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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극 ‘나두야 간다’에 대한 평
    10월 5일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 음악극을 보고
    눈물이 찔끔거렸다. 눈물방울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슴이 약간 저리는 정도로 눈물을 머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극이 끝나자 일어서서 박수를 쳐댔다. 이렇게 좋은 연극, 더욱이 우리 광주가 낳은 시인 용아 박용철의 인생을 재미와 가슴 시린 연출로 1시간 반 동안 담아낸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음악극 ‘나두야 간다’는 2020년에 초연된 창작 작품이다.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이 일본 유학 후 고향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정지용과의 삼각관계(?) 속에서 문학적 공감과 갈등 다시 화합하는 과정을 그렸다. 특히 일제강점기 하에서의 우리말로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이들 세 사람이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음악극은 연극적 플롯이 아니라 서사극의 형태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서로의 역할과 장면 등에서 무대 위에 소품과 의상들을 늘어놓고 현장에서 갈아입고 출연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물론 이 극은 일부 즉흥극이나 애드리브가 아니라 치밀하게 짜여진 대본임은 분명하다.이 극은 박용철의 대표적인 시, 그리고 극에서 연출되는 박용철의 생애와 어울리는 시들에 창작 음악을 입힌 음악극이다. 시와 음악이라는 다르면서도 사실은 하나인 시어들에 덧붙여 필요한 장면마다 어울리는 영상을 배경으로 하는 시청각적 연출을 선보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몰입감을 주어 1시간 30분의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공연 내용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과 문화적 탄압을 받던 시절, 일본 유학 중 만난 박용철과 김윤식이 귀국하면서 김윤식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한 박용철의 결혼과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극예술’ 등의 잡지를 자비로 출간하는 모습, 그리고 잡지 발간에 지나친 과로로 인해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과정을 ‘팩션’으로 만든 작품이다.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하지만 민족의식이 꿈틀거리는 젊은 청년들에겐 문학으로나마 우리 말을 지키고 우리 문학을 완성시키고 싶었던 그들의 꿈에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동참시키게 만들었다. 갑자가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라는 자기반성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장치였다.이번 공연을 선보인 극단 까치놀은 광주 서구문화센터 공연장 상주단체로 광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 7월과 8월 세 번에 걸쳐 광주서구문화센터와 빛고을시민문화관 무대에 극을 올린 바 있다. 이 극을 본 사단법인 용아박용철기념사업회 김보곤 이사장이 광산 출신의 박용철 극을 광산에서 해야 한다며 유치해 10월 5일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예정에 없던 공연이 이루어졌다.극단 까치놀은 1985년 창단, 현재 36년의 역사로 ‘훌륭한 예술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연극을 사랑하자’라는 구호로 순수연극의 대중화와 지역문화자산 발굴, 레퍼토리 작품화 등 지역 연극의 발전을 위해 활동 중인 전문 예술단체이다.특히 ‘나두야 간다’는 광주에서 활동하는 한보리 작곡가가 우리 지역 시인들의 시를 음악으로 풀어내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안다. 박용철의 대표적인 시어들을 음악으로 만들어 소개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또 출연진들도 가수 수준은 아닐지라도 애써 노래부르는 모습들에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전문 연극단체라면 배우들의 극중 발음이 명확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대본에 충실해야 하고 애드리브도 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달력이다. 11명의 출연진 가운데 2명 정도가 발음이 잘 들리지 않아 대사의 앞뒤를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다. 물론 박용철의 생애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고 극 전체의 흐름에 중대한 장애는 아니었다. 창작음악은 시의 느낌도 있고 시대적 상황에 맞추려 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암울하거나 처진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음악을 아마추어 수준의 출연진이 노래를 불렀으니 더더욱 음악적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좋은 음악은 작곡도 중요하지만 부르는 이가 누군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떠나가는 배’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나두야 간다’가 제목인 것으로 착각할만큼 알려져 있다. 이는 가수 김수철의 ‘나두야 간다’에서 일부 싯구들을 차용한 덕분이다. 이 극에서도 전체를 한보리의 창작곡으로 접근하겠다는 의지도 필요하겠지만 관객들에게 익숙한 김수철의 두 소절을 끌어다가 시의 초반부 네 소절을 편곡하여 들려주었다면, 그리고 합창으로 불렀다면 관객들이 재미있게 따라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이 음악극에서 가장 ‘눈물’을 짜냈던 박용철의 죽음 장면 이후 같은 네 소절을 슬픈 음악으로 끌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마지막에 박용철의 ‘시적 변용에 대하여’를 낭독하는 장면은 사족처럼 느껴져 이 극의 감동을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2021-10-05 | NO.41
  • 하정웅미술관, 네 가지 색깔의 위험한 作亂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2021 ‘어떤 날, 어떤 이야기’ 11월 28일까지
    전시는 제목처럼 ‘어떤 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가의 시점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가거나, 경험을 소재로 하거나, 지난한 지루함을 견디고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거나, 오래도록 반복작업 과정에서 건져낸 돔성당의 정문을 바라보는 듯한 파편들이었다.전시는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었고 작가의 구상을 디스플레이 하는 과정에서 미술관의 노력이 돋보였다. 관람객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전시 효과 덕분에 작품에 대한 접근과 이해에 군더더기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과 수원, 부산, 대구시립미술관에서 각각 3~4명의 작가를 추천하고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작품 특성과 장르 등을 고려하여 미디어, 설치, 회화, 공예라는 네 영역의 작가를 선정했다. 이번 ‘빛 2021’전은 작가들의 다음 전시작품에 따라 성장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작가에 따라 전시에서 한 번 보여준 작품을 다음 전시에 또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유사한 작품을 보여주어 새로움을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개인전이나 초대전과 같은 자신의 작품 역량을 어느 정도 보여준 전시였다면 다음 전시에서는 그를 넘어서는 작품으로 관객을 찾아야 한다. 작가의 창작 세계는 연속적이지만 변화를 통해 관객과 지속적인 대화를 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문소현, 정정하, 문지영, 이윤희 작가의 작품(시계방향으로)문소현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Night Life'라는 제목처럼 네온사인과 빌딩조명을 드로잉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인의 밤의 환락과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영상에 몰입하다보면 우주의 저편으로 시간의 통로 속에 빠져드는 미아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되돌아오면 현실세계는 다시 욕망덩어리라고 깨우쳐주고 있다.정면에 있는 이 작품을 기준으로 양쪽에 각 세 편씩의 '공원생활'이, 전시장으로 들어섰을 때 관람객 입장에서 보면 뒤편에 '터지는 폭죽들'이 배치됐다. 이러한 공간구성을 통해 전시장 중앙에 서있는 관람객을 ‘재미있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잠시이고 ‘기괴하거나 무섭다’라는 전이된 장면에서 인간도 한갓 나약한 존재임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아마 문소현은 인간은 먹이사슬의 정점이 아니라 '터지는 폭죽들'처럼 불빛을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스러져 죽는 존재이며, 스톱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보여준 '공원생활' 시리즈처럼 인위적인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조종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문소현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보여주고 있다. 문소현에게 던지는 질문은 인간의 욕망과 기괴함이 갖고 있는 문제에서 인간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관점이다. 다음 작품에서 그러한 관점이 표현된 시각을 보고 싶다. 정정하는 색에 굶주려 있는 것 같다. 미술가는 색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색’을 정리하고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경우는 우리 주위에서 드문 것 같다. 그는 부모님의 페인트 가게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고객이 희망하는 색을 조색하여 판매하는 과정에서 색에 대한 문리가 트인 작품이 'Light Pixel'로 표현됐다.빨주노초파남보, 우리가 어려서부터 무지개색으로 생활화된 색의 영역을 정정하를 통해 훨씬 더 많은 색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각각의 색은 빛으로 표현된다. 그의 이번 전시는 회화라기보다는 빛으로 만든 설치이다. 정정하의 말마따나 “나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질문으로 작가로서의 욕망을 색을 통해 분출하려는 시도가 형광페인트를 활용한 '아름다운 두려움'으로 나타났다.이번 작품은 페인트와 인테리어 현장에서 사용하는 줄눈 튜브, 공업용 레진 등으로 이루어졌다. 흔히 미술가들이 사용하는 물감이 아니라 그의 생활전선에서 얻어진 것들로 작품이 진행됐고 작품은 비정형 이미지를 통한 형식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형식이 '빛에 대한 연구'로 드러났다. 우리는 평소에 무관심하게 보는 빛을 그는 어떤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정정하에게 부탁하는 것은 이번 전시에서 빛을 모으고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다음에 같은 작품을 보여주는 한계를 갖지 말길 바란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Light Pixel'의 각 편린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소통을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이윤희는 도자작품을 하는 데 이번 작품은 유럽 중세시대의 작품을 보는 듯 하고 돔성당 입구 정문과 주변 벽에 붙어있는 조상들을 보는 듯 했다.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고 로댕의 ‘지옥문’을 재현하는 듯한 형상들을 오마주했다. 곳곳에 해골들이 기본으로 등장하고 상징적인 기호들이 더해져서 죽음이나 지옥을 표현했다. 한국판 '신곡'은 다르다고 하면 모두가 하얀 도자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면 작품을 제외하고는 입체 작품이 전시장 중앙에 두 줄로 배열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작품마다 소녀상이 있는가하면 배트맨처럼 두 눈의 주변을 가린 소녀의 두상들이다. 또 10여개의 단일 작품 제목을 모두 '무제'로 처리했다. 이는 일본위안부 사건으로 논란이 된 ‘평화의 소녀상’과 연계하는 듯한 암묵적 메시지도 보인다. 도자의 특성은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흙으로 빚고 굽고, 다시 색칠하거나 붙이거나 굽거나 하는 것이다. 수차례의 가마굽기 반복작업과 섬세하고 화려한 마감으로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단테가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한 존재”라고 했다는 점에서 정말 수고롭게 고생한 이 작품도 물질적으로 ‘나약’한 존재성을 갖고 있다.이윤희는 이번에 단테의 '신곡'을 오마주했다면 다음에도 같은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한국적인 죽음과 지옥문이 보고 싶다. 같으면서도 다른 10여개의 작품 제목을 '무제'로 하는 무책임보다는 작가의 영감에서 드러나는 작품 제목을 부여하든가 아니면 시리즈로 번호를 부여하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문지영은 큰 화면의 가족의 모습을 통해 사랑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은 '엄마의 신전' 시리즈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동생이다. 동생은 시각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다. 어려서부터 함께 성장하면서 작가는 남들과 다른 모습의 동생을 작품 속에서 자신으로 치환시켜 그 아픔을 대신 감내하려는 흔적이 보였다.작가는 가족이 등장하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눈을 덧칠하거나 가리는 등의 수법으로 동생의 고통에 동참했다. 어머니는 동생이 빨리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자주 절에 가고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가의 마음에 남은 그 흔적들이 오늘까지 이어져 이번 작품에서 대중에게 약자에 대한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작품을 보면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붓터치가 눈길을 끈다. 가족사진을 보는 것처럼 화면 전체를 넓게 사용하는 붓칠이 편안해보였다. '가장 보통의 존재'(2014~2015) 연작시리즈와 4~5년이 지난 '엄마의 신전' 시리즈는 동생을 매개로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가족의 슬픈 역사를 보는 듯 하다. 그는 어떤 가족이야기를 그리고 싶은 것일까 짐작만 갈 뿐이다.문지영은 '가장 보통의 존재'와 '엄마의 신전'을 통해 장애를 가진 동생과 이를 둘러싼 엄마의 기도가 포함된 가족이야기를 풀었다. 또 다시 같은 류의 스토리로 작품을 구성하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성에 대한 다른 주제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네 명의 작가는 네 가지 색깔을 보여주지만 귀결점은 ‘인간성’으로 느껴진다. 작품마다 정말 어떤 날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이 갖고 있는 인간성은 어떤 것인가이다.네 명의 작가에게 주문한다. 작가는 창의적인 존재이고 예술성이나 철학성과 같은 어려운 담론을 담기도 하지만 관객과 소통하는 작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던져야 한다. 어떤 작가들은 평생을 같은 스타일의 작품을 보여주는가 하면, 어떤 작가들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좀 더 발전하거나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보여준다. 정답은 없지만 작가는 늘 앞서가고 실험적이며 관객의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이 긴 생명력을 갖는다고 믿는다.
