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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출 - 재일디아스포라의 '두드리는 기억'
일본에서 느끼는 조국에 대한 사랑, 비애 등 그려

5월 광주로 인해 다시 시작한 화가의 길

해방 이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 그에게 “조국은 어느 곳일까”라는 질문을 혼자서 조심히 우물거려본다. 작은 키, 모자를 쓴 전형적인 시골 촌로의 모습으로 다가온 그는 여전히 한국의 어느 땅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이다.

김석출(1949~  )
김석출(1949~ )

말을 걸어본다. “선생님 작품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5.18항쟁이나 유관순의 만세 모습이 처절한 듯하면서도 아름다움이 가득 들어 있어 눈물이 납니다” 그는 대답한다. “서른 살이 넘었을 무렵 일본에서 TV 뉴스로 본 5.18항쟁의 모습에 포기하려던 화가의 길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후 20여년간 “광주의 그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분노가 중첩”되면서 “나는 화가로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라는 심정으로 붓을 잡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5월 광주 시리즈라고 덧붙였다.

그는 1949년 일본 기후현(岐阜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조센징’이라는 핍박받으며 살아왔을 고난의 흔적들이 아우라처럼 다가오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부모로부터 내재하여온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남북분단을 거치며 고스란히 자신에게 다가온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압과 차별을 감내하였다.

한국인의 DNA 속에 들어있는 인내의 세포가 그를 둘러싼 모든 억압과 차별의 비애를 견디게 했고, 또한 저항의 정신이 모든 불의와 부조리를 기록으로 남겨 후대의 역사가 되도록 하겠다는 이유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이런 가치들이 한국인의 민족의식에 뿌리를 둔 작품활동으로 오늘의 역사에 끊임없는 두드림을 계속하고 있다.

김석출, ‘1980.5.27.’(194×112.1cm×3pieces: 세로×가로), 1980~2000.
김석출, ‘1980.5.27.’(194×112.1cm×3pieces: 세로×가로), 1980~2000.

이번 전시회에서 포스터에 보여주듯 대표적인 작품은 ‘1980.5.27.’(194×112.1cm×3pieces: 세로×가로)이다. 이는 그의 ‘5월 광주’ 시리즈의 첫 작품이며 1980년부터 2000년까지 그리고 덧칠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해온 작품이다.

광주 5.18 자유공원에 있는 옛 상무대 유치장을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5.18청년들의 밀랍인형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주의 청년들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끌려가는 김석출의 작품은 1981년 일본에서 열린 제1회 《고려미술전》에 출품한 이후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수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양옆에 청년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표현한 군상, 화면을 가로지르는 포승줄의 상징성, 피의 희생을 표현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성, 그리고 중앙에는 8등신의 건장한 남성이 두 손으로 얼굴은 가리지만 육체의 당당함 등 짜임새 있는 조형성을 보여준다.

당시 체포된 이들은 엄청난 몽둥이세례로 옷이 찢기거나 강제로 벗겨졌으며, 머리는 헝클어지고 곳곳에 피를 흘린 채 상처받은 모습이었으나, 이 작품에서는 그런 흔적을 나타내지 않고 맨발과 포승줄이라는 단순함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이 작품 앞에 서 있으니 당시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주는 데다 눈물이 절로 나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김희랑 하정웅미술관 관장은 “손목이 묶여있는 화면 중앙의 남성은 체포된 자임에도 불구하고 인체의 구조와 신체의 비율, 근육의 표현 등이 매우 균형감이 있으며 이상적으로 표현되었다”라면서 “형식 면에서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고전주의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5월, 유관순, 민중항쟁에 대한 작가적 역사의식 뛰어나

또 하나의 ‘5월 광주’ 시리즈는 1984년 작품 ‘1980.5.18. 광주’이다. 작품은 크게 두 개의 공간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상단은 흩날리는 한복의 치마저고리와 한국의 전통탈을 배치하여 이를 무력의 상징인 장갑차가 깔고 뭉개는 듯한 민족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고, 하단은 피에타상을 차용하여 빨간 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쓰러진 남성을 껴안고 있는데 여성의 얼굴이 매우 결연한 모습이다. 특히 쓰러진 남성은 오른손으로 여성의 오른팔을 살짝 감싸면서 아직은 꺼지지 않은 자신을 보여주며 ‘걱정하지 말라’라는 암시를 주는 듯하다.
 
김석출, ‘1980.5.18. 광주’, 1984.
김석출, ‘1980.5.18. 광주’, 1984.

