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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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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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의거 희생영령 추모비
    광주시 남구 구동 16 광주공원1962년광주공원 옛 시민회관 앞에 있는 이 추모비는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다 쓰러진 일곱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이 뜻을 만세에 전하기 위해 전남도민의 마음을 답아 건립했다. 1960년 4월 19일에 절정을 이룬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에 대한 광주 학생들의 저항이었다. 이 시기 광주 학생 운동의 특징은 운동의 중심이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광주에서 3.15부정 선거가 시행된 다음날인 3월 16, 17일에 광주고, 전남여고, 광주공고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으나 경찰에 발각되어 좌절되었다. 본격적인 항쟁은 서울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한 다음날인 4월20일에 시작되었다. 계엄령이 발표된 이날 오전 9시 3,4백여 명의 중고생들이 옛 광주역(지금의 광주 구역 소방서 사거리)에 집결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시위대가 우체국 앞을 지나 충장로 1가로 접어들었을 때 헌병대가 출동하여 막자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헌병이 총을 쏘며 무자비한 연행이 시작되었다. 이 시위에서 민간인 사망 6명, 부상자 21명, 경찰사망 1명, 부상자 12명이 발생하고 37명이 연행되어 갇히게 되었다.그날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광주 공원에 4.19혁명 희생 영령 추모비와 혁명탑이 세워져 있다.시인 조지훈이 그 날의 정신을 읊은 시비가 있다. 일반적인 추모비가 하늘 높이 솟은 것과는 달리 낮은 키로 숙연함을 더욱 갖게 만든다.조지훈 시비(詩碑)자유여 영원한 소망이여피흘리지 않곤 거둘수 없는 고귀한 열매여!그 이름 부르기에 목마른 젊음이였기에맨가슴을 총탄 앞에 헤치고 달려왔더니라불의를 무찌르고 자유의 나무의 피거름 되어우리는 여기 누워 있다잊지 말자 사람들아뜨거운 손을 잡고 맹세하던아 그날 사월 십구일을조지훈(趙芝薰, 1920~1968) 지음
    2018-06-19 | NO.46
  • 5.18국립묘지 민중항쟁추모탑
    광주 북구 운정동 산34 국립 5.18민주묘지 내1997년5ㆍ18 묘지 중앙에 위치한 이 탑은 사각기둥인 탑신이 높이 40m로 우리나라 전통석조물인 당간지주를 현대감각에 맞게 형상화 했다. 탑신 가운데 감싸쥔 손 모양으로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형상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에 반사된 빛은 희망의 씨앗이다.
    2018-06-19 | NO.45
  • 6.25참전 순국용사 진혼비
    광산구 선암동 53-2 증보교 옆2007년'백두대간 등줄기 타고 내려~'로 시작하는 오경수 시인의 진혼시가 새겨있다.
    2018-06-19 | NO.44
  • 6.25참전 호국영웅 명비
    동구 중앙로 302 광주고2016년이 비는 국가보훈처에서 추진하는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 사업’의 하나로, 광주고 출신의 6·25참전유공자 91명을 발굴하여 이들의 이름이 각인된 호국영웅 명비이다.
