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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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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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광련(高光璉)
    고광련(高光璉, 1872~1949)의 본간은 장흥이며 자는  호기(瑚器), 호는 침천(枕泉)이다. 남구 압촌동에 거주했다. 부 : 高馹柱조 : 高濟尤증조 : 高鳳鎭외조 : 李基彬처부1 : 申文休1929년 羅燾圭 문인들의 昭義契에 참여했다.
    2020-08-06 | NO.64
  • 고광문 고광인 고광룡
    남구 이장동 고광문(高光文, 1860~1898), 고광인(高光寅, 1862~1936), 고광룡(高光龍, 1867~1938) 형제는 부농 집안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가사에 근면하였다. 동학군에 종군한 뒤 집안의 수많은 전답을 동학군자에 헌납하고 목숨 걸고 싸웠다. 결국 일본군에게 동학군이 밀리면서 타향 객지로 피신 전전하며 세월을 보냈다. 통탄 비분의 세월을 보내다가 3형제의 행적이 110년이 지난 뒤로도 잘 알려지지 않아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동학 3형제기> 비석이 2004년 10월 세워졌다.후손인 고영두(高永斗. 1930~2006)씨의 450평방미터 부지 희사로 이장동 216에 2016년 6월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2020-03-06 | NO.63
  • 고광선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의 본관은 장흥(탐라)이며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이다.  서창면 용두리에 살았다. 1855년(哲宗 6) 光州 復村에서 湖隱 高璞柱와 행주기씨 禹鎭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霞川 高雲과 忠烈公 高敬命의 직계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행동이 비범하여 아이들과 함부로 섞여 놀지 않았으며, 스스로 글을 깨쳐 경서와 제자서를 읽을 줄 알았다. 10세에 모친을 여의었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상례를 어른처럼 행하니 주위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이러한 고광선을 두고 부친의 친구들이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하여 자못 기대하는 바가 컸다.그때 마침 德岩 羅燾圭가 이웃 石亭里에 와서 강의를 함으로 나아가 학문을 닦는다. 또한 蘆沙 奇正鎭 문하에 들어가 지금까지 듣지 못한 바를 듣고서 기뻐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기정진에게서 성리학을 익혀 깊이 있는 학문의 세계를 이룬다. 또한 기정진의 문하에 있으면서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는데, 吳繼洙, 朴魯述, 奇宇萬 등이 그들이다. 고광선의 나이 40세 무렵에 갑오농민운동이 발발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하였다. 고광선은 그 어지러움을 매우 걱정하며 거동을 바르게 하여 흔들리지 않아 안전할 수 있었다. 그는 이처럼 성격이 조용하고 담박하여 세상과 그리 어울리지를 않았다. 더군다나 당시는 을사조약(1905년), 경술국치(1910년), 고종의 승하(1919년) 등 국내적으로 굵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들을 목도한 고광선은 적과 함께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하여 光山 西倉 鳳山(봉황산)으로 숨어들어 掩耳齋를 짓고 살았다. 그곳에서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고 생을 마감하고자 했으나 원근에서 많은 이들이 학문을 닦으러 찾아옴으로 막지 못하고 봉산정사를 지어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1934년 생을 마감하니 향년 80세였다. 훗날 제자들이 그를 기리는 鳳山祠를 지어 배향했으나 시간이 오래되어 찾는 이가 없어지면서 2017년을 전후해 멸실되었다. 남긴 문집으로는 『현와유고』가 있다. 부 : 高璞柱 조 : 高濟說 증조 : 高公鎭 외조 : 奇禹鎭 처부1 : 李周洪 처부2 : 金運錫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80년 노사선생 襄禮 때 참석하였다. 1906년 12월 12일에 奇宇萬에게 편지를 보냈다. 1924년 담대헌의 중건시 454냥을 성금으로 내었다. 1929년 羅燾圭 문인들의 契에 참여했다. 
    2020-02-05 | NO.62
  • 고광수
    고광수(高光洙), 1870~1937의 본관은 장흥으로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자는 도일(道一)이고 호는  송파(松坡)이다. 부 : 高德柱 조 : 高濟乙 증조 : 高性鎭 외조 : 李志容 처부1 : 光州 李秉一1929년 羅燾圭 문인들의 契에 참여하였다. 1935년 4월에 秉天祠의 일로 鳳山精舍에서 회합을 갖자는 통문을 내는 데 동참하였다.
