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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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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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산경찰서 충의비
    광주시 광산구 어등대로 551(운수동) 광산경찰서1976년6.25전쟁을 전후하여 당시 광산군 지역인 동곡, 삼도, 비아, 대촌, 평동지역에서 전개된 전투와 공비소탕 작전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광산구 출신 전몰경찰관 75위를 추모하고 넋을 높이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
    2018-06-19 | NO.314
  • 광산이병환봉선실적비
    광주시 북구 삼각동 산 174-11947년이 광산이병환봉선실적비(光山李炳煥奉先實績碑)는 종질從姪 만영萬永이 건립했다.이 비석은 일곡동 일동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왼쪽 산자락에 1947년에 세웠다. 화강암 재질의 비석으로서 크기는 135cm×47cm×19cm이었다. 그러나 일곡택지개발사업을 벌이던 1993년 중에 유실되었다가 현 위치로 옮겼다.嗚呼 吾從叔 諱 炳煥⽒ 早失其慈 侍養德嚴 ⾟勤⽽過⼦⽽來 及其⼗四五 慨然有志于學 ⽽貧窮無路 朝傭於野 暮讀於塾 可爲遂⼯矣 叔以鳩聚之財 孝奉偏嚴 友愛諸從 周六⽶於匿 其於三代先壟 皆以竪⽯ ⾄於⾨祚不 薄⼟⼯⽥圭畓 庶萬他⼈所奪 ⽽叔郞以遝退 ⾃爲已有 敍諸族⽈ 吾亦⼦孫 ⾹⽕之德 其可忍乎其中⼗四⽃⽥ 紬于⾨中 未⾄爲絶⾹矣 所叔以無爲之疾 先⽗⽽去 其不年之怚其可忍⾔哉 室潭陽鞠⽒啓洪之⼥ ⽗東⽇ 妣忠州朴⽒ 祖諱仁芳 妣光⼭⾦⽒幷咸陽朴⽒ 曾祖諱命光 妣平康蔡⽒ 舍⼈諱達善⼗世孫也⼦周城耽津崔⽒也 吾爲吾叔 似可爲傍⼈所議 以若從弟之年淺質薄 不識操制之⽅ 故不得已 ⽽撫實焉檀紀 四千⼆百⼋⼗年 丁亥 ⽉ ⽇ 族姪 萬永 竪번역아, 우리 종숙 병환씨께서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봉양함에 자식의 직분을 다하더니 나이 14,5세에 이르러 개연히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빈궁하여 길이 없어 아침에는 들에서 일하고 밤에는 서당에서 공부를 하여 학문을 이루었다.종숙은 모은 재산으로 홀아버지 봉양하고 제종과 우애하며 비축한 곡식으로 3대 선롱의 모든 비석을 세워 가문의 복이 박토 공전 규답이 아님에 이르렀다. 타인에게 빼앗긴 것을 종숙은 물려받아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 제종에게 말하기를 “나 또한 자손이니 향화의 올림을 어찌 끊기게 하리요?” 하고 그 중 40두락을 문중에 내 놓아 향이 끊이지 않게 하였다. 종숙이 어찌 할 수 없는 병에 걸려 부친 앞에 돌아가시니 오래 살지 못한 슬픔을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부인은 담양국씨 계홍의 딸이다. 부친은 동일 모친은 충주박씨, 조는 인방이요 조비는 광산김씨와 함양박씨, 증조는 명광이요 증조비는 평강채씨이다. 사인 달손의 10세손이며, 아들은 주성, 자부는 탐진최씨이다.나는 내 종숙에게 방인처럼 함께 의논할 바 못되나, 종제의 나이 어려서 질박하고 조제의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내가 사실을 기록하노라.단기 4280년 정해 족질 만영 세움
    2018-11-13 | NO.313
  • 광산이씨상서공파선세사적비
    광주시 남구 원산동 951-6이 광산이씨상서공파선세사적비는
    2018-11-29 | NO.312
  • 광주 십신사지 석비
    광주 북구 서하로 48-25,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유형문화재 제3호(1986. 11. 01지정). 이 광주 십신사지 석비(光州 十信寺址石碑)는 십신사지 석불과 함께 있다가 1977년 현 위치인 광주시립민속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한 것이다. 1978년 2월 보수 공사 때 비석에 씌어진 글에서 '정사년'이라는 글귀가 발견되었다. 석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기둥, 지붕돌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받침돌에 새겨진 '왕' 자는 고려적인 요소이나 팔작지붕과 퇴화된 거북 부분으로 미루어 고려 전통을 이어 받은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기둥에는 윗부분에 범자를 새기고 그 아래에 글을 새겼다. 