    2018-06-19 | NO.43
  • 88올림픽기념탑
    광주 북구 운암동 186-21988년이 기념탑은 올림픽 축구 예선 경기의 광주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중외공원 어린이공원지구 내 운암저수지 아래에 ‘올림픽 동산’을 만들고, ‘88올림픽 기념탑’을 세웠다. 탑 주변에 참가국 국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게양대를 세우고, 건립취지, 대회이념, 헌시, 축구 참가국, 우리 고장의 주역들 등을 오석으로 새겼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건립취지이 탑은 88서울올림픽 축구 예선 경기 광주 개최 기념 조형물이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화해와 협력의 동작을 하고 있다. 이것은 영속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영원의 화합과 조화를 무한운동으로 표현했다. 또 힘찬 엉킴의 모습에서 새 이상과 세계로 뛰어 넘는 광주시민 정신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여 이 탑을 세운다.서울올림픽 대회이념1. 서울올림픽은 화합과 전진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2.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헌장을 준수함으로써 세계의 젊은이들이 힘과 기량을 마음껏 겨룬다.3. 서울올림픽은 동서양 진영의 이념적 화합이 이루어지며 스포츠 예술 학술이 어울리는 최초의 문화 올림픽이다.4. 서울올림픽은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나라에는 용기를 심어주며 우리 민족사에는 도약과 번영 영광을 남기게 된다.헌시세계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더 멀리 더 높이 더 빨리 뛰어 오르자.자유와 형화를 위해 물들고 엉켜 하나로 껴안고 사랑하고민족의 화합과 전진을 위해다시 하나로 힘 모아 한 몸 되어푸른 하늘로 뛰어 오르자.사랑 질서 친절로민족의 기상을 열어인류가 하나 되는 뜨거운 정을 우리 모두 노래 부르자자랑스런 민족을 아로새겨 노래 부르자 규모 : 높이 13m, 폭 24m설계 및 조각 : 김행신(金行信)헌시 : 손광은(孫光殷)글씨 : 하남호(河南鎬)
    2018-11-15 | NO.42
  • 경찰충혼탑(1956)
    남구 사동 177 사직공원광주 사직공원에 세운 탑으로 여순 사건과 한국전쟁 등 당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광주, 전남출신 순국 경찰관 3,196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높이가 약 14m에 이른다. 1956년 전남도청 앞 상무관 정원에 건립되었는데 1981년 10월 23일 현재의 위치에 이전했다.
    2018-06-19 | NO.41
  • 광산경찰서 충의비
    광주시 광산구 어등대로 551(운수동) 광산경찰서1976년6.25전쟁을 전후하여 당시 광산군 지역인 동곡, 삼도, 비아, 대촌, 평동지역에서 전개된 전투와 공비소탕 작전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광산구 출신 전몰경찰관 75위를 추모하고 넋을 높이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
    2018-06-19 | NO.40
  • 광주4월혁명 발상기념탑
    광주시 동구 중앙로 302 광주고2002년광주4.19혁명주역들은 그동안 소외된 4.19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2000년 5월 10일 ‘4.19발상탑 건립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4.19주역들의 십시일반으로 5천만원의 기금을 모아 2002년 4월 19일 ‘광주4월혁명발상기념탑’을 광주고등학교에 건립했다.
    2018-06-19 | NO.39
  • 광주권생산도시화의 탑(1991)
    광산구 하남산단9번로 62 안청공원에 있다. 1991년 2월 21일 당시 이효계 광주직할시장은 "여기 무등벌에 터 잡은 하남공업단지, 밝고 활기찬 광주인의 꿈이 영그는 생산도시화의 영원한 상징이 되소서"라고 비석에 글귀를 남겼다.광주시와 광주상공회의소 공단업체들이 2억원을 출연해 조각가 金永中씨가 제작한 이 탑은 높이 20m로 비상하는 학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으며 탑 중앙과 좌우에 톱니바퀴, 컴퓨터 모형이 조각돼 있다.
    2018-06-19 | NO.38
  • 광주독립운동기념탑
    광주시 서구 상무공원로 101(상무시민공원)2014년기념탑은 14m 높이의 탑과 조형벽, 동상 등으로 구성되며 탑 아래쪽 기단에는 광주독립운동 관련 유공자 1124명의 이름을 새겼다.기념탑은 광주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자주독립을 지킨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하고 후손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광주독립운동기념탑 제막식이 2014년 12월 5일 서구 상무시민공원 광장에서 열렸다.광주독립운동기념탑은 대일항쟁기 40여 년 동안 광주를 중심으로 그 무자비한 일제의 탄압에 맞서 싸우셨던 이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불멸의 독립정신을 선양하고 영원히 빛나는 장소로로 사용된다.1895년부터 1910년까지 20여 년간이나 일제와 전쟁을 벌였던 한말 호남의병의 찬란한 업적과 1919년 불로동 부동교 아래서 시작된 이 지역 3.1운동, 10년 뒤 인 1929년 전국은 물론 아시아를 일깨웠던 광주학생독립운동, 1945년 해방 때가지 계속되었던 문화 교육 노동 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은 의향 광주 정신의 모태가 되었다.기념탑은 각계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상무시민공원 내 부지 480㎡, 높이 14m 규모로 총공사비 8억 여원을 투입 조성됐으며, 탑신 주변에는 서재필(대한민국장), 양한묵(대통령장) 등 광주·전남 독립유공자 1,000여 명의 명단을 새겨 조국 독립을 위해 외세에 치열하게 맞선 선열들의 뜻이 후손들에 길이 기억되도록 했다.
