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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공(김성유) 묘갈명 병서 〔光山金公墓碣銘 幷叙〕 -사미헌집

광산 김공 묘갈명 병서 〔光山金公墓碣銘 幷叙〕-사미헌집 제10권 / 묘갈명(墓碣銘) : 장복추(張福樞, 1815~1900)

광산(光山) 김공(金公)의 휘는 성유(性儒)이며 자는 유선(幼善)이다. 헌종 정미년(1847, 헌종13) 정월 30일에 돌아가셨고, 을축년(1865, 고종2)에 인동부(仁同府) 서쪽 세덕(世德)의 간좌(艮坐) 언덕에 이장하였다. 하루는 공의 증손자 봉상(鳳相)이 가장(家狀)을 지어 묘갈명을 부탁하였는데, 입언군자(立言君子)에게 청탁하지 않고 병들고 피폐한 나에게 반드시 받고자 함은 공을 앎이 나보다 상세한 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신라 말에 왕자 휘 흥광(興光 성덕왕)은 덕으로 백성을 구제하고 복택을 퍼뜨렸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대대로 평장사(平章事) 벼슬을 한 이가 있었으며, 그리고 문안공(文安公) 휘 양감(良鑑)은 송(宋)나라에 사신 가서 그곳의 태학(太學)을 본떠 우리나라의 성교(聖校 국자감)를 창설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 국자감(國子監) 생원 효로(孝盧)는 북문(北門)의 화를 만나 광주(光州)로부터 선성(宣城 예안(禮安))에 터를 잡아 은거하면서 벼슬하지 않았는데, 죽어서는 사당에 제향 되었다.

중종 때 명신 휘 연(緣)은 호가 운암(雲巖)이다. 징사(徵士)였던 휘 부필(富弼)은 호가 후조당(後凋堂)이고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문순(文純)으로 호가 읍청정(挹淸亭)인 휘 부의(富儀)와 함께 퇴도(退陶) 선생의 문하에서 배웠으니, 두 분 모두 덕망과 학문으로 세상에 난형난제로 일컬어졌다. 후조당은 읍청정의 아들 휘 해(垓)를 양자로 삼았는데, 해는 내한(內翰)의 관직을 지냈으며 호는 근시재(近始齋)로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들 휘 광계(光繼)는 호가 매원(梅園)으로 숭정(崇禎) 후에 여러 번 벼슬에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으니, 나의 여헌(旅軒) 선조의 고제(高弟)이다.

고조부는 휘가 순의(純義)이고 호는 과헌(果軒)이며 증직이 도헌(都憲 대사헌)이다. 증조부는 휘가 교(嶠)이다. 조부는 휘가 명원(命元)이니 통덕랑에 올랐으며 호가 몽암(蒙菴)으로 인동부(仁同府)의 약목(若木)에 옮겨 우거하였다. 아버지의 휘는 재()이다. 전처는 의성 김씨(義城金氏)로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여황(汝晃)의 따님이고 후처는 아주 신씨(鵝州申氏)로 부위(副尉) 벼슬을 지낸 효표(孝標)의 따님이니, 영조 계사년(1773, 영조49)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숙성하여 나이 14세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슬퍼하며 몸이 여위기를 노성한 사람같이 하였다. 어머니를 섬김에 힘을 다하여 겨울에 따뜻하게 해드림과 여름에 시원하게 해드림,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해드림에 있어서 지극한 마음을 쓰지 않음이 없었으며, 어머니 상을 당하자 척이(戚易 상례의 형식과 내용)의 예를 극진히 하였다. 동생을 우애롭게 대함이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나왔으며, 동생이 요절하여 후사가 없는 것을 애달프게 여겨 친히 스스로 양자를 구하여 교육시키고 집안을 세워주었다.