그 내용은 불경의 한 종류인 능엄경에 나오는 글로 '병을 막고 오래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비는 옥개석 일부가 결실되었을 뿐 비신과 귀부가 완전히 갖추어진 것이다. 비의 규모는 총고 5.15m, 길이 2.98m, 너비 1.68m의 지대석 위에 길이 2.73m, 너비 1.32m의 귀부를 놓고, 그 위에 길이 3.96m, 너비 0.98m, 두께 0.5m의 비신을 결구한 다음 높이 0.35m인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비신의 상단부에 길이 83㎝, 너비 68㎝로 구획을 만들고 보주와 같은 문양을 새겨 놓았다. 이 문양은 범자의 옴(唵)자를 도안화한 것이다. 이로 인해 사서에 범자비로 기록되어 있다. 비의 제호는 범자문양 밑에 가로로 ‘大佛頂尊勝陀羅尼幢(대불정존승다라니당)’이라 오목새김되어 있어, 이 비가 불정존승다라니경을 세긴 경당(經幢)임을 알 수 있다. 석질이 약하고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힘들지만 대개 총 9행으로, 1행 31∼32자를 음각하였으며 제 9행의 말미에 ‘丁巳(정사)’란 간지가 있다. 건립 연대는 세종19년(1437) 또는 연산군 3년(1497년)으로 비정할 수 있어 15세기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이 비에 새겨진 ‘대불정존승다라니당’이란 문자와 같은 불당을 새긴 예로는 황해도 해주와 평안북도 용천의 〈대불정다라니당〉이 있고 개성 선죽교와 평양 범수교의 교재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증심사범자칠층석탑의 경우도 이러한 경당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은 존승법(尊勝法)이라고도 한다. 그 내용은 석가여래불정으로부터 출현한 불정존승을 본존불로 삼고 ‘존승다라니’를 외우면서 얽매여 있는 일체의 생각이나 미망에서 벗어나려는 밀교의 수도법이며 또한 질병을 막거나 장수 등을 기원하는 현세구복적인 기도법이다. 이 석비도 이러한 경의 내용이나 기도법에 관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한 계통인 밀교의 진리를 설법하는 비문을 새긴 범자비로서 남한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이다.
    2018-06-19 | NO.311
  • 광주4월혁명 발상기념탑
    광주시 동구 중앙로 302 광주고2002년광주4.19혁명주역들은 그동안 소외된 4.19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2000년 5월 10일 ‘4.19발상탑 건립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4.19주역들의 십시일반으로 5천만원의 기금을 모아 2002년 4월 19일 ‘광주4월혁명발상기념탑’을 광주고등학교에 건립했다.
    2018-06-19 | NO.310
  • 광주공원 비석군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광주공원의 비석군은 광주시내 여러 곳에 흩어진 비석을 1957년 광주공원 입구에 옮겼다가 1965년 지금의 위치에 27기의 비를 조성했다. 광주공원 선정비는 주로 광주의 수령이었던 조선시대의 광주목사나 관찰사 도지사들의 비이고 특별하게 의리의 유학자 안규용, 어사 조헌과 여규익, 그 외 행군수(군수)와 찰방(역을 관리하는 관리) 약간 명의 선정비들이 있다. 사적비군 입구 은행나무 정중앙 앞자리에 행주산성 전투로 잘 알려진 권율장군 선정비가 있다. 선정비중 가장 값진 비다. 권율장군은 팔도 총사령관이었으며 광주목사와 도원수를 지내며 이순신 장군과 함께 육지는 권율, 바다는 이순신이 지켰다고 할 만큼 큰 공을 이룬 인물이다. 권율과 이순신은 서해 류성룡이 추천했던 인물들로 권율은 광주목사 도원수로 이순신은 좌수사요 통제사로 바로 여기에서 두 역사적 인물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으니 그 호남의 정기가 참으로 빛나고 빛나는 곳이다. 서헌거사라 불린 안규용(1873-1959)의 의적비도 있다. 안규용은 보성사람으로 과거는 보지 않고 유학을 공부하는데 집중했는데 사변적인 성리학보다는 의리론적 도학 공부를 했다. 보성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제 지배 하에서는 낙재와 제자들이 만든 죽곡서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집중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와 심문을 당하기도 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한 유학자로 다시금 새겨 봐야 할 인물이 아닌가 싶다. 