 여기에서도 두 사람은 맨발이라는 상징성과 흐트러지지 않은 의상으로 폭력 앞에 굴하지 않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화면을 가로지르는 블라인드는 작가가 일본에서 바라본 조국의 현실에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면서도, 40여년이 지난 오늘의 사람들에게 당시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무언의 장벽을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와 함께 2007년 작품인 ‘되돌아보는 유관순’(4,000x2,000cm)은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동안 죄수 이름표를 단 두꺼운 솜옷을 입은 유관순이 고문으로 얼굴이 부은 듯 무표정한 모습만을 보았던 것과는 전혀 상반된다.

김석출,  ‘되돌아보는 유관순’(4,000x2,000cm), 2007.
김석출, ‘되돌아보는 유관순’(4,000x2,000cm), 2007.

 배경은 거리에 나서 3.1만세운동을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흑백과 황톳빛으로 물들여 1백여년 전 오래된 상황임을 보여주고, 유관순은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 머리끝에 단 빨간 댕기와 오른손에 독립선언서를 쥔 채 두 손을 번쩍 하늘로 들어 올린 해맑은 모습이다. 이는 유관순을 오늘로 불러들여 당시의 외침이 관람객에게 들리도록 한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1974년작인 수갑을 찬 채 두 손을 앞으로 내민 ‘김지하’와 역시 수갑을 찬 흰색 한복을 입고 법정의 의자에 앉은 여성 ‘열사’는 당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당당함, 의연함, 굴하지 않음 등을 보여주면서 작가 역시 한국의 민중항쟁에 지지하고 있음을 나타낸 작품이라 하겠다.

김석출, 김지하, 1974;  김석출 열사, 1974
김석출, 김지하, 1974; 김석출 열사, 1974

이 밖에도 오사카시립미술관 부설 미술연구소에서 수학(1966~1968)할 당시 작품인 18세 때인 1966년 ‘서울의 하늘’은 베트남 파병(1964~1973) 문제에 대한 엇갈린 시선과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았으며, 1969년 ‘재일의 인권을 위해’(1969~1990)는 오사카적십자사 셔터가 닫히려는 순간을 통해 재일동포의 인권을 강조했다.

김석출, 서울의 하늘, 1966;  김석출, 돌아갈 수 없는 다리와 재일3세(꿈), 1969
김석출, 서울의 하늘, 1966; 김석출, 재일의 인권을 위해’, 1969~1990.

1980~2000년은 5.18 연작시리즈로 ‘5월의 광주’를, 2000년 이후에는 ‘유관순’을 통해 조국에 대한 맑은 그리움을, 1992년작 ‘돌아갈 수 없는 다리와 재일3세(꿈)’는 1976년의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당시 느꼈던 전쟁 촉발에 대한 불안감을, 2021년작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남북분단과 이산가족의 슬픔을 담은 역사적 증거물로 현실적인 아픔을 노래한다.

김석출, 돌아갈 수 없는 다리와 재일3세(꿈), 1992;  김석출, 철마는 달리고 싶다, 2021
김석출, 돌아갈 수 없는 다리와 재일3세(꿈), 1992; 김석출, 철마는 달리고 싶다, 2021

 그의 가족은 경북 출신의 부모가 1939년 징용공으로 일본에 간 이후 해방을 맞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가난에 시달리다 1955년 오사카로 이주한다. 3년 뒤 부친이 사망하고 모친은 막내인 김석출 등 7남매를 홀로 인력사무소 일을 하며 키웠다. 이미 한국에는 일본에 가면서 남겨둔 두 딸이 더 있었다. 이후 1964년 둘째 형이 반대를 무릅쓰고 북송선을 타는 등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에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져 살게 되었다. 재일디아스포라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이러한 그의 환경적인 영향으로 그의 작품은 재일의 인권과 역사, 조국의 정치와 사회적 이슈, 조국의 화합과 통일, 한일 교류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표출하는 데 집중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억, 자신의 기억, 후대가 기억해야 할 기억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끊임없는 기억에 대한 두드림을 펼치고 있다.

이번 김석출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 작가들이 역사적 진실에 대한 두드림을 함께 했으면 하는 공유의식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이슈와 장면에 대한 작가적인 시선으로 화폭에 스토리를 그려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시는 2024년 5월 26일까지이다.

* 김석출은 1949년 일본 기후현에서 출생, 1955년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로 이주해 현재까지 그곳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재일동포 2세 작가이다. 그의 부모는 경상북도 군위군 출신인 김만택과 정복례이며, 그들은 1930년 결혼 후 빈곤한 생활을 못이겨 1939년 징용공으로서 일본으로 간다. 그의 가족사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남북분단에서 발생한 비애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혼란 그리고 억압과 차별을 겪어 온 재일동포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듯 김석출의 예술세계는 자신의 개인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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