 경원(慶元) …… 돌아가시니 : 경원은 남송 영종(南宋寧宗)의 연호(1195~1200)이다. 남송 영종 연간에 한탁주(韓侂胄)와 조여우(趙汝愚)가 권력 쟁탈전을 벌였는데, 주희는 조여우의 편이었다. 1195년 한탁주가 조여우를 몰아낸 뒤에, 주희를 중심으로 한 이학가(理學家) 59명을 위학(僞學)으로 규정한 ‘위학역당(僞學逆黨)’이라는 당적(黨籍)을 반포하고 주희의 학문을 금지하였다. 이 사건을 ‘경원당금(慶元黨禁)’이라고 부르는데, 주희는 당금 중인 1200년 3월 세상을 떠났다. 순녕(順寧)은 송나라 장재(張載)가 지은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순리를 따를 것이요, 죽어서는 편안하리라.[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주희가 부인 유씨(劉氏)를 장사 지내고, 그 무덤가에 순녕암(順寧菴)이라는 건물을 지었는데, 나중에 주희도 부인과 합장(合葬)되었다.[주-D006] 표범 …… 봤으나 : 주희의 학문이 깊고 넓어 자신의 좁은 식견으로는 일부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소년 시절에 도박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훈수를 두자, 도박하던 이가 “대롱으로 표범을 보면 반점 하나만 보인다.[管中窺豹, 時見一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世說新語 方正》[주-D007] 배고픔에 …… 듯하네 : 주희의 학문이 배고플 때 생각나는 평실(萍實)같이 배우는 자들에게 절실하다는 의미이다. 초평(楚萍)은 초나라 평실이다. 춘추 시대 초왕(楚王)이 강을 건너다가 둥글고 붉은 말(斗)만 한 물체를 보고, 그것을 주워 사람을 시켜 공자(孔子)에게 물어보게 하니, 공자가 “이것이 이른바 평실이라는 것으로 쪼개서 먹을 수가 있는데, 이것을 얻은 것은 길한 조짐이다.”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孔子家語 致思》 두보(杜甫)의 〈독좌(獨坐)〉 시에 “노인을 다습게 하자니 연옥이 생각나고, 주린 배를 채우려니 초나라 평실이 생각나네.[煖老思燕玉, 充饑憶楚萍.]”라고 한 구절을 차용하였다. 《杜少陵詩集 卷20》[주-D008] 광산백(光山伯) : 광주 목사 이민서를 가리킨다. 광산은 광주의 별칭이다.[주-D009] 백록동(白鹿洞) 학규(學規) :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학규를 말한다. 주희가 지남강군(知南康軍)에 부임하였을 때 백록동서원을 중건하고 직접 강학하면서 학규를 제정하였다. 그 내용은 오교(五敎)의 조목, 학문을 하는 차례, 수신(修身)의 요체, 처사(處事)의 요체, 접물(接物)의 요체로 이루어져 있다.
- 2021-10-14 | NO.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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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익필-歸光山途中(辛卯春 有紛擾之禍 又適湖南)
- 梅花消息阻秦關 매화꽃 핀 소식이 진관에 막혀 있네 雨濕行裝旅夢寒 今日餘生歸白首 昔年爲客記靑山 一天之下皆安宅 萬事無心是最閑 人或勝時時或勝 先師虛老路岐間-구봉선생집(龜峯先生集)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자는 운장(雲長)이며 호는 구봉(龜峯), 현승(玄繩)이다.
- 2018-07-10 | NO.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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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수-次光州喜慶樓韻
- 湖南形勝說光城 호남의 명승지로 광주를 말하나高棟層軒眼忽明 높은 들보 층진 마루 눈이 번쩍 뜨이네涼灑衣裳圍粉黛 말쑥한 의상 입은 기녀들 둘러있고風飄律呂沸簫笙 바람에 나부끼는 노랫가락 피리에서 들리네罩汕西澗供鮮鯽 서쪽 시냇가에 그물쳐서 신선한 붕어회 만들고採掇東籬泛落英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꽃 따다가 떨어진 꽃잎 띄워보네大醉賦詩多喜慶 크게 취하여 시 지으니 큰 경사가 많음은夸張聖世荷君榮 태평성세 임금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네半天華構壓高城 반공의 화려한 누대 높은 성 눌렀는데客子憑欄白髮明 난간에 기댄 길손 백발이 선명하구나樓上杯樽多興味 누대에서 술잔 나누니 흥미로움이 많아지고人間毀譽謾簧笙 인간세상의 비난과 명예 생황소리에 업신여기네舊聯班馬遊鼇島 오래전에 반고 사마천과 함께 오도에서 노닐고曾接夔龍入邇英 일찍이 기룡을 접하여 이영각으로 들어가네按節承流無寸補 관찰사는 임금의 풍화를 조금도 보탤 것 없으니傍人莫道繡衣榮 옆 사람은 암행어사의 영광을 말하지 말라盡邀州老宴朱樓 광주의 늙은이들 다 맞이하여 붉은 누각에서 잔치 여니瑞石風煙接素秋 서석산의 바람과 안개 가을과 접해있네酒力借紅生滿面 술의 힘 빌어 붉어 얼굴 가득 생기가 돌고花枝映日揷盈頭 햇살 받은 꽃가지 머리 가득 꽂았네使君酳酌歡情洽 술 따르는 사신은 기쁜 정 흡족하고方伯乞言喜氣浮 좋은 말 청하는 관찰사 기쁜 기운이 넘치누나閭里自知鳩杖避 동네방네 구장 짚은 늙은이 피하는 것 절로 아니聖王遺訓豈無由 성왕이 남긴 가르침 어찌 이유가 없겠는가 - 규암선생문집(圭菴先生文集) 권1송인수(宋麟壽, 1499-1547)의 자는 미수(眉叟)이며 호는 규암(圭菴)이다.