    2021-10-03 | NO.40
  •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거대한 일상을 보다
    거대한 일상: 지층의 역전을 통한 형상미술
    정인서(2021.06.21.) 광주에서 부산까지는 불과 3시간, 늘 심정적으로 멀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고속버스에 오르니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섬진강 휴게소를 거쳐 부산 노포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로 도시철도가 연계되어 버스로 한 번 환승하여 벡스코 건너편에 자리한 부산시립미술관을 찾았다.바쁜 일상 속에 묻혀 사는 도시인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도시로 탈출(?)하는 몸부림으로 다소간의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광주에서는 늘 눈에 익힌 작품들만 보아온 터라 다른 작품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1980년대의 미술은 흔히 민중미술로 귀결된다. 부산도 그러했다.우리 미술계는 1970년대까지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모더니즘에 대한 구상미술이 전면부에 등장했다. 1980년대는 구상미술과 민중미술이 혼재된 시기였다. 필자는 1980년대 초반 광주의 한 미술관 전시담당으로 있으면서 지역작가를 중심으로 한 <구상작가 11인전>을 연 바 있다. 구상미술은 자연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거나 약간의 인상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미술이었다. 추상미술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어느 정도 형상을 갖추고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구상미술은 관람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데 부산시립미술관이 일을 저질렀다. 부산시립미술관이 마련한 <거대한 일상: 지층의 역전(3.31~8.22)>은 추상미술이나 구상미술과는 다른 ‘형상미술’을 들고 나선 것이다. 강렬한 색감, 인체에 대한 새로운 묘사, 욕망의 표현, 일상에 대한 주목 등 이전과는 다른 표현을 한 작가들에 주목했거나 민중미술로 분류되었던 작품들에 대해서도 해석을 달리 하는 역전을 시도한 것이다.이 전시의 부제는 ‘1980년대 부산미술조명전’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부산에서 유의미한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을 재인식함으로써 한국미술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형상미술'의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다.전시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기존 구상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대상의 묘사와는 달리, 대상의 왜곡과 변형, 강렬한 색채를 통해 현실에 대한 자각과 표현을 시도한 작가들의 움직임을 새롭게 맥락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후 ‘형상미술’로 불리게 된다.”물론 지금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났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새로운 '형상'으로 드러내려 한 1980년대 부산미술을 돌아보면서 한국미술사를 새로이 접근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고나 할까. 이번 전시는 1980년대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 26명 작품 120여점과 1980년대 한국미술계를 아우르는 아카이브(archive) 등 당시의 시대정신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작품 구성은 현실의 자각, 표현의 욕구, 욕망에의 추동, 일상의 중요성 등 키워드로 분류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민중미술의 시기로 인식되는 1980년대 한국미술을 ‘형상미술’로 재고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추상에서 형상으로의 회복을 현실의 표정을 통해 드러낸 ‘현실의 표정-형상의 전개’, 일상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에 대한 표현적 시도를 다루는 ‘표현의 회복’, 형상미술의 다원성을 드러낸 강렬한 표현주의적 시도를 보여주는 ‘뒤틀린 욕망’, 마지막으로 거대한 일상 속 삶의 체취를 다각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격랑의 시대’로 전체적인 구성이 이루어졌다.물론 ‘형상미술’이라는 구체적인 개념 정립이 미술계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그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종길은 “형상은 재현, 묘사,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이기도 하다”면서 “전통의 맥락에서 형상의 개념은 표현주의에서처럼 작가의 관심이 사물의 재현이라는 형식의 문제보다는 내용이 비중을 둔 경우이며 작품이 ‘시대적 리얼리티’를 내포하고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다.늘 ‘개념’이라는 틀을 중시하면서도 여기에 갇혀 작품을 해석하다보면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로는 작품 자체에 몰입하여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것이다. 어떻든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시선은 표현보다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데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전시장 도입부 ‘현실의 표정’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 한다. 송주섭의 ‘세대’라는 작품이다. 주름진 피부가 메마른 땅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매우 말랐다. ‘세대’(147×78cm, 1982)는 지층의 표질을 인물의 표정으로 옮기면서 인간의 삶도 저러할진대 이 땅의 역사는 어찌했을 까라는 암시를 던져주고 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틀에서 설명되는 작가 그리고 작품이었지만 시대의 고난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겠다. 그런가하면 ‘세대’(73.5×54cm, 1984)는 더 기괴해지면서 얼굴 표정이 바위덩어리, 또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를 연상시켰다.전시장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격랑의 시대’에서 안창홍은 ‘위험한 놀이’(73×105cm, 1983)를 통해 시대 상황을 개인주의적 화법으로 그려냈다. 중세시대 어린아이들의 놀이를 재현하면서 눈을 파내 억눌린 개인의 심리를 자극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경기대 교수 김복기는 이번 전시를 인간 존재에 대한 응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상, 인간 내면의 의식과 감춰진 욕망의 표출, 소소한 일상을 다룬 작품들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늘 반복적인 틀에 갇혀 사는 것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사람마다 나름의 복잡다단한 얽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부산에서 만난 ‘거대한 일상’을 통해 내 삶의 지층을 역전시키는 의식적 경험을 얻어간다면 참으로 좋으리라. 이 전시가 새로운 표현형식을 창안하거나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반드시 찾아봐야할 전시임이 분명하다. 전시장 내부는 다양한 가벽 설치를 통해 관람객들의 동선을 쉽게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의 관람도 눈에 띄었다. 미성년이 보기엔 다소 민망한 작품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작품엽서와 관련 텍스트를 활용한 콜라주와 색칠하기 등은 상당히 좋은 체험학습이라고 생각되었다. 
    2021-06-21 | NO.39
  • 그들은 왜 파리로 갔나
      파리로 간 작가들을 만나러 갔다. 벚꽃이 만개한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들은 파리에서 벚꽃을 보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에펠탑 근처에 벚꽃이 만발하고 웬만한 공원에서도 벚꽃 군락이 자태를 뽐낸다.벚꽃 아래에서 파리로 간 작가들을 만난다는 약간의 들뜬 마음을 갖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처음 만난 작가는 이성자(1918~2009)였다. 붉은 하늘 아래 우주의 별들이 우리 오방색으로 형태를 이룬 모습은 신비스럽고 고향의 향수가 묻어나는 듯 했다.김환기(1913~1974)는 멀리서 석조다리 위에 빛나는 야간 조명등 불빛을 받으며 나타났다. 그에게 빛은 흔들거리는 네모를 통해 세상의 시각은 가까이보다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오늘의 광주 작가들은 세상과 얼마나 교류하고 있을까? 자신의 작품 경향에 따라 중국이든, 인도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그들을 만날 시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넉달간 광주에 체류하며 우리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시간이 이제 짧다.3월 31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리는 있는 <파리로 간 예술가들>의 손짓이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이 전시를 기획한 홍윤리 학예연구사는 "세계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와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시립미술관 소장품과 하정울 컬렉션으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면서 "우리 광주 예술의 축을 이루는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생각하고 세계화에 더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광주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1980년대 초반 만났던 김창열과 영국 회고전을 앞둔 구순의 박서보(1931~ )를 40여년만에 다시 만나는 기쁨이 나에겐 너무 좋았다.나도 코로나가 끝나면 파리로 가고 싶다. 이제 파리에서 말하고 있는 세계의 다른 작가들을 만나 한국의, 아니 광주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싶다.변종하(1926~2000)는 1980년의 대답을 평화로 노래했고, 요즘 물방울 값 좀 제대로 받고 있는 김창열(1929-2021)은 케이옥션에서 ‘싹쓸이’ 대접을 받느라 기분이 좋단다.2차 대전 이후 전 세계 예술인들의 로망으로 변한 파리는 한국의 예술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파리는 유럽에서 최첨단의 도시였고 전통 서구문화의 집성지로 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몽마르트언덕으로 대변되는 파리는 다양한 현대미술의 유파들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들고 나왔다.파리로 간 우리 예술가들은 남관(1954)을 시작으로 김흥수(1955), 박영선(1955), 김환기(1955), 권옥연(1957), 이응노(1958), 이세득(1958) 등이 1950년대 전후 파리 화단에 선보인 작가들이었다.1960년대 아직은 6.25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변종하(1960), 문신(1961), 김창열(1969)을 비롯하여 1970년대에는 이항성(1975) 등이 큰 바다를 건너갔다.그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시원을 이룬 작가들이어서 더욱 그렇다.