    2018-12-19 | NO.37
  • 광주비엔날레 천인탑
    광주 북구 비엔날레로 111 광주시립미술관 옆1995년이 천인탑은 중외공원 내 광주시립미술관 오른편 두 개의 황토색 기둥을 말한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는데 인류가 평등하게 잘 살고 조국의 통일과 광주의 번영을 염원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높이 9.4m의 삼면체 콘크리트 기둥으로 서로 마주보고 세워졌으며 1천 4백여 개의 점토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면과 뒷면 좌․우면에 남녀상이 표현되어 있고, 맨 꼭대기에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인 서석대를 화강석으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천인탑 만들기」는 1995년 9월 20일 개막일부터 시작되었다.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일정한 금액을 내고 원하는 문양을 선택하여 점토로 직접 제작하고 여기에 국적, 성명, 소망 등을 새긴 다음 콘크리트 기둥에 부착하여 폐막일인 11월 20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총 1천 4백 10명이 참여했다.관람객들이 새긴 내용을 요약해 보면,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발전을 기원하고 가정의 건강과 평온, 화목, 사랑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이 밖에 통일염원, 결혼과 대학 합격기념 글도 보인다.천인탑은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주체가 되고, (사)민예총광주시지부(기획 윤만식)가 주관이 되어 조성했다. 소요예산은 시민들의 참가비와 조직위원회 예산, (주)삼능건설 이광국(李光國) 씨의 협찬금으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유지건축사무소(소장 김유지)에서 하였고, 조형물 설치는 서경석, 전범수, 김대중, 양갑수, 김기찬, 정찬영, 양용진, 윤종금, 김규대, 김연아, 박병수, 장명하 등이 참여했다.제1회 광주비엔날레(1995. 9. 20.∼11. 20.)가 이념과 국가, 종교, 인종을 뛰어 넘는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조감하면서 21세기 문화의 새로운 지표를 설정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의미에서 ‘경계를 넘어’로 주제가 설정되자, 이 지역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천인탑 만들기’가 구상된 것이다.이 천인탑은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손수 흙으로 만든 문양을 음양의 상징인 양 기둥에 부착시키고 상단에는 무등산을 조형한 광주비엔날레 창설 기념탑이다.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잘 살고 조국의 통일과 광주의 번영을 염원하는 뜻을 담았다.
    2018-06-28 | NO.36
  • 광주삼일독립운동기념탑(중외공원)
    광주시 북구 하서로 521986년광주삼일독립운동기념탑은 중외공원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로 옆에 있다. 1986년 11월 28일에 고정수가 제작하고 김정호가 글을 쓰고 하남호가 글씨를 썼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조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식민화된 지 10년째 나던 1919년 이해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가 울려 퍼지고 3월 10일 광주의 불로동 냇가 모래밭 장터에서도 만세의 함성이 터졌다.시민과 학생 수천명이 모여 독립운동가를 부르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성난 기마헌병들이 칼을 휘들렀어도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를 외쳐대며 경찰서 마당까지 진행했다.11일에도 13일에도 만세를 계속했다. 이 만세로 일본 경찰에 끌려간 이가 수백명이었고 그 중 35명은 여섯달부터 세해를 징역 살았다. 우리는 그 날의 광주만세를 영원토록 기억해 민족의 얼을 삼고자 그 내력을 새겨 이 탑을 세운다.이 기념탑은 그날의 광주만세를 영원토록 기억해 민족의 얼을 삼고자 세웠다.
