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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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지상인물상(1999)
    서구 내방로 152, 518기념공원'아! 광주여 영원한 빛이어라!'라는 주제로 518기념공원의 중앙에 518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에 있는 작품으로 쓰러진 한 명을 두 사람이 부축하며 끝까지 항거하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담고 있다.
    2018-06-19 | NO.18
  • 5.18지하모자상(1999)
    서구 내방로 152, 518기념공원5.18현황조각이 있는 추모공간 아래로 내려가면 희생된 아들을 품은 모자상이 있고 전면에서는 5.18 당시의 순간을 조각했고 뒤에는 희생자들의 명단을 새겨놓았다.
    2018-06-19 | NO.17
  • 聖將 을지문덕상
    전남 장성군 상무대 육군보병학교1953년청동 환조로 이루어진 기념조각으로 군 장병들의 성금을 모아 차근호(1925~1960)가 제작한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 1953년 11월 28일 광주 상무대에서 개막식을 가진 이후 40여년간 광주 상무대의 위용을 자랑했으나 1994년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동상도 이전됐다.
    2018-06-20 | NO.16
  • 고경명-임란의병장 충렬공제봉고경명선생상
    광주시 서구 화정동 407-17 광주월드컵경기장 북문옆 무궁화동산서구 풍암 월드컵경기장 북문 옆 공원에 임진왜란 때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북상, 왜군과 싸우다 1592년 충청 금산전투에서 아들 인후(因厚)와 함께 전사한 고경명(高敬命)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다.
    2018-06-19 | NO.15
  •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상
    광주시 동구 장동 전남여자고등학교2017년 1929년 11월 3일, 광주의 학생들은 일본의 만행에 저항하여 분연히 일어나 3.1만세운동의 불꽃을 다시 지폈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자고등학교) 학생들도 소녀회와 독서회를 중심으로 일본의 억압에 맞서 투쟁을 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국과 해외로 번져 최대의 항일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어서 민족의 미래를 밝혔다. 그날의 여학도들은 죽어도 부활하고 꺾여도 새움 트는 민족의 보배로운 꽃송이들이었다.   이에 우리는 개교 90주년을 맞아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상을 세움으로써 선배님들의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고 정의로운 정신을 이어 받고자 한다. 2017년 11월 3일   전남여자중•고등학교 총동창회, 재학생(부설 방송통신고 포함), 교직원 일동
    2018-12-13 | NO.14
  • 남강최상채박사상
    광주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옛 본관건물 앞1978년
    2018-11-30 | NO.13
  • 러셀 블레이즈 델 대령 동상(2009
    남구 제중로84, 사회복지법인 충현원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의 포화속에서 가족을 잃고 고아가되어 길거리에 버려진 어린 생명 1.059명의 어린생명을 살려야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목숨을 구해낸 러셀 로이드 블레이즈델(1910-2007) 미국 공군 군목(대령)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는 동상이다.
    2018-06-19 | NO.12
  • 서구 평화의 소녀상(2017)
    서구 경열로 33, 광주 서구청서구 평화의 소녀상은 광주서구평화의소녀상건립위원회가 추진했고, 고근호 작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 펜과 종이를 쥐고 진실을 기록하는 소녀상의 어깨와 손등 부위에는 소생의 의미가 담긴 나비 떼로 배치했다.
    2018-06-20 | NO.11
  • 서정우 하사 흉상(2015)
    남구 제석로 73 문성중학교서정우 하사(1989~2010)는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휴가를 포기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전사했다.
    2018-06-20 | NO.10
  • 수피아여고 3.1운동 기념동상(1995)
    광주시 남구 백서로 13(양림동), 수피아여자고등학교1995년 1910년 3월 10일 광주3.1만세운동에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경찰에 끌려가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른 광주수피아여학교 출신 박애순,이태옥,김양순,윤혈녀(윤형숙),김덕순,조옥희,이금봉,하영자,간화선,이라현,최수향,김만순,홍순애 등 23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수피아여중고총동창회에서 동창회 모금액 2천만원과 시지원금 4천만원 등 총 6천만원을 들여 1995년에 건립하였다. 광주,전남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은 경인지역보다는 약간 늦은 3월 10일의 광주시위를 기점으로 전라도로 확산되어갔다. 하산(何山) 김철 선생을 중심으로 기독교인들과 비밀독서모임회원들이 모여서 거사를 계획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장날이였던 3월 10일 거사일로 정하고 이날 오후2시에 기독교인과 수피아여고, 숭일고, 광주농고(현 자연과학고) 학생들이 양림동에서 광주천을 따라서 양동시장을 향해 내려오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나중에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행렬에 참여하였고 그 수가 수천명에 달했다. 시위행렬이 일본경찰서(현 충장서림)앞에 이르렀을떄 일본군 무장기마 헌병대가 출동해서 수피아 여학생의 팔이 일본도에 잘리는 등 유혈진압 끝에 100여명이 체포되고 김철, 서정희, 김강 등 주동인물 30여 명이 옥고를 치렀으며, 숭일학교 학생 송광춘은 심한 고문으로 인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2018-06-20 | NO.9
  • 안중근의사 동상
    서구 상무자유로 상무시민공원2017년안중근 의사는 일제 침략의 원흉이자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할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3발의 총을 쏴 저격해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6일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에 그 분의 유해는 못 모셨어도 안 의사의 호국사상을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 광주에 새겼다.
