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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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봉 김태원장군 동상(2013)
    광주 서구 농성2동 645-1, 농성광장내의병장 죽봉 김태원 장군의 동상은 화승총을 손에 든 채 한 손으로 어등산 봉우리를 가리키고 있는 굳센 얼굴이다. 1975년 6월에 처음 세웠다. 이후로 많이 훼손되어 김태원의병장기념사업회에서 전병근의 작품으로 1998년 12월에 다시 세웠다.
    2018-06-26 | NO.3
  • 최현숙 애국지사 흉상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산 127 (문성고 건너편)1993년일제치하 1919년 3월 1일 당시 여성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몸을 담갔던 유관순이 있다면 빛고을에는 ‘광주의 유관순’이라고 불리는 여성 독립운동투사 최현숙 선생이 있다. 최 선생은 선구적인 여성으로 일찍이 독립운동과 농촌 계몽에 젊음을 바쳤으며, 폭악한 일제의 총검에 항거하여 오직 조국광복을 위하여 몸을 바쳐왔던 여성운동가다. 그녀는 3·1운동에 가담한 16세의 최연소 독립운동가로 옥살이를 지냈으며, 광주 최초의 여성언론인이다. 그녀는 1904년 1월 27일 전남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남구 양림동)에서 과수원을 하는 부잣집 막둥이 외동딸로 태어났다.당시 여성의 교육이 중시되지 않았던 때. 그녀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10살의 나이로 수피아 여학교 보통과에 입학하고 4년을 마친 후, 다시 수피아 여학교 고등과를 진학하게 될 만큼 총명하고 영특했다. 1920년 수피아 여학교 고등과 제 6회 졸업생이었던 그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서울 정신여학교의 진학에까지 이르는 계몽의식이 남달랐다.그녀가 고등과 3년 재학 당시 3·1운동이 발생했다. 체격이 남들보다 성숙했던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 불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렬을 선도했다. 광주에서는 3월 10일 봉기를 하기로 있던 터라 밤을 세워가며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했다.시위 당일. 그녀는 결단의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했다. 머리를 땋고 치마끈을 단단히 매고 짚신을 신은 채 시위진열에 섰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수피아 여학교에서 광주시장까지 가면서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16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갖은 고초를 겪고 미결구금으로 50일간을 투옥하게 됐다. 최 선생은 투옥당시 일경에게 무수한 매와 두부 15cm정도의 심각한 상처를 입어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끈을 매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고 한다.그녀는 만세운동으로 옥살이 이후 1924년 3월 서울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 온 그녀는 독립운동의 정열을 이어 흥학관(동구 광산동 구시청)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문맹퇴치운동, 주민계몽운동에 힘써왔다.그녀는 독립운동 이외에도 여기자 활동, 후학육성, 사회봉사활동 등 광주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로 조명되고 있다. 또한 ‘수피아 백년사’에도 수피아가 존경하는 인물로 최현숙 선생을 다루고 있어 여성 운동사에 귀감을 주고 있다.
    2018-11-23 | NO.2
  • 하서 김인후 상
    북구 하서로 52, 중외공원중외공원 내 시립미술관 건물 앞 쪽으로 걷다보면 푸른 소나무와 잘 어루러져 당당하고 늠름하게 문묘에 배향된 우리나라 18현(賢) 중 호남출신 하서 김인후(1510~1560) 동상이 있다.문정공하서선생동상건립기 하서 김인후선생은 유학사상 도학 절의 문장을 다 갖춘 오직 한분으로 추앙을 받아 왔다. 선생은 천성이 어질고 고결하여 어려서부터 성현의 기상이 드러나고 6세에 시 상원석과 영천을 지어 생지의 칭이 높았다. 이에 더하여 사색궁리와 공부에 정진하고 대학 시경 주역은 천 번을 더 읽었다 한다. 일상의 언어동작이 소학의 규범에 한 점 어김이 없었다. 선생이 일생을 바친 학문은 도학이다. 당시 도학은 전성기를 맞아 정밀 심오한 철학으로 발전하여 석학들의 제설이 분분하였다. 선생은 정치 심오 순정한 학문을 바탕으로 정론을 폄으로써 도학의 정통을 지키고 시비를 명쾌하게 가려 학계에서 옳은 길을 제시하고 바른 귀결을 지었다. 선생은 학문에 못지않은 절의를 지켰기에 백세의 스승으로 칭송된다. 기묘제현의 신원은 마땅한 일임에도 온 조야가 침묵할 때 선생은 결연히 상소하여 마침내 이를 이뤄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인종이 승하하자 세자 때의 자별한 은우와 묵죽이 뜻하는 바를 지켜 평생 벼슬을 끊고 충절을 지켰다. 선생의 학문과 절의를 더욱 빛낸 시문은 한결같이 도학에 연원하고 시경 이소 두보의 시풍을 지녔으며 순정한 성정에서 우러나와 자연과 인사를 물 흐르듯이 노래하였다. 돌아가신지 사백여년 인사는 전변무상하되 선생이 끼친 도학 절의 문장은 오늘에 이르도록 휘영청 빛나고 있다. 지금 세상의 풍속은 날로 그릇되고 인륜도덕은 무너져 인심은 의보다 리를 따른다. 그럴수록 선생이 태산북두로 우러러진다. 이에 본회에서는 선생을 흠모하는 후학들의 뜻을 모아 선생의 거룩한 모습을 구현하여 동상으로 모시고자 한 것이다. 이제 선생이 동복소쇄원 면앙정을 오가며 지팡이를 멈췄을 광주의 하늘아래 온후 인자하며 밝고 맑고 단아한 풍모를 우러르게 되었다. 고결한 인격과 높은 학문과 지극한 절의를 지녔던 선생의 가르침이 온 겨레의 가슴마다에 살아 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서기 1992년 10월 30일 문정공 하서선생 동상건립위원회
    2018-06-26 |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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