어사 조헌(趙憲·1544-1592)의 행적도 눈길을 끈다. 조헌은 경기도 김포출신으로 선조 때 어사와 전라도 도사를 지냈다. 정여립과 갈등해 정철과 더불어 서인 강경파에 속해 호남인맥숙청에 영향을 미쳤을 것도 같지만 성품이 강직해 자기 주장에 선명했다. 상소를 올리는 방법도 도끼를 옆에 놓는 이른바 도끼상소를 하고나 자기 머리를 바닥에 찍어 피를 내는 시위를 했다. 그래서 선조는 조헌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싫어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쓴 소리하면 싫어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세태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인사로 선정된 윤웅렬은 1896년 고종이 지방제도를 개편하면서 전라도 초대 관찰사로 부임한다. 이 때 나주에서 군수와 관리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윤웅렬은 광주로 도망쳤고 그 뒤 광주에 눌러 앉아 관찰사 일을 했다. 이후 광주에 배치된 관찰도는 전남도청이 됐다. 윤웅렬도 한때 개화파 정치인으로 갑신정변에 참여했으나 나중에 일본에 망명한 후 친일내각의 군부대신이 됐다. 친일인사 이근호의 선정비도 지목됐다. 그가 전남 5대 관찰사(1902년∼1903년) 재직 시절인 1903년에 세워졌다. 이근호는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일제강점기의 조선 귀족 출신이다. 1898년 경무사에 임명되었고 1902년 2월 전라남도관찰사 겸 전라남도재판소 판사에 임명 돼 전라남도 지계감독을 겸했다. 1906년 육군참모장을 지냈다. 한일병합 이후 1910년 10월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11년 1월에는 은사공채 2만5000원을 받고 2월 총독 관저에서 열린 작기본서봉수식爵記本書奉授式에 예복을 갖춰 참석했다.
    2018-10-19 | NO.309
  • 광주권생산도시화의 탑(1991)
    광산구 하남산단9번로 62 안청공원에 있다. 1991년 2월 21일 당시 이효계 광주직할시장은 "여기 무등벌에 터 잡은 하남공업단지, 밝고 활기찬 광주인의 꿈이 영그는 생산도시화의 영원한 상징이 되소서"라고 비석에 글귀를 남겼다.광주시와 광주상공회의소 공단업체들이 2억원을 출연해 조각가 金永中씨가 제작한 이 탑은 높이 20m로 비상하는 학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으며 탑 중앙과 좌우에 톱니바퀴, 컴퓨터 모형이 조각돼 있다.
    2018-06-19 | NO.308
  • 광주노씨 비석군
    광주시 북구 오치동 109광주노씨 비석군은 노씨삼릉단 재각 앞에 있다.
    2018-12-07 | NO.307
  • 광주독립운동기념탑
    광주시 서구 상무공원로 101(상무시민공원)2014년기념탑은 14m 높이의 탑과 조형벽, 동상 등으로 구성되며 탑 아래쪽 기단에는 광주독립운동 관련 유공자 1124명의 이름을 새겼다.기념탑은 광주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자주독립을 지킨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하고 후손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광주독립운동기념탑 제막식이 2014년 12월 5일 서구 상무시민공원 광장에서 열렸다.광주독립운동기념탑은 대일항쟁기 40여 년 동안 광주를 중심으로 그 무자비한 일제의 탄압에 맞서 싸우셨던 이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불멸의 독립정신을 선양하고 영원히 빛나는 장소로로 사용된다.1895년부터 1910년까지 20여 년간이나 일제와 전쟁을 벌였던 한말 호남의병의 찬란한 업적과 1919년 불로동 부동교 아래서 시작된 이 지역 3.1운동, 10년 뒤 인 1929년 전국은 물론 아시아를 일깨웠던 광주학생독립운동, 1945년 해방 때가지 계속되었던 문화 교육 노동 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은 의향 광주 정신의 모태가 되었다.기념탑은 각계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상무시민공원 내 부지 480㎡, 높이 14m 규모로 총공사비 8억 여원을 투입 조성됐으며, 탑신 주변에는 서재필(대한민국장), 양한묵(대통령장) 등 광주·전남 독립유공자 1,000여 명의 명단을 새겨 조국 독립을 위해 외세에 치열하게 맞선 선열들의 뜻이 후손들에 길이 기억되도록 했다.
