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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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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녀바우
    광주시 광산구 선암마을 계곡위에 있는 바위이다.
    2020-05-15 | NO.20
  • 송산동 미륵불
    광주시 광산구 송산동 산2-1 삼도동 송동마을에  송산동松山洞  미륵불彌勒佛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미륵불은 송산동 송동마을을 등지고 왼쪽 소로를 따라 구릉하단에 마을과 300여미터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다.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부칫머리(부처머리)라고 부른다. 미륵불을 모시어 명칭이 유래되었는지, 풍수형국의 비보첵으로 미륵을 모셨는지는 전하지 않는다.한국사지총람에는 석조여래입상, 다른 여러 자료에 송동리 미륵불상으로 설명되어 있다. 미륵불의 형상을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길이83cm,폭42cm,두께 30cm의 화강석에 양각으로 두부와 목·신부(身部)를 조식(彫飾)하였다.두부(頭部)의 방향은 동서방향으로 눈·코·입·귀등이 비교적 상세히 표현되었으나 치졸한 편이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수인(手印)의 표현도 생략되었다. 따라서 홀을 양손에 쥔 전형적인 무덤가의 동자상으로도 해석된다.전체적 윤곽은 얼굴이 둥글고 나발등은 없으며 하부도 생략되어 있고, 높이는 70cm, 어깨폭 42cm, 두부폭 33cm, 목 12cm이다.어느 시기에 본래 자리의  무덤이 훼손되어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측된다. 불상, 문무인석, 동자석, 입석 구분보다는 우리에게 험한 세파에 나투실 미륵불로 여겨진다.또 산구릉에 위치한 미륵불  정면에는 큰 하천이 흐르고 넓은 들판이 전개되어 있다. 따라서 미륵불은 하천의 범람과 재해를 예방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민속신앙의 예배물로 조성한 사례로 판단된다.  
    2020-05-18 | NO.19
  • 송산동 세동마을
    광주 광산구 송산동 세동마을 오춘수씨 논 어귀에 있는 선돌은 상협하관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돌 하부에는 자연할석을 주변에 배치하여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마을에 따르면 이 선돌은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했다고 전해지며 주민들의 선돌에 대한 특별한 치성은 없었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 솔대와 당산나무가 있었으며 경지정리 이전까지는 4개의 선돌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앞에는 하마비라고 부르는 입석이 원래는 유상룡, 오남근씨 논에 위치해 있으나 현재는 제방 위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500여 미터 제방 위에도 모두 3기의 선돌이 서있다. 선돌의 크기는 ①호 높이 220cm, 폭 55cm, 두께 50cm ②하마비 크기 57cm, 폭 34cm, 두께 15cm ③호 높이 95cm, 폭 54cm, 두께 40cm이다.또한 주변에는 칠송정과 관수정이 있으며 주변의 당산나무에는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주민들이 남북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한 후 당산나무에 줄을 감고 제를 지내는 당산제가 최근에도 행해졌다.