    2021-03-27 | NO.38
  • 진정한 광주인, 박광옥
    그때 회재 박광옥(朴光玉) 선생은 20여 년간의 관직에서 물러나 광주 집에 돌아와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파죽지세로 쳐들어오는 왜군에 경상도 상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회재는 수레를 타고 달려가 광주목사 정윤우를 급히 만나 전라도 순찰사 이광에게 어서 가서 왜군을 막기 위해 북쪽 요새지 길목에 군사를 미리 보내 방어하도록 하라고 전한다. 그래야 서울을 호위하고 호남을 보존할 수 있어서다.당시 순찰사 이광은 서울로 가던 중 마침내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하자 도중에 후퇴하고 도망쳐버렸다. 회재는 통곡하며 창의사 김천일, 첨지 고경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싸울 것을 결의하고 후방에서 군사와 군량과 무기를 조달했다.김천일은 회재에게 편지를 보내 “한편은 전장에 나가고 한편은 지방에서 방비하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일이다. 기반이 흔들리면 이 일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앞장서서 싸우는 것은 오직 공의 협조에 달렸다”고 회재의 공을 높이 평가했다. 회재의 후방 지원이 그만큼 절대적이었던 것이다.이때 도원수 권율 장군이 광주목사로 왔다. 수원에서 패전당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권율을 지원하기 위해 회재는 다시 누구의 명령도 없는데 이웃 고을들에 격문을 보낸다. 사사로 수천 명의 의병을 모아 권율에게 복속시켰다. 이리하여 다시 권율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였다.이런 회재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권율이 뒤에 큰 공을 세울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회재가 선비들을 보내어 마을마다 드나들면서 의병을 모집하니 겁을 먹고 응하지 않던 주민들이 그 의로움에 차츰 호응하였던 것이다.회재의 정성에 권율이 탄복하고 군사를 모으는 일은 오로지 회재를 믿고 위임하였다. 이런 사정을 듣고 조정에서 복직하라는 어명이 떨어져 회재는 나주목사로 부임한다. 회재는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는데 의리상 사양할 수 없다며 불편한 몸에 다시 관복을 입고 임금이 어디에 있으며 이때가 어느 때냐며 줄곧 나라를 지키는데 혼신을 다했다.회재는 직접 전장에 나갈 계획이었지만 의병을 모집하고 뒷바라지하느라 무리한 탓에 피곤이 겹친 데다 어릴 때 얻은 옛병마저 재발했다. 후방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한 탓에 결국 병으로 인해 예순여덟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전장에 나가 직접 전투에 참여한 누구 못지않게 큰 공을 세운 회재는 임진왜란 시기 하나의 빛나는 별이었다. 몸은 성치 않은 데다 관직을 그만둔 처지인데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국가와 임금을 위해 헌신한 모습을 우리 역사 어디서도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가히 청사에 기록되어 전할 인물이라 함직하다. 회재 박광옥의 이러한 애국 행위는 이미 어릴 적부터 닦아온 공부와 가풍과 한 인간의 고결한 성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지 갑자기 발현한 것이 아니다.어려서 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는 어른처럼 상을 치렀고 뒷날 어머니를 여의었을 때는 너무 슬퍼 묘소에 여막을 짓고 3년 복제를 하여 온 고을이 탄복하고 경의를 표했을 정도다.한평생 출세를 위해서 높은 벼슬아치의 문앞을 찾아가지 않았고 부임하는 고을마다 먼저 향약을 세워 청년들을 가르쳤다. 그야말로 선비관리였다. 관직에 있으면서 잘 먹고 잘 입고 살 법도 하지만 근검절약하는 검덕(儉德)이 생활 신조였다.나라에서 주는 녹봉밖에는 아무것도 더 취하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면 손대지 않고 그것을 누구에게 주지도 않았다. 아는 지인들이 자리 부탁을 하면 크게 꾸짖었다.젊어서 늙음에 이르기까지 의관을 정제하고 무릎을 꿇고 책을 놓지 않았다. 특별히 문장에 뜻을 두지는 않았으나 문장이 중후하고 아름다워 옛 문장의 정취가 담겨있고 필법이 자유분방하였다.만년에는 더욱 주역, 계몽, 가례 등 글에 힘써 통달하였다. 어린 서질부터 기대승 선생과는 교우를 하였고, 사암 박순, 옥계 노진과도 우의가 깊어서 서로 존경하는 사이로 지냈다.안타깝게도 광주의 인물 회재 선생을 아는 이는 많지 않는 듯하다. 학교에서 자기 고장의 역사와 인물을 잘 가르치지 않아서다.회재 같은 고향 인물들을 가르쳐서 진정한 광주정신을 후대의 핏줄에 흐르게 하는 것이 진정한 광주사람을 양성하는 길이 아닐까. 회재 선생은 지금 광주 서구의 벽진서원에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오는 11월 22일 광주유림회관에서 광주 향토문화개발협의회 주최로 처음으로 임진왜란 시절 회재 선생의 활동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열었으니 선생의 위상을 다시 내세울 때다. 광주시의 관심이 요구된다.출처 : 시민의소리(http://www.siminsori.com)
    2019-11-15 | NO.37
  • 정인서 문화비평 47 광주시립미술관 역사를 새로 써보자
    문화도시 광주의 명맥을 유지하는 시설 가운데 광주시립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3년만 더 있으면 개관 30주년이라는 한 획을 긋는 지역미술관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 다음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미술관이기도 하다.이런 역사를 가진 미술관답게 서울에 지역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인 광주전남갤러리를 인사동에 열었고 다른 미술관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중국시장을 겨냥한 북경창작센터의 운영은 괄목할만한 성적 가운데 하나이다.여기에 하정웅 선생의 기증작품을 전문으로 전시하고 청년작가 육성과 지역 중견작가들의 일대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획전을 여는 하정웅미술관, 사진전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전시관, 금남로 분관(민간위탁), 갓 새내기 청년작가를 위한 청년예술인지원센터 운영, 국제레지던시 운영 등 참으로 많은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인력 대비 전시기획이 너무 많다 보니 볼만한 전시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블록버스터급의 전시가 없다는 점이 늘 아쉽다는 평가였다. 지역 작가 작품 구매도 편향적이거나 단 한 작품이라도 좋은 작품을 사들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역 미술계의 요청도 있었다.물론 이는 모두 예산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같은 예산으로라도 좋은 전시기획을 할 수 있고, 지역 기획자를 길러내는 일에 나서서 공동큐레이터제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역할 모색이 필요하다. 시립미술관이 전시기획 공모전을 여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나 싶다.일이라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고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게 사람의 일이다. 전임 미술관장들에게 어려차례 이런 이야기를 해봤지만 좋은 아디이어지만 ‘예산’을 이유로 늘 실행하지 않았다. 이번에 광주시립미술관이 ‘가보고 싶은 공립미술관 1위’를 목표로 5개년 혁신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국제적 수준의 전시기획 시스템 정립 ▲맞춤형 교육프로그램 운영 및 홍보방식 다양화 ▲경험하고 즐기는 복합문화공간 구축 ▲소장품 분야별 특성화에 맞춘 작품 수집·관리 ▲하정웅미술관 활성화 등 5개 중점과제와 24개 세부사업으로 구성했다고 한다.이 발전방안은 전승보 시립미술관장 취임 1년을 맞아 ‘도시감성을 풍요롭게, 상상력이 넘치는 미술관’을 비전으로 제시한 가운데 마련된 것이다. 더불어 대중성, 창의성, 다양성을 기반으로 미술관 정체성을 정립해 ‘가보고 싶은 공립미술관 1위’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시립미술관 5개년(2019~2023) 혁신 발전방안’을 제시한 것이다.특히 국제적 수준의 전시 개최를 위해 2020년에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전으로 ‘별이 된 사람들’전을 기획해 선보인다고 한다. 이 전시에서는 5·18 당시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집단지성과 희생정신’을 상징하는 ‘숭고미’를 중심으로 관람객의 감동을 유도하고, ‘분노와 슬픔에서 희망의 시작’이 되는 5·18의 확장과 세계화를 도모한다고 하니 사뭇 기대가 된다. 내년 광주비엔날레와 맞물려 대규모 전시로 세계적인 개념미술가인 ‘리암 길릭(Liam Gillic)’전을 기획할 예정이다. 그는 일즈버리 출생으로 데미안 허스트, 사라 루카스, 안젤라 블로흐 그리고 헨리 본드 등과 함께 1990년대 초기 yBa의 멤버 중 한 명이다. 오늘날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리크리트 티라와니트 등과 함께 ‘관계미학’의 컨텍스트 속에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노년층으로 접어드는 베이비부머세대(1955~1965)의 본격적인 은퇴 시기에 중장년층을 위한 문화복지 활동과 풍요로운 여가생활 지원을 위해 ‘실버미술학교’ 개설 등 교육문화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한다.창작지원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 독일, 대만 이외에 교류 대상국을 다변화하고, 지원 작가 인원을 확대한다. 이는 지역작가의 다양한 경험과 작품 역량 확대에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5개년 혁신 발전방안의 또 다른 축은 미술관과 미술관이 위치한 중외공원에서 머물며 체험할 수 있는 편의시설 확충이다. 사실 그동안 미술관과 비엔날레관, 민속박물관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머무르고 체험하는 공간이 부족했다.방문객 편의시설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내년에 본관 1층의 자료실을 2층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라이브러리 아트라운지’를 조성한다. 카페테리아는 2022년 운영을 목표로 시민들이 한눈에 중외공원을 볼 수 있는 카페레스토랑으로 증축, 개보수한다.중외공원 일대에는 이미 발표된 바 있지만 2023년까지 아시아 문명·문화를 테마로 하는 문화정원, 자연체험 미로정원, 문화예술회관과 중외공원을 잇는 공중보행로인 하늘다리 개설 등 ‘아시아 예술정원’을 조성한다.이 밖에도 하정웅미술관 활성화를 위해 하정웅미술관에 수장고를 신축해 문화 예술의 협업기능과 연구 교류의 아트플랫폼 역할을 하는 아시아 아트 아카이빙 플랫폼을 건립한다.언제 찾아가도 “정말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거나 “좋은 체험을 할 수 있어 기억에 남는다”는 관람객의 반응이 기대가 된다. 그런 광주시립미술관의 새역사를 꿈꿔본다.
    2019-09-28 | NO.36
  • 광천동 시민아파트, 이대로 사라지는가?
    서대석 광주 서구청장
    옛 전남도청 앞 작은 천막. 오월의 어머니들이 뜻을 같이하는 지역민들과 함께 옛 전남도청 복원을 외치며 농성에 들어간 지 740여 일이 지났다. 폭염과 비바람에도 한겨울 눈보라에도 노구의 어머니들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바위처럼 버텨왔다. 38년전 5·18 최후의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을 목숨과 바꿔 지켜냈던 내 자식들의 숨결과 정신을 온전히 간직하기 위한 어미의 심정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5·18 민주 항쟁도 어느 새 38년이 지났다5·18의 정신은 한치의 변함이 없는데, 5·18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어쩌면 세월에 흔들리고, 옅어지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현재 5·18의 흔적들 중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은 옛 국군통합병원 부지와 옛 505보안대, 광천동 시민아파트 정도에 불과하다.상무대 영창은 상무 신도심 개발로 형태만 복원됐고, 광천성당 안 들불야학 터는 도로 개설로 외벽 일부만 남은 상태다. 5·18 최후의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건물마저도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당시 훼손돼 이제 와서야 원형 복원이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옛 국군통합병원과 옛 505보안대의 경우, 광주시에서 5·18 사적지로 지정하여 원형 보존을 전제로 국가 폭력 피해자 치유 시설과 역사 공원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참으로 반갑고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그 사정이 녹록치 않다. 광주시 서구 광천동 650-7번지에 자리한 시민아파트는 지난 1970년 7월 사용 승인을 받아 준공된 광주 최초의 연립 아파트다.6·25 피난민들의 거주지 마련을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광주·전남 최초의 노동 야학인 ‘들불야학’이 광천동 성당 교리실에서 시민아파트로 옮겨진 이후에는 노동 운동과 5·18 민주 항쟁의 근거지가 됐다.특히 80년 5월 당시 항쟁초기부터 마지막까지 계엄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투사회보’가 시민아파트에서 제작됐다.모든 언로가 통제된 상황에서 투사회보는 5·18의 진상을 알리는 유일한 창구였고, 광주 시민들의 투쟁 의지를 하나로 묶는 구심이었다.38년 전 그렇게 서슬 퍼런 군부 독재에 맞서 광주 항쟁의 주춧돌을 놓았던 시민아파트가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얼마 전 지역의 뜻 있는 문화예술인들은 5·18 역사 공간인 시민아파트가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시민아파트 앞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보는 내내 젊은 시절 그 곳에서의 뜨겁고 치열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얼마 남지 않은 5·18 역사 공간으로서 시민아파트가 소중할 수밖에 없으며, 원형 보존에 대한 절박함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시민아파트 원형 보존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광천동 재개발 지역 주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과 첨예하게 맞물린 복잡하고도 민감한 사안이다.2400여 명의 재개발 조합원들의 재산권 및 주거권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며, 불가능한 일 만도 아니라고 본다. 시민 공동 자산화 방안은 시민아파트 원형 보존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재개발 사업으로 훼손되거나 없어질 위기에 있는 역사적 공간을 시민 공동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다.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공간 보존과 지역 주민들에게 쾌적하고 편리한 주거 환경 제공을 위한 재개발 사업은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아파트 원형 보존은 범시민적인 공감대가 이뤄져야 하며, 무엇보다 재개발 지구 주민들의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지방 정부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원형 보존의 당위성을 중앙 정부에 알리고 행정, 재정적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전문가와 5·18 관련 단체 등과 함께 시민아파트에서 이뤄졌던 활동들에 대한 뒷이야기들을 발굴하여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킨다면 더욱 좋겠다.청년 강학들의 올곧은 신념은 이 땅에 불의한 정치 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씨앗이 돼 왔다. 40년 전 그 자리에 있던 야학당의 불은 꺼졌지만, 그 혼불만은 영원히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다.전남도청 건물처럼 허물었다 복원하는 우를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세월이 지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과거의 한 점이 된다. 미래 이 자리에 서 있을 세대들이 지금의 우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현재 우리의 몫이다.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시민아파트가 원형 보존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광주일보 2018년 09월 14일>2018년 09월 14일
    2019-05-08 | NO.35
  • 문화원은 일을 하고 싶다
