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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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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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동직(奇東稷)
    기동직(1869~1919)의 본관은 행주이며 자는 중백(仲百)이다.부 : 奇中鉉조 : 奇師贒증조 : 奇商胤외조 : 南平 文世憲처부1 : 咸平 李台範1916년 송사 기우만 선생 장례를 지낼 때[襄禮] 참석하였다.*참고 『澹對軒重建扶成錄』
    2020-02-21 | NO.256
  • 기동찬(奇東燦)
    기동찬(奇東燦, 1823~1853)의 본관은 행주, 자는 경문(敬文) , 호는 매천(梅泉)이다.부 : 奇恒錫조 : 奇師忠증조 : 奇商胤외조 : 高時奎처부1 : 宋文信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다
    2020-08-08 | NO.255
  • 기문현(奇文鉉)
    기문현奇文鉉(1811~1861)의 본관은 행주이다. 자는 우용(羽用)이고 호는 송대(松臺)이다. 기백연奇百衍의 아버지이다.부 : 奇在善조 : 奇象仁증조 : 奇學祿외조 : 商山 金漢基처부1 : 延日 鄭在洙1844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고 기주관(記注官), 휘릉 별검(徽陵別檢), 승문원 박사(承文院博士),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선전관 겸 금위영종사관(宣傳官兼禁衛營從事官), 충청 도사(忠淸都事), 웅천 현감(熊川縣監),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856년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을 거쳐 교리(校理)에 임명(任命)되었다. 1857년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을 거쳐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이 되었고 은산 현감(殷山縣監)을 거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에 다시 임명(任命)되었으며 1860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었다. 문집에 《송대유고(松臺遺稿)》가 있다.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59년 9월 18일에 奇陽衍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엽정을 경영했다.노사집蘆沙集 권1 시편에 과거에 급제한 기문현의 처지에 다음과 같이 문중의 기대가 크다는 기쁨을 드러낸 글을 보냈다.왕가에서 선비 많이 났으니 / 王家富產士온 나라의 굴혈이 되었네 / 環海以爲穴선배들도 그 속에서 나왔으니 / 前輩出其中지금 좋은 종자가 어찌 끊기리요 / 好種今豈絶청아의 교화가 아직도 높으니 / 菁莪化猶隆악독의 영기가 다하지 않았네 / 嶽瀆靈未竭식년시가 삼년마다 이어지지만 / 令式三年比기재는 간혹 좋아하지 않았다네 / 奇才或不屑인재 구할 때 깊이 두려운 건 / 深懼夢卜下뛰어난 인물이 누락됨이니 / 有漏匪熊揲별도로 굉사과를 두어 / 別有宏詞科국가가 국경일 뒤에 설치하였네 / 邦家慶後設길목이 조금 넓혀지니 / 路陌差寬坦베틀 북이 맘대로 하여 / 機杼任出沒드디어 뛰어난 힘 가진 말이 / 遂令超乘蹄머리 숙이고 굴레를 받게 되었네 / 屈首受羈紲근일에 옥체가 강녕하시어 / 近日玉體康기쁜 기운이 온 누리에 넘치는데 / 喜氣寰宇溢병든 나는 궁산에 체류하여 / 病我滯窮山식은 마음은 다시 뜨거워지기 어렵네 / 灰心難再熱아직도 사방 이웃 쟁기질 부러워하며 / 尙戀四隣耒앉아서 과거장의 인걸들을 세어보네 / 坐數圍中傑한스러운 것은 이목이 좁은 것이니 / 所恨耳目狹자부하는 이 누가 기와 설인고 / 許身誰夔契우용은 우리 집안의 수재로서 / 羽用吾家秀문단에서 맘대로 척결하였네 / 藝苑恣剔抉준걸스런 자리에 혹시 오를까 / 俊遊行儻躡문중의 기대가 특히 간절하다네 / 門戶翹待切
