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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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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산동 쌍내마을
    광산구 내산동 쌍내마을 선돌 3기는 쌍내마을 입구의 김종균, 이학봉씨 논을 중심으로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원래는 도로공사 이전에는 4기가 있었다고 한다. 선돌옆에는 마을의 당산나무가 있다. 1호는 상협하관형으로 크기는 높이 124cm, 폭 140cm, 두께 40cm로서 상부는 파괴되어 떨어져 나갔으며 선돌에 대한 주민들의 특별한 치성은 없다. 2호는 3기 가운데 가장 크고 하부는 오목 들어가 줄을 맨 흔적이 있다. 크기는 높이  193cm, 폭 52cm, 두께 48cm로서 전체적인 모양은 사각형에 가깝다. 중심부에는 군데군데 채흔의 흔적이 나있고 측면에는 선돌 주변을 할석으로 부석하여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이곳의 선돌은 마을의 당산제와 연관을 갖는 선돌로 마을 주민들의 치성과 함께 마을의 풍요와 액막이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3호는 2호 선돌에서 북동으로 40여 미터 거리에 위치하며 논뚝과 실개천 사이에 있다. 크기는 높이 140cm, 폭 58cm, 두께 29cm이다.선돌의 형태는 끝이 호형을 이루면서 납작하고 선돌 자체의 석재는 변성암재로 되어있다.
    2020-05-15 | NO.17
  • 대산동 대야마을
    광산구 대야(大也)마을 선돌은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다. 규모는 높이 160cm, 폭 50cm, 두께 40cm이다. 원래 이 선돌은 이곳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김형철씨 논에 있던 것을 주민들이 옮겨다 하부를 시멘트로 견고하게 다진 후 세웠다. 선돌 가까이에는 논과 인접되어 있고 물이 흐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당시 망월마을에서 이 선돌을 몰래 가져가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선돌의 모양은 상협하관의 모습이며 선돌을 조성할 때 마을 주민들이 치성을 다하여 돼지머리와 막걸리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전체적인 선돌의 기능은 물과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원래 위치가 논에 있었기에 물이 마르지 않을 것과 농경의 풍요를 기원했던 선돌로 보인다.
    2020-05-15 | NO.16
  • 덕림동 금동마을
    광산구 덕림동 금동마을 좌우에 1기씩 모두 2기가 있다. 크기는 1호 높이 90cm, 폭 47cm로 상협하관의 형태, 2호는 높이 130cm, 폭 44cm이며 화강암재이다.마을이 생기면서 마을의 수구맥이 액맥이의 기능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1호는 마을 서쪽입구에서 마을의 재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2호는 마을 동편 입구를 지키는 선돌이다.
    2020-05-15 | NO.15
  • 덕림동 학동마을
    광산구 덕림동 학동마을 선돌은 마을 입구와 논어귀 2곳에 위치한다. 2기의 선돌형태는 상협하관형이며 마을 입구의 선돌은 남근형태로 되어있다.  1호 선돌의 규모는 높이 140cm, 폭 40cm, 두께 27cm이며 2호 선돌은 높이 110cm, 폭 37cm, 두께 28cm이다.논 어귀의 선돌은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매끄럽게 다듬어 아담한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대체적으로 한 곳에 2기가 있는 경우 풍요의 기원과 남녀 음양의 상징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
    2020-05-15 | NO.14
  • 본량동 황산마을
    광주 광산구 본량동 황산마을에 입석이 있다.
    2020-05-18 | NO.13
  • 삼도동 동촌마을
    광주 광산구 삼도동촌길 32 (삼도동)광산구 삼도동 동촌마을 선돌은 마을 어귀에 위치해 있다. 선돌의 모양은 상협하관의 형태이며 크기는 높이 145cm, 폭 56cm, 두께 16cm이다. 선돌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특별한 치성은 없으나 개인적으로 정월 대보름날 음식을 가져다 놓고 개인의 기복이나 안녕을 비는 경우는 있다. 삼도동에 분포한 선돌은 신동의 선돌이나 내산동의 선돌과 같이 대부분 납작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주목되며 논 어귀나 마을 입구에 세워지고 있다는 점을 특징적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지점에 위치한 선돌의 기능은 대부분 마을의 액막이, 벽사,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기능을 가진 선돌이 대부분이다.