선조를 받드는 일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제기(祭器)를 만들었고 묘소의 석물도 두루 갖추었다. 자식을 가르침에 의리에 입각하였다. 책장에는 경서를 가득 채워놓고 빈붕들이 오면 함께 강론하고 토론하여 비록 여러 날 머물러도 항상 부족한 듯이 여겼다. 신극재(申克齋)가 창건한 사창(社倉)을 이건하고 동락서원(東洛書院)의 학계(學契)를 주관하였으니, 이것은 현자를 사모하고 선비를 장려하는 성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묘령(妙齡 20세 안짝의 나이) 때부터 옆에서 공을 모시면서, 공이 어린 나이 때부터 집안 일을 주관하고 남은 힘으로 글 공부하는 것을 그윽이 보아왔다. 공부한 것을 다른 일에 적용함에 넉넉함이 있었고, 필획은 정밀하고 발랐다. 집안을 다스림과 사람을 대함, 그리고 아래 사람을 부림에 있어서 조리 정연하게 법도가 있었다. 그러나 세도에 문제가 있어서 끝내 곤궁함을 면하지 못한 채 아래 지위에 있었으니, 개탄스러움이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부인은 인동 장씨(仁同張氏) 우섭(禹燮)의 따님이며 만회당(晩悔堂) 경우(慶遇)의 후손으로 규방에서의 법도가 있었다. 공보다 2년 전에 태어나서 공보다 7년 뒤에 죽었으며, 묘소는 공과 합장되어 있다. 1남 운교(澐敎)는 수직(壽職)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으며 3녀는 장석민(張錫敏),정연(鄭埏),허회(許檜)에게 각각 시집을 갔다. 부호군의 아들은 제동(濟東)과 제로(濟櫓)이다. 장석민의 아들 진원(晉遠)은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正字) 벼슬을 지냈으며, 딸은 김원규(金元奎),홍치규(洪致奎),송진수(宋鎭洙)에게 각각 시집을 갔다. 정연의 아들은 태석(台錫)이며 딸은 이탁소(李鐸韶)에게 시집을 갔다. 허회의 아들은 군수를 지낸 식(烒)과 위(煒),첨(燂)이다. 증손자와 현손자는 많아서 기록하지 않는다.

명은 다음과 같다.


신라와 고려 시대 이래로 / 自羅麗來
고위 관직과 큰 덕을 가진 이가 있었네 / 巨卿碩德
중세에 다섯 현자가 있어서 / 中世五贒
명성을 날리며 집안을 빛냈네 / 揚聲潤色
공은 그런 집안에 태어나 / 公又其家
타고난 품성이 비상하였네 / 天賦異常
몸을 계칙함에는 근검절약하였고 / 飭躬儉約
처세에는 적절하게 대처하였네 / 處世圓方
효손이 나에게 묘갈명을 구하여 / 孝孫求銘
불후하게 남길 것을 도모하네 / 爲圖不朽
산은 푸르고 물은 깊은 곳에 / 山蒼水深
공의 묘소가 불룩하네 / 公藏之厚
백세토록 묘소를 쓸고 성묘하니 / 百世瞻掃
믿을 만한 근거가 비석에 있네 / 徵信在玆
감히 아부하는 좋은 말을 할 수 있으랴 / 敢有阿好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기록하네 / 記耳目之


[주-D001] 북문(北門)의 화 : 
북문(北門)은 신무문(神武門)을 말하니 심정과 남곤 등이 신무문을 열고 일으킨 기묘사화를 말한다.
[주-D002] 내한(內翰) : 
한림원을 말한다. 여기서는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子)와 검열(檢閱)에 재직한 사실을 두고 말한다.
[주-D003] 양자 : 
원문 ‘螟兒’는 명령(螟蛉)을 말하는 것으로 양자(養子)를 비유하는 말이다. 벌의 종류 가운데 나나니벌〔蜾蠃〕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항상 자기 새끼가 아닌 명령을 취해다 기른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명령은 양자를 말한다.
[주-D004] 신극재(申克齋) : 
신익황(申益愰, 1672~1722)을 말한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명중(明仲), 호는 극재로 인동(仁同) 출신이다.
[주-D005] 동락서원(東洛書院) : 
경북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서원이다. 1655년(효종6) 지방유림의 공의로 장현광(張顯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6년(숙종2) ‘동락’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5)에 훼철되었다. 1932년 다시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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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광주남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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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구문화원(2021) 양림 인물 광주남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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