    2020-02-24 | NO.254
  • 기사곤(奇師坤)
    기사곤(?~)의 본관은 행주이다. 1842년 11월에 奇象忠 奇象黙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부 : 奇商嵒조 : 奇宗履증조 : 奇世勳
    2020-02-24 | NO.253
  • 기사직(奇師稷)
    기사직(1780~1858)의 본관은 행주이다. 1842년 11월에 奇象忠 奇象黙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 부 : 奇商學조 : 奇宗壽증조 : 奇重勳외조 : 羅星燁처부1 : 金致勳
    2020-02-24 | NO.252
  • 기상규(奇象奎)
    기상규의 본관은 행주이다.       1842년 11월에 奇象忠 奇象黙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부 : 奇彦升조 : 奇宗文증조 : 奇挺尙외조 : 江陵 金命演처부1 : 全州 李처부2 : 驪州 李
    2020-02-24 | NO.251
  • 기상묵(奇象黙)
    기상묵(1835~1904)의 본관은 행주이고 자는 성회(聖會)이다. 부 : 奇學元조 : 奇彦漸증조 : 奇挺鮮외조 : 金白亨처부1 : 宋繪相1842년 11월에 奇象忠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
    2020-02-24 | NO.250
  • 기상춘(奇象春)
    기상춘(奇象春, 1777~1849)의 본관은 행주, 자는 원중(元重)이다.부 : 奇學祿조 : 奇彦鼎증조 : 奇挺後외조 : 朴重一처부1 : 梁瀚觀처부2 : 金璲1842년 11월에 광주 유학 奇象忠 奇象黙 등 54명과 함께 경기도 순찰사와 高陽郡守에게 단자를 올렸다.
    2020-08-08 | NO.249
  • 기상충(奇象忠)
    기상충(奇象忠, 1760~1846)의 본관은 행주, 자는 대숙(大叔)이다.부 : 奇學心조 : 奇彦復증조 : 奇挺範외조 : 權世僖처부1 : 金夢洙1842년 11월에 광주 유학 奇象忠 奇象黙 등 54명과 함께 경기도 순찰사와 高陽郡守에게 단자를 올렸다.
    2020-08-08 | NO.248
  • 기세관(奇世觀)
    기세관(1890~1955)의 본관은 행주이다. 자는 광국(光國)이며 호는 양묵재(養默齋)이다. 부 : 奇蘭燮조 : 奇東參증조 : 奇夏雲외조 : 長澤 高濟馨처부1 : 長興 高燦柱송사 기우만에게 수학하였고 기우만의 문인들이 寒泉齋에서 계를 맺었다. 1924년 담대헌(澹對軒)의 중건 때 330냥을 성금으로 내었다.담대헌은 노사 기정진이 1878년에 정사(精舍)를 지어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후손들이 1924년 중건하였으며, 1927년에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1994년 사당과 주변 담장을 보수하였다.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장성 고산서원
    2020-02-24 | NO.247
  • 기승섭(奇承燮)
    기승섭(1976~1939)의 본관은 행주이다. 자는 치술(致述)이며 호는  월곡(月谷)이다.부 : 奇東秀조 : 奇連永증조 : 奇師復외조 : 洪洲 宋日宗처부1 : 珍原 朴瓊柱송사 기우만에게 수학하였고 1916년 송사 선생 襄禮 때 참석하였다.