    2020-05-15 | NO.12
  • 송산동 세동마을
    광주 광산구 송산동 세동마을 오춘수씨 논 어귀에 있는 선돌은 상협하관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돌 하부에는 자연할석을 주변에 배치하여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마을에 따르면 이 선돌은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했다고 전해지며 주민들의 선돌에 대한 특별한 치성은 없었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 솔대와 당산나무가 있었으며 경지정리 이전까지는 4개의 선돌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앞에는 하마비라고 부르는 입석이 원래는 유상룡, 오남근씨 논에 위치해 있으나 현재는 제방 위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500여 미터 제방 위에도 모두 3기의 선돌이 서있다. 선돌의 크기는 ①호 높이 220cm, 폭 55cm, 두께 50cm ②하마비 크기 57cm, 폭 34cm, 두께 15cm ③호 높이 95cm, 폭 54cm, 두께 40cm이다.또한 주변에는 칠송정과 관수정이 있으며 주변의 당산나무에는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주민들이 남북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한 후 당산나무에 줄을 감고 제를 지내는 당산제가 최근에도 행해졌다.
    2020-05-15 | NO.11
  • 송치동 금치마을
    광산구  본량동 금치마을 선돌은 원래 마을앞 논어귀에 있었던 것을 30년전 마을농지정리 때 도로변으로 이전하여 현재 2기가 50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입석 주변에는 본량 중앙교회와 당산나무 우산각이 있고 산수동 선돌과는 약 1km 거리에 있다.1호는 판석형 선돌로서 중심부는 마모에 의해 완만한 구멍이 생겨 있으며 기단부는 땅에 박혀 있다. 외측에는 횡선이 음각되어 있으며 규모는 높이 125cm, 폭 66cm, 두께 25cm이다.2호 선돌은 1호 선돌보다 끝이 뾰족하며 전체적인 모양은  상협하관형으로 되어 있다. 규모는 높이 157cm, 폭 75cm, 두께 30cm이다. 금치마을 선돌의 기능은 물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면서 수구맥이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농경사회에서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2020-05-19 | NO.10
  • 송학동 봉학마을
    광산구 송학동 봉학마을 선돌의 위치는 마을 앞의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박학열씨 논 어귀에 세워져 있다. 이 마을에는 원래 3기의 선돌이 있었으나 경지 정리로 인하여 2기는 매몰되어 사라지고 현재는 1기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크기는 높이 100cm, 폭 40cm, 두께 30cm이다.선돌의 모양은 상부 끝은 뭉퉁하게 되어 마치 남성 성기 모양을 닮았으며, 하부는 깊이 묻혀있는 상태이다. 석질은 화강암재로 되어있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을 '선독'이라 부르며, 농경에 대한 풍요와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원래 바닷물이 들어와 해등(바다등), 황개들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전승민요 가운데는 칠나무 타령 등이 구전되어오고 있으며, 1987년도 전국 민속 경연대회에 출연한 바도 있다. 또한 해방이전에는 마을의 당산제도 시행되었으나 당산나무가 수령이 다되어 고사해 버리고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2020-05-13 | NO.9
  • 신동 서복마을
    광산구 신동 서복마을 선돌은 선사시대 입석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입석의 크기는 132cm, 폭 37cm, 두께 26cm이다. 마을 시멘트 공사 때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선돌 하부를 시멘트로 채웠다. 선돌의 재료는 부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변성암재로 되어있다. 선돌에 대한 주민들의 특별한 치성은 없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 선돌의 기능은 마을의 수호와 풍요를 기원에 있었다.이 입석은 삼도 일대에 분포한 동촌마을 입석, 내산동 쌍계마을 입석, 우치마을 입석처럼 동네 어귀에 세워져 벽사, 액막이, 수구막이, 경계 표시로서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도일대 입석은 모양이 비슷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여타지역의 줄다리기 등의 풍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1840년경 나주에 살던 선령남씨(宣寧南氏)가 이곳으로 이주해 평산신씨와 혼인하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선령남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지형이 호랑이가 포효하는 형국이라 하여 ‘태굴’이라 부르다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서복으로 개칭되었다.