- 2018-07-26 | NO.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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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수-題光州柳谷亭
- 柳谷多奇勝 유곡에 수려한 경치 많은데,眼明孤草亭 외로운 정자에 눈이 번쩍 뜨이네溪流沙舊白 시냇물 흐르니 모래 본시 하얗고,雨霽峀新淸 비 개이니 산봉우리 새로 푸르네夜酌邀銀闕 밤에 앉아 둥근 달 맞이하고春遊臥玉甁 봄놀이에 옥병이 거꾸러지누나.年年同社會 해마다 사일의 모임을 함께 하니,淳朴筆難形 순박한 풍속을 글로 형용키 어렵네.-규암선생문집(圭菴先生文集) 권1송인수(宋麟壽, 1499-1547)의 자는 미수(眉叟) 이며 호는 규암(圭菴) 이다.
- 2018-07-10 | NO.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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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헌- 죽취정에서
- 정정한 푸른대가 그 지조 견고하여찬 겨울 눈 서리응 가소롭게 여겼도다. 이처럼 곧은 절개 그 누가 따를손가사람마다 앙시(仰視)하여 그지없이 사랑하네 누정앞에 옮겨 심어 그의 경관 미화하고너의 이름 불러다가 그의 호를 지었도다. 좋은 명당 가리어서 이곳 땅에 보양하고춘추 양철 참배하여 주위사방 쓸었도다. 자손들이 함께 모여 이곳에서 공부하며삼가하고 조심하여 수신조행하였도다. 옥석처럼 갈고 닦아 그의 광채 이뤄지니언덕위의 녹죽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네. 추원하는 그대 마음 간절하고 독실하여선대 유업 이르려고 굳게 명세 하였도다. 모든 만물 초췌하고 강과 산이 소조하니 효사하는 그 마음이 평시보다 간절하네. 지재(止霽) 송철헌(宋哲憲 1870~1925) 이 죽취정에 대한 명(銘)에서 "범군 형식이 광주의 죽취산 아래에 있는 선영을 추모하여 그 옆에 조그.마한 띠집을 지었다"라고 전하며 시를 읊었다.
- 2020-04-25 | NO.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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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뢰(愁牢) - 성호사설 제11권 / 인사문(人事門)
- 수뢰(愁牢) - 성호사설 제11권 / 인사문(人事門) : 성호 이익(李瀷, 1680~1763) 방언(方言)에 차(車)를 수뢰라 하고 또한 단오(端午)도 수뢰라고 하는데, 이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의 서제(庶弟) 차득공(車得公)이 미행(微行)하여 무진(武珍 광주(光州)의 고호) 주리(州吏) 안길(安吉)의 집에 이르러 말하기를 “나는 서울 사람인데, 집은 황룡사(皇龍寺)와 황성사(皇聖寺)두 절 사이에 있고 이름은 단오(端午)다.”라고 하였다.당시 국가제도에 외방(外方)의 주리 한 사람씩을 서울에 올라와 집무(執務)하게 했으니, 지금의 기인(其人)이 바로 그것이다. 안길이 당번(當番)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 황룡사와 황성사 두 절 사이에 있는 단오의 집을 찾았으나,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다.그런데 한 노인이 “두 절 사이는 거의가 궁궐이니 단오는 차득공(車得公)일 것이오.”라고 했으니, 차(車)를 수뢰라고 이른 지가 오래되었다.오늘날 기인(其人)이 맡은 일도 대궐 안의 일용물품을 공급하는 것이니, 그 근원은 역시 신라로부터 전해온 것이다. 저 방언은 한때 이어(俚語)에 지나지 않아 아무 뜻이 없는 것인데도 오히려 이같이 오래 전해왔으니, 기인의 일이 내려오며 후세의 폐단이 되어 졸연히 혁파하지 못하게 된 것이 마땅하다. 수뢰(愁牢) 두 글자는 시가(詩家)들이 또한 운어(韻語)로 삼을 수도 있다.[주-D001] 기인(其人) : 신라 말기의 중. 성은 김(金). 고려의 임금들은 그를 매우 높여, 현종(顯宗)은 대선사(大禪師), 숙종(肅宗)은 왕사(王師), 인종(仁宗)은 선각국사(先覺國師)의 존호(尊號)를 각각 주었다. 그의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은 중국의 것을 고려화(高麗化)한 것이며, 우리나라 절터는 그가 정한 것이 많다 한다. 시호는 요공(了空)이다.
- 2020-09-22 | NO.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