    2020-05-15 | NO.18
  • 송치동 금치마을
    광산구  본량동 금치마을 선돌은 원래 마을앞 논어귀에 있었던 것을 30년전 마을농지정리 때 도로변으로 이전하여 현재 2기가 50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입석 주변에는 본량 중앙교회와 당산나무 우산각이 있고 산수동 선돌과는 약 1km 거리에 있다.1호는 판석형 선돌로서 중심부는 마모에 의해 완만한 구멍이 생겨 있으며 기단부는 땅에 박혀 있다. 외측에는 횡선이 음각되어 있으며 규모는 높이 125cm, 폭 66cm, 두께 25cm이다.2호 선돌은 1호 선돌보다 끝이 뾰족하며 전체적인 모양은  상협하관형으로 되어 있다. 규모는 높이 157cm, 폭 75cm, 두께 30cm이다. 금치마을 선돌의 기능은 물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면서 수구맥이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농경사회에서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2020-05-19 | NO.17
  • 송학동 봉학마을
    광산구 송학동 봉학마을 선돌의 위치는 마을 앞의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박학열씨 논 어귀에 세워져 있다. 이 마을에는 원래 3기의 선돌이 있었으나 경지 정리로 인하여 2기는 매몰되어 사라지고 현재는 1기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크기는 높이 100cm, 폭 40cm, 두께 30cm이다.선돌의 모양은 상부 끝은 뭉퉁하게 되어 마치 남성 성기 모양을 닮았으며, 하부는 깊이 묻혀있는 상태이다. 석질은 화강암재로 되어있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을 '선독'이라 부르며, 농경에 대한 풍요와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원래 바닷물이 들어와 해등(바다등), 황개들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전승민요 가운데는 칠나무 타령 등이 구전되어오고 있으며, 1987년도 전국 민속 경연대회에 출연한 바도 있다. 또한 해방이전에는 마을의 당산제도 시행되었으나 당산나무가 수령이 다되어 고사해 버리고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2020-05-13 | NO.16
  • 신동 서복마을
    광산구 신동 서복마을 선돌은 선사시대 입석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입석의 크기는 132cm, 폭 37cm, 두께 26cm이다. 마을 시멘트 공사 때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선돌 하부를 시멘트로 채웠다. 선돌의 재료는 부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변성암재로 되어있다. 선돌에 대한 주민들의 특별한 치성은 없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 선돌의 기능은 마을의 수호와 풍요를 기원에 있었다.이 입석은 삼도 일대에 분포한 동촌마을 입석, 내산동 쌍계마을 입석, 우치마을 입석처럼 동네 어귀에 세워져 벽사, 액막이, 수구막이, 경계 표시로서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도일대 입석은 모양이 비슷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여타지역의 줄다리기 등의 풍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1840년경 나주에 살던 선령남씨(宣寧南氏)가 이곳으로 이주해 평산신씨와 혼인하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선령남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지형이 호랑이가 포효하는 형국이라 하여 ‘태굴’이라 부르다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서복으로 개칭되었다.
    2020-05-15 | NO.15
  • 신촌동 장암마을
    광산구 신촌동 장암마을과 우산동 신기마을 간 극락강 제방에 선돌(입석)이 있다. 규모나 형태로 보아 선돌이라기 보다는 이정표 표지석으로 보이기도 한다.나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해당되는 곳이어서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0-05-19 | NO.14
  • 연화약수비
    광주 광산구 운수동 절골마을(연안차씨마을)에는 연화약수비(蓮花藥水碑)가 있다. 표지석 뒷면에 ‘만수원천 감약수(萬壽源泉 甘藥水·일만살까지 살게 하는 감로약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2020-05-18 | NO.13
  • 용동 기곡마을
    광주 광산구 용동 기곡마을 선돌은 마을앞 당산나무 옆에 위치해 있으며 우산각과 함께 있다.  규모는 높이 117cm, 폭 58cm, 두께 35cm이다. 선돌의 모양은 남근석과 유사하며 아래 부분에는 잡석으로 채워져 있다. 지면에서 보면 토석 혼합의 대를 쌓아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마을에서 행해지는 선돌에  대한 치성은 정월 대보름날 음식물을 놓고 제사를 지내며 선돌 옆에 있는 당산나무와 함께 당산제를 겸하고 있다.선돌 자체에는 동쪽 부위에 채흔의 자국과 가느다란 선각의 흔적이 보이며 선돌에 대한 특별한 명칭은 없다. 선돌 옆에 있는 우산각은 원래 6.25전쟁 때 마을 사람들이 중건하여 현재에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평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그밖에 주변에는 복룡현 관아터가 홍태희씨 집과 논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