    2020-05-15 | NO.8
  • 신촌동 장암마을
    광산구 신촌동 장암마을과 우산동 신기마을 간 극락강 제방에 선돌(입석)이 있다. 규모나 형태로 보아 선돌이라기 보다는 이정표 표지석으로 보이기도 한다.나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해당되는 곳이어서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0-05-19 | NO.7
  • 용동 기곡마을
    광주 광산구 용동 기곡마을 선돌은 마을앞 당산나무 옆에 위치해 있으며 우산각과 함께 있다.  규모는 높이 117cm, 폭 58cm, 두께 35cm이다. 선돌의 모양은 남근석과 유사하며 아래 부분에는 잡석으로 채워져 있다. 지면에서 보면 토석 혼합의 대를 쌓아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마을에서 행해지는 선돌에  대한 치성은 정월 대보름날 음식물을 놓고 제사를 지내며 선돌 옆에 있는 당산나무와 함께 당산제를 겸하고 있다.선돌 자체에는 동쪽 부위에 채흔의 자국과 가느다란 선각의 흔적이 보이며 선돌에 대한 특별한 명칭은 없다. 선돌 옆에 있는 우산각은 원래 6.25전쟁 때 마을 사람들이 중건하여 현재에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평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그밖에 주변에는 복룡현 관아터가 홍태희씨 집과 논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
    2020-05-15 | NO.6
  • 월남동 녹동마을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 선돌은 지하철 녹동역에서 내리면 마을 입구 오른편 은행나무 옆에 있다. 규모는 크기 126cm, 둘레 98cm로 울퉁불퉁하다. 선돌 주변은 3m 사방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주위에 시멘트로 단을 만들고 가장자리에는 철책으로 난간을 만들어 보호막을 쳐놓았다. 이 선돌은 그 옆에 있는 은행나무와 함께 할머니당산으로 주민들이 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내며 치성을 하였다. 당산제가 끝남 뒤 줄다리기를 한 후 이 입석에 줄을 감아 두기도 하였다. 1970년대 당산제를 지낼 때는 선돌에 음식을 차리고 마을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 등을 기원하였다. 특히 도둑들이 들어와 소를 훔쳐가다가 이 선돌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당산주위를 밤새도록 돌게되고 소의 고삐는 이 선돌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선돌 주위의 마당은 당산제가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의 놀이마당이 된다.
    2020-05-15 | NO.5
  • 지산동 능성마을
    광산구 지산동 능성마을 선돌은 산음마을과 중간 농로 사이에 세워져 있다. 크기는 높이 114cm, 폭 80cm, 두께 30cm이다.다른 선돌에 비해 폭이 넓고 얇게 판석형으로 되어 있다. 전면에는 인공의 흔적이 엿보이며 조잡스러운 선각이 조식되어 있다. 선돌의 중상부에는 직경 15cm의 구멍이 2개 나있으며 이 마을 농로에 물이 유입된 곳에 위치해 있다.
    2020-05-16 | NO.4
  • 지산동 지동마을
    광산구 지산동 지동마을 선돌은 삼도에서 임곡간 도로변의 본량동초등학교 옆 우측 논 어귀에 있다. 크기는 높이 205cm, 폭 63cm, 두께 25cm이다. 모양은 상협하관형이다.하부는 할석과 잡석으로 채워져 있으며 하부는 지면에서  50~60cm 가량 묻혀있다. 이와 같은 경우의 선돌은 대부분 수구맥이의 기능을 가졌던 선돌로 보인다.
    2020-05-15 |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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