    최석환 광산문화원 사무국장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 보존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주최하는 곳이 지방문화원이다. 문화원의 주요 역할은 향토문화 사업을 통해 원천 소스를 발굴하여 문화브랜드로 개발하는 것이다. 문화원이 발굴한 원천콘텐츠는 나무뿌리이며, 문화브랜드는 줄기라고 볼 수 있다. 발굴된 소재는 스토리텔링으로 관광, 연극, 영화 등 2차 가공된 열매로 열린다. 광산문화원에서는 인물브랜드를 통해 문학제, 음악회, 인문강좌 등을 열어 시민과 함께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 열매를 생활문화 속에서 맛본다. 문화원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방문화원은 광주·전남에 27곳이 있지만 대부분 인력부족과 예산지원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문화원의 현실은 향토문화 및 문화진흥을 위한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힘들다. 정부 부처 공모사업을 통해 운영되지만 사업비가 부족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기 어렵다. 사업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무엇보다도 관심을 촉발할 콘텐츠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일본의 ‘도깨비 마을’처럼 문화 보급 및 창달을 위한 일거리를 문화원에 주어야 한다. 문화원에 마중물이 들어와야 지역 내 문화브랜드를 강화시켜 지역 경제를 문화 산업으로 기반을 조성 할 수 있다. 또한 문화원이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 관련 유관단체 및 활동가들이 다수여서 행사가 겹치는 일이 많다. 문화원에게 지역 내 문화행사를 통합하는 구심점으로서 특화된 역할을 줘야한다. 이는 문화원은 대민업무를 보고 공익을 담당하는 단체의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자료를 총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문화원 중심으로 구축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지정된 문화재의 관리와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 비지정 문화재 발굴 등 향토사업과 관련된 보존 사업들을 지역 문화 행사와 연결하여 문화원을 구심점으로 유사단체와 협력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 및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기관 지원을 해야 문화원이 허브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문화란 이해와 배려 속에 존중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에 대한 지원은 간섭보다는 지켜보는 것이다.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되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교통에 대한 지원, 건축에 대한 지원, 복지에 대한 지원 등은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문화에 대한 지원은 다르다. 문화 데이터 구축, 지역 향토자료, 역사 관련 발간물의 경우 성과 위주의 다른 사업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예향 광주에는 문화 발전을 위해 일하는 문화 활동가들이 많다. 문화원은 문화활동가들이 모이고 다양한 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지원해주고 있다. 문화활동가들의 부족한 인력과 예산을 문화원이 대신해 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원없이 계속된 재능 기부 활동을 바라면 이들은 지친다. 문화 활동에 대한 의욕과 초심은 사라지게 된다. 똑똑한 한 명의 문화기획자가 그 지역 경제를 성장시키지는 것을 우리는 선진국에서 많이 보아왔다. 문화기획자를 ‘비행기 조종사’ 양성하듯이 귀하게 투자하고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시민들의 눈높이는 높고 문화원에 대한 지원은 적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지금 같은 시스템에서는 문화 활동가들의 열정과 사명감이 사라지고 퇴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문화원도 다양한 시대 변화에 맞춰 동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원은 많은 향토 사료와 문화 자원을 갖고 있다. 이를 문화 브랜드화하여 콘텐츠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과 제도적 보완에 적극 나서주길 기대해 본다.<무등일보, 2019.5.7.>
    2019-05-07 | NO.34
  • 정인서 문화비평 39, 옛 전남도청, 복원일까 재현일까?
    300억원 들여 복원한다는 데... 박제공간이 아닌 활력 드러내야
    1980년 광주5·18민주화운동의 상징이며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을 복원한다고 한다. 건물을 복원하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여기에 덧붙여 5·18 당시의 시민군의 항전 모습을 함께 재현한다는 계획도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화가 이루어진다면 5·18세대는 물론 5·18 이후의 세대들에게 공감을 주고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옛 전남도청을 ’80년 5월 당시 모습으로 원형 복원하여 5·18 민주항쟁의 숭고한 뜻을 계승하고 역사의 교육장으로 보존하겠다”면서 “5·18 관련 망언 등 역사왜곡을 차단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전국화·세계화하는 기틀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복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 복원대상은 전남도청 본관·별관·회의실, 도 경찰국 및 도 경찰국 민원실, 상무관 등 6개 동이다.이들 건물의 5‧18당시 주요 활동 거점이었던 시민군 상황실과 방송실이 자리한 도청 본관 1층 서무과, 수습대책위원회가 있었던 2층 부지사실 등이 주요 복원 대상이다.시가 내놓은 복원의 방향은 조선대 산학협력단의 용역결과를 토대로 80년 5·18당시의 모습으로 원형복원을 기본 전제로 한다. 전체적인 예산은 300억원 규모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주된 기본 원칙은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성에 근거한 복원, ▲5·18민주화운동 공간의 상징성을 살리는 복원, ▲5·18민주화운동정신 계승과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복원이다.여기에 5‧18민주화운동의 인권과 평화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는 배경에서 출발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복원을 기획하였다. 이러한 계획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복원한다는 것은 기억의 가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역사성과 장소성을 가진 옛 전남도청은 우리에게 중요한 기념물이다. 기억하고 남기고 싶어 하는 열망이 담겼다.복원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신들과 동시대 사람들은 물론 후대 사람들에게 우리의 열망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를 담으려는 것이다.하지만 그러한 욕구 때문에 국내에서 여러 차례 진행된 복원 사례를 보면 실패의 경우가 많다.대표적으로 2011년 경남도가 1천500억원 가량을 들여 추진했던 '이순신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원형 복원됐다는 거북선은 수입산 목재가 사용됐고 거북선 잔해 찾기와 ‘이순신밥상’ 사업이 실패로 끝난 바 있다. 말은 원형 복원이지만 실제로 그게 가능한 것일까. 숭례문, 서울역사, 서울 성곽, 청계천, 덕수궁 중명전, 안동 임청각, 양양 낙산사 등이 ‘원형 복원’되었지만 현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옛 느낌을 갖지 못할 것이다.그저 옛 모습을 모방한 새로운 현장일 뿐이다. 지금 광주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이미 훼손된 상태인 데다 새로 설치했던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안전을 위해 구축했던 철재빔을 철거하고 천정까지 뚫렸던 공간을 다시 층을 나누어 만든다고 옛 전남도청의 모습이 되살아나는 것일까.설마 지워지고 메워진 총알 자국을 다시 파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념과 기억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활력과 의미를 주지 않으면 기억도 도태될 것”이라는 김동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이번 복원 사업들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구체적인 발표자료를 봐야 알겠지만 지나치게 박제된 듯한 복원이 아니었으면 한다.필자 개인적으로 볼 때는 모두 복원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원형 복원이라는 것 자체가 올바른 용어가 아니다. 사실은 ‘재현’에 가깝다.이미 사용되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 일부 익숙해진 시민들도 있다. 모두를 복원하기보다 전당 연결통로 등 기존에 있었던 건물을 복원하고 일부 주요 공간의 5·18을 재현하는 선에서 이루어져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2019-04-12 | NO.33
  • 정인서 문화비평 36, 교통문화지수 특광역시 1위 ‘통계의 맹점!’
    교통문화지수가 14위에서 2위로 껑충 올라간 도시가 있다. 바로 광주다. 반가운 소식에 깜짝 놀랐다.특별히 교통문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 것도 아닌데 이처럼 지수가 큰 폭으로 올라갔다니 박수 치고 환영할 일이다. 광주 시민의 교통문화지수가 높아진 일에 고맙기 그지 없다.이처럼 교통문화지수가 단 1년만에 급격한 변화를 보인 것에 좀 의아한 감은 있다.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갑자기 높아진 것으로 해석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광주광역시는 최근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실시한 ‘2018년 교통문화지수 평가’에서 전국 순위는 제주도에 이어 2위로, 전년도 전국 14위보다 12계단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또 특·광역시 중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교통안전공단이 (주)리서치랩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8일 사이에 횡단보도 정지선 준수율 등 8가지의 운전행태, 횡단보도 신호 준수율 등 3가지 항목의 보행행태, 지자체 교통안전 전문성 확보여부 등 7가지 항목의 교통안전을 조사 분석한 결과이다.당연히 이 결과를 신뢰할만 하다. 이 결과를 신뢰한다면 광주의 교통문화 수준은 이제 탄탄대로에 있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올해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최도시로서 세계에 ‘문화도시 광주’를 알리는 해이다. 교통문화는 물론 문화중심도시로서 '아트폴리스' 다운 면모도 아울러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18가지 조사항목 가운데 어떤 항목들이 잘한 것이고 어떤 항목들이 못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봐야 부족한 내용들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발표 결과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교통문화지수는 2014년 76.70에서 2015년 78.11, 2016년 81.38, 2017년 81.56이고 올해는 83.20(새로운 지수 75.25)으로 꾸준히 높아졌다.광주는 새로운 지수를 적용할 때 제주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80점대를 넘어선 81.17을 차지했다.5개 자치구별로 고른 지수를 보였는데 남구가 81.56으로 특광역시 자치구 중 9위, 광산구가 81.34로 11위, 동구가 81.27로 12위, 서구가 81.20으로 13위, 북구가 80.87로 12위를 차지했다.광주의 교통문화지수 항목별로 어느 수준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보고서를 꼼꼼히 찾아봤다.8가지 항목을 측정한 운전행태는 55점 가운데 45.56으로 17개 시도 중 10위인 C등급, 3가지 항목의 보행행태는 20점 가운데 16.60으로 9위인 C등급이다. 이것으로만 보면 광주의 교통문화지수가 높을 리 만무하다.항목별 지수를 보면 운전행태는 전국 평균인 45.61에도 못미쳤고 보행행태는 전국 평균 16.53을 살짝 넘어선 수준이었다. 도로 현장의 교통문화는 '꽝'이라는 것이다.그런데 7가지 항목의 교통안전 25점 가운데 19.01로 2위인 A등급이었다.A등급을 차지한 교통안전은 어땠길래 2위로 나타났을까. 이 자료는 수집가능한 최근 조사자료로 2017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의 자료이다.이를 한걸음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광주는 교통안전 정책과 예산 등에서 타시도에 비해 교통안전 이행수준이 월등히 높았다. 13점 기준의 교통안전 실태는 전국 평균이 3.94인 반면 광주는 무려 10.11로 제주보다 높은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자체의 노력이 반영된 것이다. 바람직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2점 기준의 교통사고 발생 정도는 전국 평균이 9.16으로 광주는 8.90으로 13위였다. 사고가 제법 나고 있다는 것이다.구체적으로 보면 인구 및 도로연장당 자동차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0.76명으로 전국 평균 1.25명보다 크게 낮았다. 반면 인구 및 도로연장당 보행자 사망자수가 1.05명으로 전국 평균 0.75명보다 높았고, 사업용 자동차 대수 및 도로연장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3.72명으로 전국 평균 2.49명보다 높은 수준이다.광주의 교통문화지수가 껑충 뛴 것은 교통안전 이행수준의 점수가 높은 것이 반영된 때문이었다. 즉 지자체가 노력하는 정책적인 노력을 매우 잘하고 있으나 그 정책이 교통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도로상에서의 교통문화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분석 결과이다.다행히 이러한 교통사고 가운데도 지난해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바람직스러운 결과이다. 어린이 안전은 어떤 안전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전체적인 분석을 할 때 광주시가 지향해야 할 것은 ‘교통문화지수 특광역시 중 1위’라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수치가 나왔는지 심도 있는 결과 분석을 내적으로 들여다봐야 했다.시의 정책과 예산 노력도 중요하지만 도로 현장에서 교통안전 기초질서 등 교통사고를 줄이는 노력과 사업용 자동차의 안전운전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9-02-11 | NO.32
  • 요즘 문 닫는 가게들