    2018-12-19 | NO.306
  • 광주비엔날레 천인탑
    광주 북구 비엔날레로 111 광주시립미술관 옆1995년이 천인탑은 중외공원 내 광주시립미술관 오른편 두 개의 황토색 기둥을 말한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는데 인류가 평등하게 잘 살고 조국의 통일과 광주의 번영을 염원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높이 9.4m의 삼면체 콘크리트 기둥으로 서로 마주보고 세워졌으며 1천 4백여 개의 점토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면과 뒷면 좌․우면에 남녀상이 표현되어 있고, 맨 꼭대기에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인 서석대를 화강석으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천인탑 만들기」는 1995년 9월 20일 개막일부터 시작되었다.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일정한 금액을 내고 원하는 문양을 선택하여 점토로 직접 제작하고 여기에 국적, 성명, 소망 등을 새긴 다음 콘크리트 기둥에 부착하여 폐막일인 11월 20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총 1천 4백 10명이 참여했다.관람객들이 새긴 내용을 요약해 보면,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발전을 기원하고 가정의 건강과 평온, 화목, 사랑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이 밖에 통일염원, 결혼과 대학 합격기념 글도 보인다.천인탑은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주체가 되고, (사)민예총광주시지부(기획 윤만식)가 주관이 되어 조성했다. 소요예산은 시민들의 참가비와 조직위원회 예산, (주)삼능건설 이광국(李光國) 씨의 협찬금으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유지건축사무소(소장 김유지)에서 하였고, 조형물 설치는 서경석, 전범수, 김대중, 양갑수, 김기찬, 정찬영, 양용진, 윤종금, 김규대, 김연아, 박병수, 장명하 등이 참여했다.제1회 광주비엔날레(1995. 9. 20.∼11. 20.)가 이념과 국가, 종교, 인종을 뛰어 넘는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조감하면서 21세기 문화의 새로운 지표를 설정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의미에서 ‘경계를 넘어’로 주제가 설정되자, 이 지역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천인탑 만들기’가 구상된 것이다.이 천인탑은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손수 흙으로 만든 문양을 음양의 상징인 양 기둥에 부착시키고 상단에는 무등산을 조형한 광주비엔날레 창설 기념탑이다.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잘 살고 조국의 통일과 광주의 번영을 염원하는 뜻을 담았다.
    2018-06-28 | NO.305
  • 광주삼일독립운동기념탑(중외공원)
    광주시 북구 하서로 521986년광주삼일독립운동기념탑은 중외공원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로 옆에 있다. 1986년 11월 28일에 고정수가 제작하고 김정호가 글을 쓰고 하남호가 글씨를 썼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조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식민화된 지 10년째 나던 1919년 이해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가 울려 퍼지고 3월 10일 광주의 불로동 냇가 모래밭 장터에서도 만세의 함성이 터졌다.시민과 학생 수천명이 모여 독립운동가를 부르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성난 기마헌병들이 칼을 휘들렀어도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를 외쳐대며 경찰서 마당까지 진행했다.11일에도 13일에도 만세를 계속했다. 이 만세로 일본 경찰에 끌려간 이가 수백명이었고 그 중 35명은 여섯달부터 세해를 징역 살았다. 우리는 그 날의 광주만세를 영원토록 기억해 민족의 얼을 삼고자 그 내력을 새겨 이 탑을 세운다.이 기념탑은 그날의 광주만세를 영원토록 기억해 민족의 얼을 삼고자 세웠다.
