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정 윤구(橘亭 尹衢, 1495~1549) 행장 조선 중종과 명종 연간에 살았던 귤정 윤구는 호남 사림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문장과 절의, 그리고 학문적 교유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묘명현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의 생애는 개인의 학문적 성취에 머물지 않고, 가학(家學)과 문풍을
안축 安舳 명종 8년(1553) 8월∼명종 9년(1554) 4월안축(1500∼1572)의 본관은 죽산(⽵⼭)이며, 자는 해빈(海賓), 호는 둔암(鈍庵)으로 보성 출신이다. 아버지는 의정부사록 안수륜(安秀崙)으로 문과 급제자이다. 1531년 식년 시에서 생원ˑ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42년 정시(庭試)에서 을과에 1위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무등산한시선무등산에 대한 한시를 옛 문헌 속에서 찾아내어, 시대 순으로 편집하고 번역한 책이다. 우리나라 스물 두 번 째 국립공원인 무등산은 남쪽 지방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탐방하고 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의 시문집에서부터 현대 의재 허백련의 시문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옛 문
사촌 김윤제(金允悌)가 광주시 북구 충효동에 금다리보(金橋)를 짓고 벽간당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본래 환벽당을 말함다. 환벽당의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벽간당(碧澗堂)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遺書石綠)에 기록되어 있다.건물은 정면 3칸, 측면2칸, 팔작지붕
양응정은 1519(중종14)년 전라도 화순군 능주 월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 자는 공섭(公燮), 호 송천(松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양담梁湛, 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 아버지는 교리 양팽손梁彭孫이다. 어머니는 금산김씨로 김화金話의 딸이다. 형은 동래부사를 지낸 양응태이고 의병장을 지낸 양산숙이 셋
김성원(金成遠, 1525~1597), 湖節2下-162-1, 光州, 壬辰, 一道擧義-《호남절의록》(1799)김성원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 광주 출생. 본관 광산(光山), 자 강숙(剛叔). 호 서하당(棲霞堂)ㆍ인재(忍齋). 아버지는 교위(校尉) 홍익(弘翼)이며, 어머니는 해주최씨(海州崔氏) 장사랑(將仕郞) 한종(漢宗)의 딸이다. 김인후(金麟厚)
북구 환벽당길 10 (충효동) 환벽당은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 정자이다. 《광주읍지》(1879, 1924)에는 주의 동쪽 30리에 있다.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물이 흐르며 계곡 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
북구 풍암제길 117 (금곡동) 조선 선조와 인조 때 활동했던 집의 풍암楓巖 김덕보金德普(1571~1621)가 지은 정자이다. 풍암정은 무등산 분청사기 박물관에서 원효계곡 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계곡 건너편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광주읍지》(1879, 1924)에 따르면 주의 동쪽 20리에 있다.‘풍암’이라는 이
북구 석곡동 환학喚鶴 조여심(曺汝諶, 1518~1594)의 은거터로 그가 학문을 닦으며 유유자적했던 정자가 있다. 석곡동은 무등산 자락 북쪽에 위치한 무등산수박이 유명한 곳이다. 조여심은 학과 같이 살겠다는 뜻으로 스스로 호를 붙였다. 송순, 임억령 등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시우詩友로서 교유했던 서파 오도일이 “
무등산 원효사 가는 길목에 있는 광주의 시인 다형 김현승 시비 '눈물'의 기단부가 크게 벌어져 시급히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광주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 마을해설사반은 22일 임진왜란 당시 광주 의병 인물인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충장사와 인근의 유적비와 시비 등 금석문 현장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김현
박상朴祥(1474~1530)은 진사 박지흥의 차남이며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던 조선 중종 때의 관료로 사림 운동에 전력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호남 사림의 대부이다. 본관이 충주이며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이다. 눌재는 1474(성종5년)년에 광주 방하동 본가에서 성균관 진사였던 부친 지흥과 모친 계성서씨 사이에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 1496~1568),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 高敬命(고경명), 松江(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四仙(사선)'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息影亭二十詠(식영정이십영)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星山別曲(성산별곡)
식영정에서 술 취한 뒤 고제봉, 김상사 경생과 더불어 운자를 부르다物外情難盡(물외정난진) 물외는 정 다하기 어려운데人間事或乖(인간사혹괴) 인간사는 혹 일도 어긋나네杯盤賓主共(배반빈주공) 주안상을 주객이 함께 받고談笑古今偕(담소고금해) 고금의 이야기 함께 나눴네酒味傾還喜(주미경환희) 술잔을 기울이면 더 기
爲愛山容好 산의 모양이 아름다움을 좋아해移時坐向東 옮겨질 때마다 동쪽을 향해 앉네洩雲低度野 흐르는 구름은 낮게 들을 지나고 飛雨細隨風 날리는 비는 가늘게 바람을 따르네只恐兵戈動 다만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워하노니寧辭酒盞空 어찌 술잔 비는 것을 사양하랴元龍豪氣在 항룡은 호방한 기상이 있으니詩榻綺羅重 시
風滿高樓雨滿岑 바람은 고루에 가득하고 비는 산봉우리에 가득하니孤臣向北獨開襟 외로운 신하 북녘을 향해 홀로 흉금을 열어보네三杯綠酒顏生暈 석 잔 푸른 술로 얼굴에 취기가 돌고一拍淸琴瓦振音 한 박자의 맑은 거문고 기와에까지 울리네老去居官眞製錦 늘그막에 관직에 머물러 진정 비단옷 만들다가年來息影爲休陰 근래
童稚從吾舅 어렸을 때에 우리 외삼촌을 따라서詩書講此亭 시서를 이 정자에서 읽었다丘原無復起 구원에 계신 분을 다시 뵈올 수는 없지만松柏至今靑 송백만은 지금껏 푸르도다弔古同遼鶴 옛날을 슬퍼하니 요학과 같고寬心仗酒甁 속을 누그리기는 술병에 의탁한다山川含萬古 산천은 오랜 세월을 머금고 있나니鬱鬱馬前形 말
광주시 북구 금곡동 산 164-1(충장사 주변)1830년이 유명조선국숭정대부판결사의정부예의찬성김공함신도비(有明朝鮮國崇政大夫判決事議政府禮義贊成金公瑊神道碑)는 金致洙 쓰다.<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동쪽 20리의 거리인 배재(梨峙)마을에 있는 비석이다. 후손 면식(冕植)이 이를 세웠다. *瑊은 올돌 감, 또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목사양공응정선정비(牧使梁公應鼎善政碑)는 광주공원 비석군에 있다. 비의 앞면에 ‘敎英安民 厚俗革弊(영재를 가르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으며, 풍속을 도탑게 하고 폐단을 혁파했네)’ 8자(字)가 새겨져 있다. 선조 1년(1568년)에 광주목사(光州牧使)로 부임한 양응정(梁應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