    2020-02-24 | NO.246
  • 기언관
    기언관(奇彦觀, 1706~1784)의 자는 백담(伯瞻), 호가 국천재(菊泉齋),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광산 임곡 두정리(光山 林谷 斗亭里) 출신으로 고봉 기대승의 6대손이며, 낙암 기정용(樂菴 奇挺龍)의 조카이고 기정후(奇挺後, 1676~ 1722 :덕성군(進), 19세)의 아들이다. 1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모친(母親)의 슬하에서 공부하여 1744년(영조 20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한림천거(翰林薦擧)에 그가 차점(次點)이 되었는데 영조가 고봉의 후예라 하여 특별히 점수를 더 주어 입선시키고 궁중소시(宮中召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하지만 그는 특점(特點)을 가산한 것은 공평한 선례가 아니라며 부름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왕의 노여움을 사서 북방으로 3년간 귀양을 갔다. 그는 종성(鍾城)에 3년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영조 20년(1744) 5월22일에 " ......임금이 기언관(奇彦觀)을 종성(鍾城)에 유배시키라고 명하였다. 기언관은 고(故) 명신(名臣) 기대승(奇大升)의 후예이다. 임금이 그가 명현(名賢)의 후손이라 하여 어필로 특별히 한권(翰圈)에 2점을 더해 주어 선발에 참여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김양택 등이 함께 같이 나아와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이 그가 향곡(鄕曲)의 사람을 권장하여 발탁하는 뜻을 생각하지 않고 곧 당목(黨目)을 배웠다는 것을 미워하여 특별히 심하게 죄를 주어....."라고 적고 있다.귀양에서 풀려나 승문원(承文院)에 들고, 이어 연원찰방(連原察訪)으로 나갔다. 1780년에 대신들의 추천으로 통정대부로 승진되고 입조(入朝)한 지 30여 년 동안, 병조정랑(兵曹正郞),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헌납(獻納), 개성경력(開城經歷), 봉상사정(奉常寺正), 곽영도정(郭寧都正), 첨지중추(僉知中樞), 호조(戶曹), 형조참의(刑曹參議)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임하고 나아가지 않았으며 오직 개성경력(開城經歷)만 취임했다. 《국천재유고(菊泉齋遺稿)》가 있다.
    2020-04-13 | NO.245
  • 기정룡 奇挺龍
    奇挺龍의 자는 見卿, 호는 樂庵, 본관은 幸州다. 그의 5대조 大林은 기대승의 형이며, 고조는 孝芬, 증조는 琛, 조부는 義憲이다. 그는 光州 小古龍里 泉洞에서 奇震省과 平陽朴氏 尙鉉의 딸 사이에서 현종 11년(1670)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태도가 정중하고 말이 적으며 마음이 너그러웠다. 그는 외가댁에서 遜齋 朴光一로부터 공부를 익혔으며, 부모의 뜻에 의해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자 중단하고 취향에 따라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였다. 이에 손재 박광일은 高峰 奇大升 이후의 제1인자라 칭찬했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斷指하여 피를 넣어드렸으며, 喪을 당하여 朱子家禮를 지켜 소홀함이 없었다. 그는 학문과 행실이 뛰어나서 方伯과 御史들이 그를 방문하기도 하고 나라에 추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상을 당하면 후하게 재물을 보내 장례를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훌륭한 인품과 학문으로 그가 영조 14년(1738)에 69세로 별세하자 원근의 인사들이 모두 조의를 표하여 현인이 가셨다고 애도했다. 그는 星山李氏 南老의 딸 사이에서 齊勳, 弘勳, 衡勳 등 세 아들과 梁命虎와 玄明直에게 시집간 두 딸을 얻었으며, 부인이 일찍 죽자 다시 재취한 光山李氏 萬輝의 딸 사이에서 炳勳, 充勳 등 두 아들과 朴鳳采, 宋商復에게 시집간 두 딸을 얻었다.
    2020-08-04 | NO.244
  • 기정해(奇挺海)
    기정해(奇挺海, 1650~?)의 본관은 행주, 자는 여대(汝大)이다.부 : 奇震燁생부 : 奇震爀조 : 奇秀栢증조 : 奇邦獻외조 : 竹山 安守一처부1 : 坡平 尹天民 1716년 11월 3일에 田主 奇挺乾이 全羅道 長城府 內西面 會龍洞에 있는 田畓을 奇挺海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이 있다
    2020-08-08 | NO.243
  • 기주택(奇柱宅)
    기주택(奇柱宅, 1675~?)의 본관은 행주이다.부 : 奇元聖조 : 奇東奭증조 : 奇翊외조 : 完山 李後奭처부1 : 江陵 崔濟岱1798년 10월 18일에 幼學 奇珍이 京畿道 高陽郡 元堂面 沙根寺에 있는 논을 族叔인 奇柱宅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이 있다.
    2020-08-08 | NO.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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