    요즘 심기가 좀 불편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어서다. 그 가게들이 나하고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1도 없지만 ‘임대 문의’ 딱지가 텅 빈 가게의 쇼윈도우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동네가 쇠락해가는 듯 썰렁한 느낌을 받는다.경기가 오죽 안좋으면 임차인이 나가고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까. 이 동네만 그런 것은 아닌가보다. 신문을 보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핫한 동네들도 빈 가게들이 늘고 있다 한다. 전에는 회사 다니느라 가게들이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상관없이 지냈는데 나이 들어 한갓지게 살다보니 눈에 잘 뜨이는가싶다.신문을 보면 동네 단위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수출공단, 내수기업들도 사업이 안된다고 울상이란다. 수출전선에 있는 기업들이 인력을 감축하고 아예 팔려고 내놓는 등 활기가 식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정부가 올해는 경제가 좋아진다고 하니 닫았던 가게들도, 가동률이 떨어진 기업들도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될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사실 내 개인으로야 가게가 되든 안되든 기업이 휘청거리든 말든 쌀독 바닥에 있는 쌀 긁어서 밥해먹고 살면 되니 신경 쓸 일 없이 살아도 되겠지만 내 심사는 그렇지만 않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눈 감고 모르쇠 할 수가 없다.천원 짜리 물건 살 때도 카드로 긁던 내가 언젠가부터 현금으로 지불한다. 카드 수수료라도 안 물게 도와주자는 마음에서다. 내 눈에 뜨이는 가게들의 시무룩한 모습은 마치 빙산이 덩어리째 무너지는 북극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하얀 빙산조각이 바다에 조각나 떨어지는 지구온난화 현상과 겹쳐 보여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 나라 경제가 잘 안돌아간다는 징조가 아닐까. 나라가 경제가 안좋아지면 종당에는 우리집 가계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식당에 갔을 때 손님들로 북적거리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뭐랄까 안도감 같은 것이 든다.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실제로 경기가 대체적으로 안좋아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무언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미국은 거의 완전고용 상태, 일본도 인력이 없어 로봇을 동원해서 일을 시킬 정도라는데 우리나라는 외딴 섬에 가 있는 모습이다.최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또 다른 현상이 보인다. 단지마다 한 개 꼴로 마트가 있었는데 이것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어느 날 죄다 편의점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내력을 듣자니 마트는 이익이 적어 편의점으로 변신했다는 것.마트가 서민들의 시장이라면 편의점은 젊은이들의 간이 구멍가게다. 편의점은 대체로 마트에 비해 물건값이 비싼 편이다. 맥주는 한 캔에 몇 백원 차이가 날 정도다. 값이 싼 마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뽀대나는 편의점이 들어서니 다른 선택지가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주민들은 다소 비싼 편의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편의점에 가보았더니 웬걸 주인이 마트 주인이다. 말인즉슨 마트는 이익이 별로 나지 않아 편의점으로 바꾸어 탔단다. 그 사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서민들의 부담은 그만큼 늘어난다는 사실이 걸린다.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가계부에 주름살을 짓게 하는 환경변화다.돈이 도는 것이 경제일진대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부동산 관련 세금도 올라가고 아파트 관리비도 올라가고 각종 서비스, 음식, 식재료값 같은 기초생활비도 슬금슬금 기어 올라간다. 자연히 가계장부도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자연 나도 돈을 덜 쓰게 된다.소비심리가 위축되면 연쇄적으로 가계, 기업, 대기업으로 파장이 올라가지 않을까. 요새 돈이 넘치는 쪽은 정부인 것 같다. 한 마디로 경제권은 가장이 아니라 정부가 쥐고 있는 형국이다. 세금이 몇 십조 더 걷힌다고 하니 정부는 살 판 났다.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모두들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우리 좀 도와달라는 거다. 정말 요즘 같아선 '국민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적이 걱정스럽다.
    2019-01-29 | NO.31
  • 정인서 문화비평33,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어려울까?
    지난 주말 큰마음 먹고 서울을 다녀왔다. 오로지 마르셀 뒤샹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몸이 좀 흥분되었다. 그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전환점을 가져온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예술가들의 창의활동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한 최초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무엇을 하든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마르셀 뒤샹은 우리에게 ‘샘’(1917)이라는 레디메이드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 프랑스인인 그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라는 입체파 회화작품을 1913년 미국에서 발표한 이후 먼저 유명해졌었다. 나는 도판으로 보았던 그의 중요한 작품들과 그의 일생을 한 장소에서 섭렵할 기회를 만났다. 그를 이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일생에 다시는 보기 어렵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서울까지 간 것이었다. 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뭐 여기저기 찾아보면 그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그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의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그의 일생, 작가로서의 삶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며 변화를 추구해온 작품의 흐름을 보면서 또다른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그를 만나는 김에 다른 작가들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돼지저금통, 플라스틱바구니, 풍선, 목침 등 일상생활에서 소비되는 흔하고 저렴한, 때로는 버려지는 것들로 꽃이나 숲을 만드는 최정화 작가, 오묘한 검정색으로 큰 붓을 푹 찍어내려 긋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윤형근의 작품에서 몇 가지 팁을 얻을 수 있었다.가까운 국립고궁박물관에도 들렀다. 조선시대 국왕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인구는 불과 3만7천명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제후국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도 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의 무리들이 5~6명씩 팀을 이루었고 각각 선생님들과 함께 전시를 둘러보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여건상 가보지는 못했지만 덕수궁관에는 대한제국 시기의 회화, 사진, 공예 등 다양한 장르를 전시 중인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가 있고, 과천관에서는 지난 25년간 형성된 지구 차원의 문명을 주제로 사람들의 사는 방법에 대한 관찰, 기록, 해석하는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을 접할 수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혜택이라 할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 말께 개관한 청주관의 1개 전시를 포함하여 4곳에서 25개의 전시가 마련되었다. 문화중심도시 광주에서 이런 전시를 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광주에는 시립미술관이 있기는 하지만 감동스러운 전시는 어쩌다 한 번쯤 있는 둥 마는 둥이었다. 우리 광주는 오래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을 유치하겠다며 몸부림쳤지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기회를 놓치곤 했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한 일이니 올해까지 햇수로 20년째이다. 명색이 문화중심도시이고 미디어아트창의도시인 광주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다. 한번 실기하고 나니 이제 유치하는 일이 다른 도시와 경쟁체제가 되면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이 앞선다.광주시는 이용섭 시장 취임 이후 국비 300억원을 들여 부지를 매입하는 등 오는 2021년까지 4년 동안 국비 1180억원을 들여 광주관을 건립하는 안을 계획한 바 있다. 이 문제가 지난해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올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2020년 실시계획 가운데 신규사업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을 넣었다.광주를 비롯해 전주와 진도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요청한 가운데 광주는 현재까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고 있다. 왜 어려울까. 언론에 보도된 시의 기본계획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는 “광주관에는 기획·상설·역사관 등 전시관과 정원산책로·야외공연장 등 문화공간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브랜드 시설인 국제창작지원센터 조성, 교육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교육관”을 꾸민다고 했다. 이 정도 콘텐츠는 일반 미술관 수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광주시립미술관이 하는 콘텐츠를 확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쉽게 말해 ‘차별화’가 없었다. 광주관을 미디어아트와 영상미술 전용관으로 운영한다든가, 설치미술과 행위미술을 전문으로 한다든가, 환경과 정크아트를 중심으로 한다든가를 포함하여 색다르고 기발한 전시관 운영을 내세워야 할 듯싶다. 이 문제에 대해 지역의 무리들이 모여 한바탕 아이디어 경연대회라도 열어볼 일이다.
    2019-01-17 | NO.30
  • 정인서 문화비평 29. 광주 4대문과 관문형 폴리
    광주의 새로운 ‘4대문’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기와를 얹은 문루 형태가 될지 새로운 형태로 될지는 모르겠다. 광주비엔날레가 ‘광주폴리’의 이름을 빌어 광주의 주요 교통로에 관문형 폴리를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필자는 그동안 광주가 문화도시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가 부족하다고 늘 지적했다.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있으며 수많은 문화적 자산이 널려 있는 광주이다. 그런 콘텐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에 광주시민은 물론 광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게 없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솔직히 광주 사람이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지난 23년간 광주비엔날레가 12차례나 열리면서 ‘세계 5대 비엔날레’의 수준에 올랐다고 홍보했다. 정작 이를 체감하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그쪽 관계자들이야 당연히 광주비엔날레가 정말 뛰어나다고 말할 것이다. 미술 관계자인 필자로서는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들은 닫힌 공간 안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였기 때문이다.이제는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인 전시행사가 뒤늦은 감은 있지만 미술인들의 잔치이면서도 지역 관광의 요소를 함께 갖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광주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묘수를 찾았으면 한다.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광주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광주비엔날레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선보였지만 광주에 남겨놓은 시각적 장치가 없었다. 광주비엔날레가 열릴 때 겨우 기억을 되새기는 정도였다. 언제든 광주비엔날레를 사랑하고 아끼는 광주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 방안의 하나가 광주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참여 작가와 시민 참여형의 공동 작품이 광주의 곳곳에 설치되기를 희망했다.특히 고속도로를 거쳐 들어오는 주요 통로에 광주를 상징하는 설치작품이나 커다란 예술벽화가 있어야 한다고 역대 시장들에게 주장했다. 아파트 비율 80%의 도시에 아파트를 이용한 새로운 문화도시 접근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계속된 주문에도 답은 없었다.다행히 이번에 광주폴리의 형태로 그 첫 단추를 꿰는 것 같다. 내년에 시행할 광주폴리IV는 한 두 개의 작품으로 선택과 집중도를 높이면서 '광주다움'을 반영하는 시민이 참여하는 관문형 폴리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광주만의 차별화된 특성을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광주다움’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되고 있는데도 이런 용어를 쓰는 것이 걸리긴 하다.사실 이번 프로젝트도 ‘이용섭 광주시장의 입’이 주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시장은 취임 이후 얼마 되지 않은 7월 20일 광주경영자총협회에서 가진 조찬 특강에서 이런 말을 했다.“우리에게 많은 문화역사자원이 있었지만 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소홀했다고 생각한다. 송정역에서 광주로 들어오는 길에 ‘와, 여기가 광주구나’라고 느낌을 줄 정도로 광주만의 얼굴, 광주만의 모습, 광주만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광주다운 모습이 없다. 이곳이 창원인지 울산인지 분간할 수 없다.”이런 연장선상에서 관문형 광주폴리가 구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말 뒤늦게 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입보다는 시장의 입이 더 세긴 센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은 현장 공무원들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윗선의 눈치를 보거나 윗선이 지시해야 허둥지둥 허겁지겁 일을 한다는 사실이다.광주폴리가 그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광주의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처음 발표했던 장기플랜과는 동떨어진 형태로 나아가고 있지만 크게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1년 광주폴리의 첫 삽을 뜬 이래 ‘역사의 복원’을 주제로 옛 광주읍성 터를 따라 광주폴리Ⅰ이 11개, 다소 활용가치가 떨어진 흠은 있지만 ‘인권과 공공공간’을 주제로 한 광주폴리Ⅱ가 8개 ,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도시의 일상성–맛과 멋’을 주제로 한 광주폴리Ⅲ 11개 등 총 30개의 광주폴리가 광주 전역에 설치되었다.아직은 광주 도심의 경관을 바꾸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특별계획들이 잘 어우러지고 한 100개쯤 설치된다면 조금 볼거리가 있고 문화도시 투어 정도 할 꺼리는 생길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 광주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광주의 아름다운 산과 호수, 다리를 이용한 어울리는 설치작품이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광주의 도심에 있는 빌딩에도 작품이 가능한 일이다.늦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생각을 한다. 너무 서두르기보다는 차분히 장기계획을 만들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광주라는 도시비전을 중심으로 전개되길 희망한다. 광주는 그동안 예향 의향 미향이라고 말을 하는가하면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라고도 했다. 동아시아문화도시이고 문화중심도시라고 했다. 디자인도시이고 생태도시이고 여성친화도시라고도 했다.이런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구석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것은 광주의 도시비전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는 가장 대표성을 갖는 게 빛의 도시이다. 그리고 생명의 도시이다. 광주시 누리집에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광주시 공무원은 물로 시장께서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역대 시장들이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면 빛과 생명이라는 도시비전에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수식어들을 연계시키고 도시의 장기계획을 마련했을 것이다. 이번에 접근하는 광주폴리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작품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참, 사족으로 관문형 폴리를 설치할 경우 주변에 주차장을 만들어 누구든 사진을 찍고 SNS로 퍼 나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으면 한다.