    2018-06-08 | NO.35
  • 광주어린이탑(시립미술관)
    광주시 북구 하서로 52(중외공원)1982년이 광주어린이탑은 중외공원 광주시립미술관으로 들어서면 하정웅로를 끼고 도는 공원 안에 높다랗게 서 있다. 1982년 5월 5일에 세웠다. 탑의 전체 높이는 16.5m이며 청동 조각 높이는 5.5m이다.탑은 우호 김명중이 제작했으며 글은 영랑 김윤식(1903~1950)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며, 글을 쓴 이는 장전 하남호(1926~2007)이다.우리 모두가 자기만의 이익을 버리고 온 국민이 함께 뭉쳐서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 할 일을 착실히 이루어 가며 우리들의 목적을 향해 돌풍처럼 치달아 이룩하자는 뜻을 담은 작품이다.탑의 맨 위 꼭대기에는 비천상을 보는듯하게 어린이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청동으로 형상화했고 긴 나팔을 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탑의 뒷면 꼭대기에는 '큰뜻'이라는 글씨를 새겨 어린이들을 자라나는 과정에서 언제나 큰뜻을 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탑의 가운데쯤에 양면으로 대리석 조각으로 책을 보거나 산에 오르거나 뛰어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형상화시켰다.탑 꼭대기 조각은 이 고장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이좋게 함께 뭉쳐서 예술․농업․공업․산업을 발전시켜 살기 좋은 내 고장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의 힘을 다해 돌풍처럼 날아가는 희망에 찬 작품이다.탑 오른쪽 돌조각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우리 어린이들의 앞날은 훤히 트인 하늘과 같이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탑 왼쪽 돌조각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나라를 튼튼하고 씩씩하게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탑 뒤끝 돌조각은 살기 좋은 우리 고장을 만들어 가는 힘 드는 일 그리고 어린이 공원을 보살피어 지켜주는 것을 뜻하는 용 조각이다.
    2018-06-06 | NO.34
  • 광주전남순국학생위령탑
    광주시 북구 하서로 521989년이 위령탑은 광주시립미술관 앞에 위치한다. 6.25전쟁에 참가한 학도병 122명의 우국충정과 애국정신을 후세에 남기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1989년 순국학도병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에서 건립하였다.이 탑을 세우는 데 힘쓴 추진위원장은 임병성, 헌시는 손광은, 글씨는 이돈흥이 썼다. 손광은의 헌시는 다음과 같다.헌시(獻詩)자유의 햇불 아래이름 없이 죽은 동지여이름 없이 죽은 학우여죽어서 살아 있는 님이여죽어서 살아 있는 혼이여총도 없이 군번도 없이싸우고 지킨 나라죽어서 지킨 나라에다시 살아나서겨레의 힘이 되소서나라의 빛이 되소서위령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945년 8월 15일 우리 겨레에게는 감격의 광복과 더불어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날이다. 그러나 우리는 광복이 독립으로 이어질 것으로 믿었고 미소에 의한 분할 점령이 심한 좌우익의 갈등을 낳았어도 분단이 고착화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 3상회의는 한국의 신탁통치를 의결하였다. 처음 민족진영과 더불어 이를 반대했던 공산집단은 하루밤 사이에 찬성으로 돌변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애국학생들은 수적으로 압도했던 좌익세력들과 처절한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살인과 방화를 서슴지 않는 혹독한 테러의 희생이 된 학생도 부지기수였다.1950년 6월 25일 통일의 염원은 사라지고 남과 북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후 북한은 이 날을 기해 대한민국을 침공하였다. 잠시 평화를 얻어 투쟁을 멈추고 학업에 전념했던 우리 반공학생들은 펜을 버리고 그 손에 총을 들었다.군번없이 무명전사로 참전한 나이 어린 학생들은 오로지 조국과 민족자주와 독립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아무런 주저도 없이 피어보지 못한 꽃다운 젊음을 이름 모를 산야에서 산화하였다. 이제 그날의 포성은 아스라해졌고 국토에 전흔은 희미해졌다. 40년의 세월은 흘렀어도 외로운 싸움에 꽃다운 나이로 간 광주전남의 젊은 영혼을 흠모하며 살아남은 우리가 1989년 이 탑에 새기니 그대들이여 부디 평안히 잠드시라.
    2018-06-08 | NO.33
  • 광주정신지키기 10만인선언 기념비
    광주시 북구 수곡동 산 29-2(5.18구묘지)2002년
    2018-12-19 | NO.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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