    2018-06-08 | NO.304
  • 광주어린이탑(시립미술관)
    광주시 북구 하서로 52(중외공원)1982년이 광주어린이탑은 중외공원 광주시립미술관으로 들어서면 하정웅로를 끼고 도는 공원 안에 높다랗게 서 있다. 1982년 5월 5일에 세웠다. 탑의 전체 높이는 16.5m이며 청동 조각 높이는 5.5m이다.탑은 우호 김명중이 제작했으며 글은 영랑 김윤식(1903~1950)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며, 글을 쓴 이는 장전 하남호(1926~2007)이다.우리 모두가 자기만의 이익을 버리고 온 국민이 함께 뭉쳐서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 할 일을 착실히 이루어 가며 우리들의 목적을 향해 돌풍처럼 치달아 이룩하자는 뜻을 담은 작품이다.탑의 맨 위 꼭대기에는 비천상을 보는듯하게 어린이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청동으로 형상화했고 긴 나팔을 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탑의 뒷면 꼭대기에는 '큰뜻'이라는 글씨를 새겨 어린이들을 자라나는 과정에서 언제나 큰뜻을 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탑의 가운데쯤에 양면으로 대리석 조각으로 책을 보거나 산에 오르거나 뛰어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형상화시켰다.탑 꼭대기 조각은 이 고장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이좋게 함께 뭉쳐서 예술․농업․공업․산업을 발전시켜 살기 좋은 내 고장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의 힘을 다해 돌풍처럼 날아가는 희망에 찬 작품이다.탑 오른쪽 돌조각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우리 어린이들의 앞날은 훤히 트인 하늘과 같이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탑 왼쪽 돌조각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나라를 튼튼하고 씩씩하게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탑 뒤끝 돌조각은 살기 좋은 우리 고장을 만들어 가는 힘 드는 일 그리고 어린이 공원을 보살피어 지켜주는 것을 뜻하는 용 조각이다.
    2018-06-06 | NO.303
  • 광주전남순국학생위령탑
    광주시 북구 하서로 521989년이 위령탑은 광주시립미술관 앞에 위치한다. 6.25전쟁에 참가한 학도병 122명의 우국충정과 애국정신을 후세에 남기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1989년 순국학도병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에서 건립하였다.이 탑을 세우는 데 힘쓴 추진위원장은 임병성, 헌시는 손광은, 글씨는 이돈흥이 썼다. 손광은의 헌시는 다음과 같다.헌시(獻詩)자유의 햇불 아래이름 없이 죽은 동지여이름 없이 죽은 학우여죽어서 살아 있는 님이여죽어서 살아 있는 혼이여총도 없이 군번도 없이싸우고 지킨 나라죽어서 지킨 나라에다시 살아나서겨레의 힘이 되소서나라의 빛이 되소서위령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945년 8월 15일 우리 겨레에게는 감격의 광복과 더불어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날이다. 그러나 우리는 광복이 독립으로 이어질 것으로 믿었고 미소에 의한 분할 점령이 심한 좌우익의 갈등을 낳았어도 분단이 고착화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 3상회의는 한국의 신탁통치를 의결하였다. 처음 민족진영과 더불어 이를 반대했던 공산집단은 하루밤 사이에 찬성으로 돌변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애국학생들은 수적으로 압도했던 좌익세력들과 처절한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살인과 방화를 서슴지 않는 혹독한 테러의 희생이 된 학생도 부지기수였다.1950년 6월 25일 통일의 염원은 사라지고 남과 북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후 북한은 이 날을 기해 대한민국을 침공하였다. 잠시 평화를 얻어 투쟁을 멈추고 학업에 전념했던 우리 반공학생들은 펜을 버리고 그 손에 총을 들었다.군번없이 무명전사로 참전한 나이 어린 학생들은 오로지 조국과 민족자주와 독립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아무런 주저도 없이 피어보지 못한 꽃다운 젊음을 이름 모를 산야에서 산화하였다. 이제 그날의 포성은 아스라해졌고 국토에 전흔은 희미해졌다. 40년의 세월은 흘렀어도 외로운 싸움에 꽃다운 나이로 간 광주전남의 젊은 영혼을 흠모하며 살아남은 우리가 1989년 이 탑에 새기니 그대들이여 부디 평안히 잠드시라.
    2018-06-08 | NO.302
  • 광주정신지키기 10만인선언 기념비
    광주시 북구 수곡동 산 29-2(5.18구묘지)2002년
    2018-12-19 | NO.301
  •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상
    광주시 동구 장동 전남여자고등학교2017년 1929년 11월 3일, 광주의 학생들은 일본의 만행에 저항하여 분연히 일어나 3.1만세운동의 불꽃을 다시 지폈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자고등학교) 학생들도 소녀회와 독서회를 중심으로 일본의 억압에 맞서 투쟁을 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국과 해외로 번져 최대의 항일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어서 민족의 미래를 밝혔다. 그날의 여학도들은 죽어도 부활하고 꺾여도 새움 트는 민족의 보배로운 꽃송이들이었다.   이에 우리는 개교 90주년을 맞아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상을 세움으로써 선배님들의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고 정의로운 정신을 이어 받고자 한다. 2017년 11월 3일   전남여자중•고등학교 총동창회, 재학생(부설 방송통신고 포함), 교직원 일동
    2018-12-13 | NO.300
  •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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