    2018-12-18 | NO.29
  • 정인서 문화비평 28. 광주비엔날레 “만족하셨나요?”
    만족의 정도를 어느 수준으로 측정하면 좋을까. 일반적인 측정방법은 있지만 사람들마다 느끼는 감동을 만족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결국 주관의 객관화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대체적인 정도를 파악하는 데는 유용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설문조사 결과치인 만족도가 높다고 해서 정말 만족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이 설문조사는 전시관 출입구에서 비엔날레 방문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단 비엔날레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가진 사람들이 응답을 했다. 전시에 관심이 없는 일반 시민들, 또는 광주시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광주비엔날레는 1995년에 시작되어 올해까지 12회 행사를 치렀다. 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의 전체적인 만족도를 보면 올해 70.4%로 2010년 48%, 2012년 56%, 2014년 66.6%, 2016년 66.8%에 이어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광주비엔날레가 밝힌 조사결과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8광주비엔날레 행사 기간인 9월 7일부터 11월 11일까지 전시관을 찾은 19세 이상 성인 관람객 1,15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내국인은 1,000명, 외국인은 150명이다. 매년 이 정도 인원을 조사하고 있다.비엔날레측이 밝힌 광주비엔날레 관람만족도가 상승하는 이유는 매 전시마다 새로운 전시기획을 시도하고 현대미술 담론을 다양하게 제시하면서 관람객 개선 의견 등을 수렴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춰진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특히 내국인 관람객의 관람 만족도는 69.6%, 외국인은 75.9%로 나타나면서 광주비엔날레가 지닌 국제적 위상과 가치가 높다고 했다. 국제미술 전시회로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국제미술전시회 가치 만족도는 74.6%였다. 내국인관람객은 73.7%, 외국인관람객은 80.7%로 외국인 관람객들이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외국인의 경우 비엔날레 관계자 내지는 미술 관련 종사자들이 많았던 때문으로 풀이된다.메인 전시장이 2곳으로 펼쳐진 이번 행사에서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관 관람객 만족도 69.0% 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만족도가 74.0%으로 더 높았다. 메인 전시장이 1995년에 지어져 노후화된 건물이고 아시아문화전당은 신 건물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으로 비엔날레 전시관의 재건축에 대한 필요하다는 식으로 보도자료를 내놓았다.물론 1995년 당시에 너무 급하게 건물을 지는 탓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관람만족도를 갖고 전시장의 재건축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렇더라도 중요한 것은 비엔날레 전시장의 재건축 내지는 공간의 규모 확대가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광주비엔날레 만족도 조사는 전시행사 당시의 만족도도 중요하지만 평상시 일반 시민들에게 느껴지는 만족도는 어떠한지에 대한 조사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위의 결과치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인 미술행사이긴 하지만 지역의 경제와 관광 효과를 더불어 가져올 수 있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광주비엔날레가 미술인들의 잔치로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우리 지역의 고민이다.광주비엔날레측은 2007년과 2013년 광주비엔날레발전방안 보고서와 2015년 광주비엔날레 재도약을 위한 발전방안(안)을 스스로 내놓은 바 있다. 이 때의 발전방안을 재검토하고 광주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지역밀착형 비엔날레로서 기능을 보완했으면 한다. 여기서 몇 가지만 지적한다.2015년 자료에 나타난 SWOT분석에서 약점(W) 7가지 가운데 도시의 관광유인요소 및 관련 인프라 부족이 눈에 띈다. 광주가 문화관광요소가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역지사지로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에 관광인프라가 될만한 장치들을 했는가 질문하고 싶다. 지역 탓을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역관광에 상시적으로 기여하는 비엔날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관람객 입장수입 및 핵심수익사업 미흡도 약점으로 지적했는데 스스로 문화상품에 대한 개발 및 마케팅 부족을 탓해야 할 것이다.위협(T) 6가지 가운데 국내 및 인접국의 신생비엔날레 약진이 있다. 일본의 에치코츠마리트리엔날레나 세토우치트리엔날레 그리고 영국 리버풀비엔날레가 장소성과 지역주민과의 연계를 통한 전시행사를 마련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예술감독과 작가들이 전시공간에 갇힌 비엔날레만 그동안 해왔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는 노력이 광주비엔날레의 생존가치를 높일 것이라 생각한다.
    2018-12-14 | NO.28
  • 정인서 문화비평 27, 18억 ‘최흥종 기념관’과 무관심 ‘임방울 생가터’
    최흥종 목사 기념관이 18억원을 들여 남구 양림동에 짓고 있다. 지난 5월에 완공 목표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개관하지 못했다. 양림동 근대문화 공간 속에서 3.1운동과 빈민구제, 선교활동, 교육운동 등에 헌신한 기여한 그의 족적을 남기려는 취지이다.양림미술관과 유진벨 기념관 옆으로 들어서는 ‘오방기념관’은 지상 1층, 연면적 451㎡ 크기이다. 비탈진 지형을 이용해 기념관 옥상으로는 잔디를 꾸며 옆에 있는 양림미술관과 유진벨 선교기념관으로 연결되도록 했다.오방 최흥종 선생은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 오웬(Clement Owen)과 만나 광주지역 기독교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후일 우일선(Wilson) 선교사와 포사이트(Forsythe) 선교사 등을 도와 한센병 치료에 평생을 헌신했다. ‘광주의 아버지’였던 그는 극도의 가난과 병마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에겐 하나밖에 없던 친구였다.아무런 연고도 없이 살신성인하던 선교사들을 통해 접한 기독교는 그의 삶의 궤적을 바꿔버렸다. 17세 때부터 천혜의 고아로 건달, 깡패, 싸움꾼에서 가난과 무지와 질병에 시달리고 천대받던 사람들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이 생겼다. 그때부터 그는 삶의 이유를 ‘나’가 아닌 ‘남’으로 바꿨다고 한다.애국지사로 3·1운동 당시 전남지역 총책이었으며, 만세시위 주도로 3년에 걸친 옥고를 치르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광주 YMCA 설립과 해방 후 결핵환자와 나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빈민구제 활동에 전력을 쏟았다. 신간회 전남지회장과 해방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회장으로 광주를 대표하는 사회운동가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1962년 최흥종 선생의 이러한 업적을 기려 애국훈장 수여, 1986년과 1990년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기도 했다.양림동에는 유진벨 선교사 기념관, 조아라 여사 기념관에 이어 이번에 오방 최흥종 목사 기념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어 광주정신의 한 축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광주지역 사회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친 이들을 기념하고 후세에 전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하지만 광주는 문화도시를 내세우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도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의 대표적인 소리꾼이며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임방울을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때 ‘판소리 아이돌’로 음반 120만장 판매기록을 세웠다는 임방울을 기리기 위해 임방울국악진흥회가 전국대회를 열기도 한다.하지만 임방울의 생가터는 어찌한가 묻고 싶다. 2012년 무렵 광산구 도산동주민자치위원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주)보해양조가 공동으로 주관해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방울소리 고장’ 만들기를 했다. 그런데 그게 고작 생가터 주변 돌담길에 국창 임방울 선생 이야기를 다룬 벽화 그리기 사업을 진행하고 표지석 하나 달랑 세우는 정도에 그쳤다.지난 4월 지방선거 때 이곳을 찾았던 한 광산구청장 후보는 이렇게 글을 남겼다. “국창 임방울 선생의 생가라는 표지판을 보고 꼭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찾아갔는데… 세상에 ‘국창’이라는 말이 궁색하게 생가는 표지판만 있고, 문은 꼭 닫혀있고, 성의없는 벽화그림만 있었다. 전국적인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반드시 생가터를 제대로 복원해서 교육의 장으로,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서 지역의 일자리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문화산업의 마중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광산구 도산동 679번지. 임방울 생가터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본채는 허물어져 없어지고 폐허가 된 사랑채와 담장만 남아 있다. 그나마 땅주인은 타 지역에 살고 있는 4명 등 6명의 공동소유이다. 광주시도, 광산구도 이 땅에 대해 무관심했다.양림동의 한희원 선생은 이렇게 지적했다. “시인 김현승과 박용철, 화가 오지호 등의 예술인의 문학관과 미술관이 없어 예향으로서 의미를 퇴색하게 했다. 광주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통영에 시인 유치환문학관, 김춘수유품전시관, 소설가 박경리문학관, 화가 전혁림미술관, 음악가 윤이상음악관이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뿌리정신을 기리고 찾는데 인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처럼 광주는 문화도시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광주의 정신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예술인과 의인을 기리는 장소를 조성하지 않거나 그들을 기리는 장치들을 하지 않는 우를 범했다. 임방울이 대표적이다.이밖에도 광주와 인연을 맺었던 김환기, 손재형, 천경자, 조방원, 김옥진, 김형수, 이상재, 이창주, 문장호, 신영복, 배동신, 최쌍중, 오승우, 진양욱, 국용현, 최종섭, 탁연하, 김찬식, 김영중, 조제현, 양두환, 조판동, 최한영, 서희환, 하남호, 구철우, 안규동, 조기동, 판소리의 한애순과 공대일 그리고 문학, 음악이나 무용, 연극 분야에서도 많은 이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다.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당장 기념관이 어렵다면 그들을 기억하는 장소에 표지판이나 표찰 등을 설치하여 곳곳에 남은 흔적들을 기록하고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18-12-06 | NO.27
  • 정인서 문화비평 26, 광주, 미디어아트 도시인가 묻는다
    올해 광주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은 힘이 좀 들어갔다.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올해 페스티벌은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된 지난 2014년 12월 1일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 날을 포함해 11월 29일부터 12월 7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2관과 미디어월에서 진행된다. 주관기관인 광주문화재단은 야심차게 ‘2018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정책포럼’까지 준비했다.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4주년을 기념하고 미디어아트 광주의 도시 브랜드를 다져줄 미디어아트 관련 이벤트들을 대대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도 이번 페스티벌에 ‘확장된 그림자’를 출품했다고 한다.광주시립미술관도 여기에 힘을 보태기 위해 2018 미디어아트 특별전으로 ‘당신속의 낙원_Media YouTopia’를 11월 27일부터 내년 2월 24일까지 3개월여 동안 미술관 본관 제1,2전시실에서 갖는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확산시키고 지역 미디어아트 육성 및 미디어아트창의도시 위상 강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9명의 참여작가 중 지역작가(출신)로는 임용현, 정기현, 정운학 등이 눈에 띈다.광주는 지난 2014년 12월 1일 유네스코로부터 문화와 첨단을 아우르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최종 지정됐다. 2010년부터 광주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쾌거였다. 당시 광주는 세계 네 번째이자 국내에서는 첫 번째인 미디어아트 창의도시가 됐다. 이로써 광주시는 먼저 가입한 프랑스 리옹(2008)과 앙기엥 레뱅(2013), 일본의 삿포로(2013) 등과 함께 미디어아트 선도도시로서 자리매김을 할 것을 기대했다.2010년 이후 매년 광주에서는 호응이야 있든 없든 광주문화재단과 광주시립미술관, 시민단체 등에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나 특별전, 심포지엄 등을 가졌다. 미디어아트 레지던시를 통해 작가 육성도 하고 미디어아트 마켓전도 해봤다.2012년 <빛의 실험실 미디어아트창의도시 발전전략 연구>를 당시 광주발전연구원에서 용역보고서를 냈다. 광주 미디어아트 창의시민포럼이라는 시민단체도 만들어져 여러 차례 심포지엄을 가진 바 있다.2015년 광주광역시는 <미디어아트창의도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도시의 창의성 및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둔 창의도시로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빛의 실험실 광주(City as a Laboratory of Light, Gwangju)'라는 명제를 내걸었다. 그리고 비전으로 ‘휴먼 미디어시티, 광주’를 제시했다.