    2020-02-05 | NO.61
  • 고광익(高光益)
    고광익(高光益, 1858~?)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성오(省五), 호는 우정(愚汀)이다. 남구 양과동에 거주했다. 부 : 高儀相조 : 高濟憲증조 : 高厚民외조 : 朴齊莞처부1 : 李基彬처부2 : 具元模처부3 : 鄭大彦1929년 羅燾圭 문인들의 昭義契에 참여하였다
    2020-08-06 | NO.60
  • 고광준(高光俊)
    고광준(高光俊, 1853~1939)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치삼(致三), 호는 인암(忍菴) 이다. 남구 양과동에 거주했다.부 : 高儀相조 : 高濟憲증조 : 高厚民외조 : 朴齊莞처부1 : 尹柱興       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소의계昭義契에 참여하였다.
    2020-08-06 | NO.59
  • 고규상(高奎相)
    고규상(高奎相, 1878~1959)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윤화(允和), 호는 덕봉(德峰) 이다. 남구 니장동에 거주하였다.부 : 高濟國조 : 高宜鎭증조 : 高時興외조 : 昌寧 曺처부1 : 李謙緖       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契에 참여하였다.
    2020-08-06 | NO.58
  • 고영문
    고영문(高永文, 1883~1948)의 본관은 장흥이며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자는 윤회(允會)이며 호는 무위재(無謂齋)이다. (남구) 압촌동에 살았다.부 : 高琮錫 조 : 高在中 증조 : 高光國 외조 : 蔚山 金衡中 처부1 : 延日 鄭海成1929년 羅燾圭 문인들의 契에 참여하였다. 1935년 4월에 秉天祠의 일로 鳳山精舍에서 회합을 갖자는 통문을 내는 데 동참했다.
    2020-02-05 | NO.57
  • 고유상(高維相)
    고유상(高維相, 1870~?)의 본관은 장흥이다. 자는 도관(道貫)이고 호는 남애(南涯) 이다. 광주 니장동에 거주하였다.부 : 高濟六조 : 高燦鎭증조 : 高時大외조 : 尹敬學처부1 : 曺秉模1929년 羅燾圭 문인들의 소의계昭義契에 참여하였다.
    2020-08-08 | NO.56
  • 고재련(高在鍊)
    고재련(高在鍊, 1892~?)의 본관은 장흥이다. 자는 연술(鍊述) , 호는 후봉(後峰) 이다. 광주 니장동에 거주하였다.부 : 高光龍조 : 高榮柱증조 : 高濟鎰외조 : 李采柱처부1 : 金堯翊향교전교鄕校典敎를 지냈다. 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소의계契에 참여하였다.
    2020-08-08 | NO.55
  • 고재붕
    고재붕(高在鵬1869~1936)의 본관은 제주이며 제주고씨(濟州高氏)이다. 자는 윤거(允擧)이고 호는 익재(翼齋)이다.부 : 高光奎 조 : 高應柱 증조 : 高濟元 외조 : 尹藝烈 처부1 : 金善中艮齋에게 수학하였다. 1916년 송사 선생 襄禮 때 奠祝을 맡았다.
    2020-02-05 | NO.54
  • 고재화(高在華)
    고재화(高在華, 1881~1948)의 본관은 장흥이다. 자는 성관(聖觀) 이고 호는 송곡(松谷) 이다. 남구 압촌동에 거주하였다.부 : 高光祿생부 : 高光壽조 : 高炳柱증조 : 高濟應외조 : 朴源國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소의계에 참여하였다.
    2020-08-08 | NO.53
  • 고제만(高濟萬)
    고제만(高濟萬, 1888~?)의 본관은 장흥이다. 자는 동섭(東燮) 이고 호는 성심(誠心) 이다. 남구 석정동에 거주하였다.부 : 高廣鎭조 : 高時丙증조 : 高廷玟외조 : 李曾根처부1 : 林相包처부2 : 崔士範1929년 羅燾圭 문인들의 契에 참여하였다.