    2018-06-20 | NO.8
  • 안중근의사상
    북구 하서로 52북구 중외공원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로를 따라 가는 중에 왼편의 공원 중앙에 안중근의사상이 있다. 1987년 4월 4일 건립했다.안중근의사상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회장 안학선, 명예회장 박용훈, 추진위원장 심상준, 총무부장 이석주, 감사 안덕순 등이며 김대길이 조각했고 장전 하남호가 글씨를 썼다.안중근(1879~1910)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처단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순흥, 자는 응칠, 세례명은 토마스로 양반가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1906년부터 계몽운동을 벌였다. 1907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9년 우덕순과 단지회라는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주의 하얼빈 역, 지야이지스고 역 근처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등의 하차 시 암살을 준비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森泰二郞), 남만주 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살인의 죄형으로 관동주 뤼순 감옥(뤼순형무소)에서 사형(교수형) 집행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2018-06-07 | NO.7
  • 어비슨 동상(2011)
    남구 백서로 66-1(양림동)광주YMCA와 광주양림교회가 고든 어비슨(Gordon W. Avison 1891~1967) 부부의 희생적 발자취를 기려 광주 남구 양림교회 맞은편에 어비슨기념관을 짓고 동상을 세워, 2010년4월11일 준공식과 제막식을 가졌다.
    2018-06-20 | NO.6
  • 의재허백련선생상
    광주시 동구 남문로 166(학동)이 의재허백련선생상은 학동삼거리 소공원에 있다. 광주 출신으로 한국화의 대가였던 의재 허백련 화백(毅齋 許百鍊, 1890-1977)의 동상이다. 허백련은 조선 후기 한국 남종화를 완성했던 허련의 후손으로,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서 그림의 기본을 익히고, 일본과 서울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1938년 광주에 정착하여 활동하면서 연진회를 발족하여, 전통서화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고, 삼애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지도자를 육성하였다. 또 일본인이 버리고 떠난 무등산의 차밭을 인수해 춘설다원을 경영하면서, 전통차의 재배와 보급에 힘썼다. 원로 유명조각가 김영중의 작품이며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글과 일중 김충현님의 글씨로 기록을 남겼다.
    2018-11-16 | NO.5
  • 임방울선생흉상
    광주시 북구 북문대로 60, 광주문화예술회관1992년본명은 임승근(林承根), 임방울은 예명이다. 14세 때 광주에서 박재현에게 〈춘향가〉·〈흥보가〉를 배웠고, 후에 구례에서 유성준에게 〈수궁가〉·〈적벽가〉를 6년간 배웠다. 25세에 상경하여 김창준·송만갑의 소개로 무대에 올라 〈춘향가〉의 '쑥대머리' 대목을 불러 세상에 알려졌다.일본에서 취입한 음반 '쑥대머리'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만주 등에서 100만 장이나 팔렸다고 하며 지금도 그가 취입한 레코드가 전해지고 있다.그의 소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맑고 아름다운 성음에 성량이 풍부하여 막힌 데가 없는 통성이었다. 창극이 성행하던 시절에도 창극운동에는 전혀 가담하지 않고 판소리의 전통을 지킨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판소리 5마당에 모두 정통하나 특히 〈춘향가〉 중 옥중가 대목의 '쑥대머리'와 〈수궁가〉에서 '토끼와 자라' 대목이 장기이다. 단가 〈호남가〉를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그의 소리는 박귀희·한애순·김용준 등이 이어받았다. 2000년 10월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임방울이 위대한 소리꾼으로 후세에 남고, 후세 사람들이 그의 예술을 통해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그의 서민적 예술혼이 가치 있는 민족예술로 평가받고 후세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게 하는 일은 민족예술을 되살리는 일이다.
    2018-06-26 |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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