이처럼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공적인 조직과 시민들의 힘이 모아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햇수로 치면 벌써 9년이나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광주가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인가에 대해 안타깝고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아니, 이렇게 현장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데 무슨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나 특별전 등의 작품 수준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광주는 미디어아트 작가 육성에 대한 지원이나 전시공간,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만한 요소들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지금까지 해온 광주의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는 기관과 일부 참여작가, 관련업체들의 일방적인 ‘밀어내기 전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단적으로 말해서 페스티벌이든 특별전이든 행사가 끝나고 나면 그들만의 잔치였을 뿐 남는 게 없다. 광주는 빛의 도시라고 늘 홍보하고 다니지만 도시 속에서 어울리는 미디어아트 작품 하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관광객이 와도 광주의 모습과 미디어아트를 보여주고 그들의 기억 속에 ‘거시기’한 게 없다는 이야기이다.이번 기회에 제안해본다.우선 미디어아트를 지원하는 기관은 그동안 제시된 각종 용역보고서나 심포지엄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길 바란다. 나름 전문가라는 분들이 공들여 만든 결과물이니 그 안에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의 방향성이나 실행계획들로 의미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2015년 마스터플랜을 보면 여러 가지 있지만 눈의 띄었던 것은 큰 공간보다는 작은 시설물부터 미디어아트를 도입하고 도시 공공시설물의 미디어 활용이라는 것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이라든가 도심 인도에 설치된 한전 배전시설, 도시철도 지하공간, 빛공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광주천과 교량 등 찾아보면 꽤 있다. 조선대 본관 건물은 도심 어디에서나 보인다는 장소성을 갖고 있어 파사드 공간으로서는 제격이다.문화재단이나 시립미술관, 문화센터 등 각종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에서 미디어아트 분야를 확대하고 시민 생활 속의 미디어아트, 일상이 작품이 되는 도시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도 ‘나도 미디어아트 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주거공간이나 창문 등에 미디어아트 작품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미디어아트는 어렵고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빛의 도시 광주, 빛고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해주길 바랄 뿐이다.
    2018-11-28 | NO.26
  • 정인서 문화비평 25, 광주 축제에서 뭔가를 느끼셨나요?
    축제는 즐거움이다. 축제는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이나 축제프로그램을 발표하거나 즐기러오는 사람들 모두에겐 즐거움이 최고일 게다. 축제는 웃음과 박수와 어깨춤이 들썩거려지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축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뭔가 기대를 안고 간다. 재미가 있고 옛 추억이 생각나고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곳이다. 지역의 특산품을 살 수도 있고 사람들을 만나는 아름다운 장소이기 때문이다.올해는 우연찮게 광주의 크고 작은 축제들을 많이 눈여겨봤다. 지난해 필자는 광주지역의 각종 축제를 모니터링하고 개선방안을 찾아 광주다움을 찾아가는 축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축제와 행사가 산발적으로 개최되고 있어 상호 연계한 관광효과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광주시의 축제에 대한 전체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통폐합을 하든, 시기적으로 조정을 하던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역축제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광주시가 이를 받아들여 축제모니터링T/F위원회를 구성했다. 전체 축제에 대한 좋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3년 정도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1차 연도는 우선 광주시의 예산지원을 받는 9개 문화관광축제만을 대상으로 했다.고싸움놀이축제, 광주프린지페스티벌, 세계청년축제, 서창만드리풍년제, 추억의 충장축제, 굿모닝!양림, 광산우리밀축제, 영산강서창들녘억새축제, 광주세계김치축제 등이다. 솔직히 이 중에는 문화관광축제라고 이름 붙이기에 ‘거시기’한 것도 있지 않는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그동안 축제라고 하면 비슷비슷한 축제들이 많다는 언론의 질타를 많이 받았다. 그런 탓인지 최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관광축제로 선정되는 등 좋은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축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들었다.축제는 보여주기가 아니다. 축제는 단기간에 준비해서 동원하는 행사가 아니다. 사람이 많이 와야만 좋은 행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대부분 축제들이 행정기관이 예산을 주고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있으며, 기관장의 일정에 맞춰 지역주민이 동원되기도 했다.관에서 마련한 축제는 이벤트업체를 입찰하여 선정하다보니 매년 진행이 바뀌고 내용이 바뀌고 지역특성을 반영하는 정도가 달라지거나 프로그램의 지역특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이벤트 회사가 갖고 있는 노하우로 어디 가서나 똑같은 방식으로 풀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유사성으로 지역 대표 관광상품으로 발전하는 한계가 지적되었다.행정기관이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축제를 주관하는 지역기구에서 주민들과 함께 스스로 준비하고 행사를 펼쳐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행사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볼 것이 없다는 스스로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부서가 있으니 이율배반적이다.다행히 요즘에는 조금씩 그런 모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시 관람형에서 참여 체험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힘들이 모여 광주의 색깔을 담은 글로벌 축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축제전문인력을 육성해야 하고 마을단위 축제(문화터․문화방)로부터 출발하여 주민의 ‘자발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2017년 기준 광주지역에서 시 5천만원 이상, 자치구 1천만원 이상 예산이 들어간 축제는 9개, 문화행사는 52개에 이른다. 광주시는 38건에 117억2200만원, 자치구는 동구 3건에 14억9600만원, 서구 4건에 1억6200만원. 남구 4건에 2억7400만원, 북구 2건 1억6200만원, 광산구 10건 5억9500만원에 이른다.축제나 행사마다 나름 차별화가 있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눈여겨 들여다보면 이름만 다른 비슷한 축제가 다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장소에서 그 축제가 열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축제에는 지역성, 역사성, 상징성 등이 차별화의 기본요소이고 감동과 재미, 기억에 남아 재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세계적인 축제 가운데 우리가 알만한 것들로는 세계 최고의 연극축제인 아비뇽페스티벌, 꽃과 빛의 축제 니스카니발, 레몬과 오렌지의 환상 세계인 망똥 레몬축제, 에든버러 군악대축제와 프린지축제, 세계 최고의 음악제 잘츠부르크페스티벌, 세계최대의 맥주잔치 뮌헨맥주축제,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한 베네치아 카니발, 재즈축제의 신화 몬트리올국제재즈페스티벌, 카우보이들의 자존심 캘거리스탬피드 등 이름만 들어도 뭔가 다가오지 않는가.광주에서 열리는 축제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그것은 모두의 지혜가 먼저 모아져야 한다. 행정기관장들이 임기 내에 뭔가 성과를 나타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장기간의 계획을 세우고 광주를 상징하는 것들과 축제를 엮어내는 노력과 시민들의 자긍심을 갖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1년 내내 참여하여 뭔가를 준비하고 축제기간 동안 즐거움을 발산하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겨야 할 것이다. 하나의 축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년 전부터 행사계획이 마련되고 홍보하는 그런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2018-11-21 | NO.25
  • 정인서 문화비평 24, 트릭아트와 광주비엔날레
    우리는 눈(眼)을 통해 세상을 본다. 눈은 빛을 수용하는 감각기관이다. 사물에 대한 빛의 반사작용이 시각적 영상을 만들어 뇌의 시각중추로 전달되어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이 과정에서 의학적으로 복잡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시적 언어처럼 사물 인식에 대한 감정적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 우리 눈이다. 인간이 갖는 감정의 출발점인 셈이다.우리가 눈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것 같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완전하지 않다. 깜빡 속는 경우가 많다. 눈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 관심, 선택이라는 요소들이 작용하여 보고 싶은 것만 인식하게 된다.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카메라 렌즈가 있다. 사물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찍는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찍는다고 하는 데 우리 눈으로 봤던 모습과는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어떤 경우는 눈이 인식한 평면의 모습을 렌즈를 통해 보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때가 있다. 이는 렌즈에 비친 사물 인식이 눈으로 본 사물 인식과는 확연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 영상을 통해 본 사물을 우리가 다시 눈으로 보기 때문에 감정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영상은 사람에게 감정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셈이다.이를 이용하여 등장한 것이 ‘트릭아트’이다.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트릭아트의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트릭아트란 평면의 그림을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착시 미술 기법을 뜻한다.현장에서 볼 때는 평면의 조잡한 것처럼 보였던 자리에 사람이 들어가고 카메라로 찍으면 입체화된 공간 속에 사람이 등장하는 착각을 갖게 만든다. 방문객을 위해 많은 관광지나 기념관, 전시관,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트릭아트 기법을 이용한 배경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게 만드는 소소한 재미를 붙여주고 있다.강원도 화천군 동촌리에 ‘평화의 댐’이 있다. 평화의 댐은 ‘전두환’ 시절에 북한이 강 상류에 금강산댐을 만들자 이 댐의 붕괴에 대비해 국내 최고 높이(125m)로 1987년에 착공한 국내 유일의 수공(水攻) 방어용 댐이다.평화의 댐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다. 여기에서 북한 금강산댐의 수공위협과 피해예측은 과장된 것이었고, 당시 평화의 댐 건설은 불요불급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평화의 댐은 정권안보차원에서 조급한 과잉대응이었다는 평가였다.그렇게 30여년이 지났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평화의 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댐의 기능이 아니라 남북교류와 관광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만들어 놓은 평화의 댐을 활용한다는 것이다.한국수자원공사는 평화의 댐 치수능력 증대사업 완료를 기념해 평화의 댐체 하류에 세계 최대의 트릭아트 ‘통일로 나가는 문’을 만들고 기네스북에 등재했다고 한다. 넓이 4774.7m²의 세계 최고 기록이라는 것이다. 많은 돈을 들여 기네스북에 올려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관광요소로 삼고 싶은 해당 관계자의 욕심일 게다. 이미 평화의 댐 주변에는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을 비롯해 비목공원, 국제평화아트파크 등이 있다. 연계효과를 일으킨다는 구상인 것 같다.화가를 비롯한 20명의 전문 인력이 3개월 동안 그린 높이 95m, 폭 60m인 이 벽화는 댐 본체 벽에 구멍이 뚫린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재미는 있을 것 같다. 또 오토캠핑장과 하늘오름길, 스카이워크 등 다양한 친수시설을 조성했다.광주비엔날레가 폐막했다. 지역에 무엇을 남겼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미술의 작품성이나 동시대의 미술에서 가지는 의미는 전문가 영역인 만큼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광주비엔날레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을까. 한때 지역 연구기관에서 지역경제에 수백억의 효과를 가져왔다는 발표가 있었다. 믿기 어려운 ‘책상머리’ 수치였다고 생각한다.광주비엔날레 김선정 대표는 국제 미술계영향력 국내 1위라는 명예(?)를 안았다. 그게 광주경제와 무슨 상관일까. 그는 임기가 끝나고 떠나면 그만이다. 지난 10여 년간 바뀌는 비엔날레 대표를 만날 때마다 광주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비엔날레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술작품이면서도 지속성을 갖는 관광의 요소가 되고 재방문의 기회를 갖도록 만드는 비엔날레의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이고 매번 예술감독이 바뀌다보니 100년을 내다보는 전략이 부족해 보인다. 광주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세계 미술잡지가 평가하는 것에 우리는 트릭(trick)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때이다. 외부 평가도 중요하지만 지역민의 만족, 미술에 관심을 가진 지역민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민에게 감동을 주는 것에 고민하길 바란다.