    2020-08-08 | NO.52
  • 고한주(高漢柱)
    고한주(1871~1959)의 본관은 장흥이다. 자는 방서(邦瑞)이고 호는 외당(畏堂)이다. 주요 거주지는 광주 장산리였다.부 : 高濟寅조 : 高亨鎭증조 : 高時瑾외조 : 鄭燦默처부1 : 忠州 朴源佑고한주는 1894년 장성 西二面의 유생 奇宇冕 朴義容 등과 함께 召募使에게 東學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소지를 올렸다.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에게 수학하였다.만송재晩松齋를 경영했고 문집으로 외당유고畏堂遺稿가 있다.1922년에 고한주가 간재 선생의 상에 지어보낸 제문이 있다. 간재의 초명은 경륜(慶倫), 경길(慶佶),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간재(艮齋), 추담(秋潭), 구산(臼山)이며 본관은 담양이다. 이 글은 고한주가 그의 스승인 간재 전우 선생이 종명한 지 23일이 지난 1922년 7월 27일에 지은 제문이다. 그는 간재 선생님의 영연 앞에 재배하고 통곡하면서 공경히 제사지냈다. 하늘이 선생님께 내린 성품은 인과 의요, 떳떳한 본성을 확립하니 사람에게 떨어지지 않네. 성인은 하늘을 근본으로 하고 군자는 성품을 높이시네. 도의가 확연한데 해처럼 밝으셨네. 여러 성인이 남기신 요결을 조심스럽게 책려하여 우리나라에 이르렀네. 아! 선생님은 남쪽지방에서 굴기하여 안연의 곤궁 속에서 스스로도 즐기어 일찍이 전재 임헌회 선생의 문하에 집지하여 예로써 극복하고 공자의 주자의 정맥을 이어 받고 율곡 이이 선생과 우암 송시열 선생의 적전이 되셨네. 이는 샘에서 처음 물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고 불이 처음 불타오는 것과 같은 것이네. 그러나 세상은 말세로 빠져들어 인간과 짐승이 섞여 구분하기 어렵고 의관과 신발을 거꾸로 싣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네. 이에 선생님은 공자의 생각처럼 바다에 나가 중화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였네. 이에 사류들이 운집하여 문강(問講)이 이루어져 털끝과 실끝 처럼 분석하셨네. 아! 이제 선생님께서 없으시니 사문도 또한 없어지네. 그러나 주나라가 동천한 후 공자의 도가 밝아지고 송나라가 남쪽으로 옮겨 감에 주자가 태어났네. 이 땅은 무슨 땅인가. 오늘은 어느 때인가. 우리 선생님을 은미하게 하여 누가 부지하는가. 소자는 늦게 선생님의 문하에 나아가 선생님에 대한 추회를 더 이상 펼 수 없으나 공경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명하니 선생님의 수택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소자의 작은 정성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참고문헌 1894년 奇宇冕 등 所志 『畏堂遺稿』
    2020-02-24 | NO.51
  • 기동석(奇東奭)
    기동석(1875~1950)의 본관은 행주이다. 자는 국로(國老)이고 호는 회계(晦溪)이다.부 : 奇琮鉉조 : 奇榮國증조 : 奇象憲외조 : 竹山 安命和처부1 : 長興 高濟喬처부2 : 光山 盧文奎기동석은 작은아버지인 기주현(奇周鉉, 1846~1907)의 양자로 입적됐다. 묘는 광산구 임곡동 노동마을에 있다가 이장하여 촌곡면 종산마을에 있다.1935년 吳東洙 등 通文에 따르면 1935년 4월에 병천사秉天祠의 일로 봉산정사鳳山精舍에서 회합을 갖자는 통문을 내는 데 동참하였다.기동석은 겸재 기학경의 현손으로 <겸재집>에 '호상기문(湖上記聞) '을 찬했다.또 춘담春潭 기동준(奇東準, 1860~1918)의 족제族弟로 1932년 기동준의 개인 문집인 《春潭文集》 10권에 행적을 정리한 家狀을 지었다. 춘담문집은 10권 5책 석인본으로 1966년 아들 기근섭奇近燮이 편찬했다.또 기언정(奇彦鼎, 1716~1797)의 1912년에 발간된 나와선생문집인 《나와집懶窩集》의 발문을 1912년에 썼다.또 나주 송정 출신 박봉혁(朴菶赫, 1873∼1935)의 1937년 간행된  8권 3책, 석인본인 《수재유고(守齋遺稿)》에 기동석(奇東奭)이 서문을 썼다. 박봉혁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때 역적들을 토벌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때 자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심남일(沈南一, 1871~1910)의 항일 투쟁을 기록한 의병록이며 역사서로 후석 오준선이 쓴 심남일실기인 《진지록盡知錄》의 발문을 썼다고 한다.
    2020-02-24 | NO.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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