    2018-11-15 | NO.24
  • 정인서 문화비평 22. 詩碑에 是非한다면
    詩碑를 마주할 때면 그 앞에 서서 詩를 읽곤 한다. 돌에 생채기를 내며 촘촘히 새겨진 시어의 낱말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시집에서 읽던 시와는 새삼 다른 풍취를 느낀다.시는 감성의 언어로 우리를 자극한다. 복잡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시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치유효과가 있다. 사실 시 한 편을 음미하며 차분히 읽을 시간조차 없는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싶다.지난주 라디오에서 들었던 우리네 큰 병 중의 하나가 ‘자연결핍증’이라고 했다. 산과 강, 들판이 있는 곳에서 하루를 만끽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은 우울증을 치료하고 인간의 본래 감성을 자아내게 하는 공간이라고 한다.시도 그와 비슷한 ‘감성결핍증’을 치유하는 특효약이라 생각한다. 좋은 시를 읽다보면 마음속에 닫혀 있는 우울증이나 화병, 남을 비난하거나 욕하는 나쁜 감정들을 누그러뜨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원시성을 회복한다고나 할까. 여러 곳에서 ‘감성회복과 치유의 詩 읽기’ 강좌가 개설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올봄 오사카와 교토를 배낭여행한 적이 있다. 지난 1991년 무렵 한 번 이곳을 들린 적 있으니 27년만의 여행이다. 그 때는 논문 때문에 자료를 구하러 간 데다 당시엔 이런 시비가 없었다.이번에는 좀 달랐다.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문화공간을 찾아보고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눈여겨본다. 문화도시 광주를 좀 더 살찌우고 싶은 욕심이라고 하겠다. 주요 관심사는 문화콘테츠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그런 생각으로 여행 중에 교토의 동지사대학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대학은 붉은 벽돌로 된 나지막하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 인상적이었다.그런 건물이 있는 한 복판에 윤동주와 정지용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한글과 일본어로 새겨진 詩碑를 보면서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그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시인의 이름만으로 그들과 한 공간에 있다고 여겨졌다.윤동주의 ‘서시’,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나 읽었던 그 시를 다시 읽어본다. 참으로 애달프다. 정지용의 ‘압천’, 사실 ‘향수’는 읽은 적 있지만 이 시는 처음 접해본다. ‘압천’은 정지용이 교토 시절에 쓴 시 가운데 대표작이다. 정지용 시비는 고향인 충북 옥천의 화강암으로 만들었다고 한다.두 사람의 시비는 교토대학에서 세웠다. 윤동주는 1995년에, 정지용은 2005년이다. 두 사람이 교토대학 출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의 시비를 일본의 대학에서 세운 것 자체가 경이로울 정도이다.광주에 詩碑는 몇 개나 있을까. 한 번 조사를 해봤다. 모두 42개이다. 이들 詩碑는 너릿재 詩碑공원에 21개로 가장 많고 다음이 광주공원과 사직공원, 그리고 중외공원 등에 있다. 일부는 시 외곽 곳곳에 있다.1970년 광주공원에 ‘영랑 용아 시비’가 처음 건립된 이래로 48년 동안 42개가 세워진 셈이다. 그 과정에 일부 詩碑 작품의 수준 문제도 거론되는 가운데 선정 원칙이나 시대적인 고려 없이 조선시대부터 근•현대 시인까지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광주와의 연계성이 높지 않은 시인도 상당수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이들 詩碑를 찾아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 발견한 것이 우선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이왕 세울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고 기억하며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더 좋다는 것이다.그리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있다. 광주시가 이런 詩碑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대부분의 시비가 광주시나 일선 구청이 관리하고 있는 공원지역에 건립되어 있다.그렇다면 민간단체가 세웠다고 할지라도 허가를 받아 건립한 것일 게다. 그런데도 광주에 詩碑가 몇 개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되어 있고 관리도 허술하여 기단부 훼손이 심한 비석도 있다. 글씨가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 ‘문화도시 광주’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서구청에서 풍암호수공원에 목판으로 만든 시화 35점이 설치되어 이곳을 찾은 하루 3천여명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또 눈여겨보면 알 일이지만 5개 구 가운데 서구 관내 200여 버스정류장마다 시화가 붙여져 있어 문화도시 체면을 조금이나마 세워주고 있다.광주시는 다른 일선 구청과 협력하여 기존의 詩碑 관리를 이참에 팔 걷어붙이고 해야 할 일이다. 서구처럼 목판 시화를 설치하거나 정류장 시화를 부착하여 언제나 시와 그림을 읽고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길 바란다. 감성의 도시 광주이길 바란다.
    2018-10-28 | NO.23
  • 걸어서 서울까지
    오랜 꿈이 있다.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는 것. 버스, 기차, 비행기로 금방 가버리는 순간이동으로 가지 않고 두 발로 한 걸음씩 걸어서 가 보고 싶다. 그 소망은 여태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 뿐 아직껏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늘 한해가 끝날 무렵이면 이 계획은 다음해 버스킷리스트로 넘긴다. 어쩌면 실현하지 못할 소망이 될 것 같아 이제는 스스로를 믿기도 어렵다.이런 계획을 거창하게 국토순례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단지 나를 낳아준 땅을 두 발로 ‘스킨십’하면서 국토의 품을 더듬어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이 땅에 태어났으니 생애 한 번이라도 이 땅을 두 발로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고 싶은 것. 가다가 해가 지면 여인숙 같은 데서 자고 다음날 또 일어나 길을 걷고 그러노라면 강산에 어려 있는 선조들의 역사, 혼과 마주하면서, 어머니인 국토로부터 위안과 자긍심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다.옛날 조선시대 청년들은 괴나리봇짐에 가득 청운의 꿈을 담아 짊어지고 서울로 갔다. 과거시험을 보러, 혹은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 달여의 시간을 미투리 몇 짝을 허리춤에 달고 강나루 건너고 고갯마루를 오르며 천리 길을 걸어갔다.국토의 산천경계를 둘러보며 주막에서 자고 가다가 산적을 만나면 털리기도 하면서 ‘사람은 서울로’하는 행렬에 섞여들었다. 그렇게 두 발로 땅을 걸었기에 이 땅의 강산, 풍속, 인심을 소재로 한 시문을 많이 남겼는지도 모른다. 문집은 물론이고 정자 같은데 시를 새겨 걸어놓기도 했다.걸어가면 국토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어떻게들 사는지, 인심은 어떤지, 고을마다 재마다 서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서울까지 걸었다. 그 시절에 서울을 간 민초들이 얼마나 되었을는지 궁금하기도 하다.아직도 그 옛길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봇짐장수가 걷던 길, 이몽룡이가 걷던 길, 홍길동, 임꺽정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길을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고 싶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트래킹화도, 등산모자도, 배낭에 구급약과 먹을거리, 물, 책, 지도, 칫솔, 면도기, 스틱 등등.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더 필요할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걸어서 서울까지 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몸이 건장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무리다 싶다. 우선 몸만들기가 필요할 듯하다. 다리에 근육도 붙여야 할 것 같고. 이런저런 것들을 살피다보니 오랜 꿈은 결국 더 오랜 꿈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옆에서 아내는 턱도 없는 생각이라며 아서라고 말한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탈이 날 거라며 그런 무모한 계획은 힘이 넘치는 젊었을 때라면 모를까 꿈을 깨란다.조선팔도를 세 번이나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여덟 차례나 오르는 실측 답사 끝에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김정호는 아마도 이 땅에 살다간 사람 가운데 가장 국토를 최애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몸을 이끌고 다니며 실측했다는 이야기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어쨌거나 고산자가 방 안에 틀어박혀 기존 자료들만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한번은 돌아다녀 보지 않았을까. 김정호가 이 나라 강산을 두루 돌아다녀보고 나서 답사기까지 남겨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일 걸어서 서울까지 천리 길 도보행이 실현된다면 당연히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천리길 도보여행을 꿈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 수영선수 조오련이 대마도까지 바다를 헤엄쳐 간 일이 있다. 그때 조 선수는 상당 기간 몸만들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배낭에 들어갈 물건들만 준비하고 천리 길을 간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지금 이대로 집을 나선다면 백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말 것이다. 한양 천리 길을 도보로 가보겠다는 꿈은 어쩌면 온몸으로 국토를 껴안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의 극에서 나온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땅에 태어나서 가장 해볼 만한 일이 그것 같기도 하다. 천리 길을 걸어봄으로써 비로소 이 땅의 아들로 인증되는 것 같은.광주에서 서울까지는 720킬로미터라는데 하루 25킬로미터, 즉 하루 60려리 남짓 걸으면 될 터이다.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기도 하다.홀로 쓸쓸히 천리 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천리 길 생각을 하다 보니 해마다 5월을 택해 서울에서 또는 부산에서 광주까지 한 사람이든 몇 사람이든 걸어서 광주로 오는 사람에게는 광주가 그에게 인권도시의 이름으로 기념 돌담장을 만들어 거기에 이름을 새겨주는 행사를 하면 어떨까.천리 길을 걸어서 광주로 오는 사람들을 무등산이 광주를 품듯이 광주가 그들을 안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애 한번은 서울이나 부산에서 광주까지 걸어보는 것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의례로 만들어간다면. 남도의 세례를 받는 모습이 그려진다.그나저나 올해 안 되면 내년에는 기필코 한번 시도를 해보고 싶다. 신암마을, 절골, 무내미재, 말목, 신거무다리, 못재, 미륵석불, 원덕리, 갈아바위, 갈재 길을 걷는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2018-10-02 | NO.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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