    2020-05-15 | NO.12
  • 운림동 돌벅수
    운림동 돌벅수는 광주시내 유일의 돌벅수 한쌍으로 원래는 성촌마을 앞에 있었으나 1981년에 이곳에서 1km 떨어진 학운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놓았다가 다시 성촌마을 입구로 옮겼다.마을에서는 돌벅수를 할아버지벅수, 할머니벅수로 불렀으며 마을앞에 있었을 때에는 도둑이 마을에 들어와 물건을 훔쳐 달아나다가 밤새 벅수 주변만 맴돌다가 주인에게 잡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곳 돌벅수는 액맥이 기능을 지녔고 해방 이전까지는 마을앞에서 당제(별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할아버지벅수는 얼굴에는 수염이 표시되어 있고 석인상과 같이 머리에는 유건과 같은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양손은 몸앞에서 맞잡고 있으나 손가락의 표현 등 세부기법은 둔탁한 느낌을 주고 있다.이 석장승에 대한 신앙 사항은 이 마을 동제가 행해졌던 한국전쟁 이전에는 마을의 제4 당산이었으며 농악을 치면서 마을의 수호와 무병을 기원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 못난 사람이 이곳 장승에게 치성을 드리거나 그 옆에 성황당이 함께 자리하여 길가는 이들이 이곳에 돌을 던져 쌓아 다리 아픔을 잊게 했다고 한다. 동제가 없어진 이후에는 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2020-05-19 | NO.11
  • 원효사 조탑(돌탑)
    원효사 조탑은 북구 금곡동 무등로 1514-35번지 원효사  입구에 2기가 있다. 원효사에서 무등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1기가 있다. 2기의 조탑 중 1기는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오르면 돌탑과 부도군이 보인다. 아래는 흐트러지게 쌓았으나 올라갈수록 매끄럽게 처리되어 사찰에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1기는 평소 원효사의 방문객이나 무등산 등산객들이 하나둘씩 돌을 올려놓고 마음속의 소원을 기원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진 것으로 보인다.조탑 정상에는 별도의 선돌은 올려져 있지 않으나 마감돌을 이용하여 상부를 처리하였다. 규모는 높이 350cm, 둘레 780cm, 폭 360cm 크기에 자연석을 20단 정도로 쌓아올렸다.
    2020-05-19 | NO.10
  • 월남동 녹동마을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 선돌은 지하철 녹동역에서 내리면 마을 입구 오른편 은행나무 옆에 있다. 규모는 크기 126cm, 둘레 98cm로 울퉁불퉁하다. 선돌 주변은 3m 사방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주위에 시멘트로 단을 만들고 가장자리에는 철책으로 난간을 만들어 보호막을 쳐놓았다. 이 선돌은 그 옆에 있는 은행나무와 함께 할머니당산으로 주민들이 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내며 치성을 하였다. 당산제가 끝남 뒤 줄다리기를 한 후 이 입석에 줄을 감아 두기도 하였다. 1970년대 당산제를 지낼 때는 선돌에 음식을 차리고 마을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 등을 기원하였다. 특히 도둑들이 들어와 소를 훔쳐가다가 이 선돌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당산주위를 밤새도록 돌게되고 소의 고삐는 이 선돌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선돌 주위의 마당은 당산제가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의 놀이마당이 된다.
    2020-05-15 | NO.9
  • 장등동 수곡 석장승
    석장승의 위치는 북구 장등동 171-1번지 수곡마을 버스정류장에 해당 된다.이 석장승은 수곡마을 맞은편 용강마을로 들어가는 버스정류장 길목에 2기가 동서 2m 간격으로 나란히 위치해있는데 서쪽의 담양 대전면 대치를 등지고 수곡마을 안쪽을 향해 서 있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석장승들은 사대부 가문의 묘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나 수곡마을의 석장승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좌측에 위치한 석인상은 입술은 꼭 다물고 근엄한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사모관대를 쓴 고위직 문관으로 보인다. 또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마치 중읍례 자세를 하고 홀대를 턱높이까지 들고 있으며 얼굴과 몸이 균형을 이루는 전형적인 문인석으로 보인다. 우측에 위치한 석장승은 얼굴에 비해 눈이 약간 크고 코와 입은 잘 조화롭게 조각되어 있다. 이 석장승 역시 문인석으로 홀을 휴대하고 있는 것은 공통적이나 우측 장승과 달리 조선시대 중인들이 썼던 탕건과 유사한 모자를 쓰고 있어 좌측 장승보다 신분이 약간 낮은 석장승으로 표현하고 있다. 풍수적으로는 이러한 문인석이 외부로부터 오는 재액災厄이나 사귀邪鬼를 막는 의미보다는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이 마을의 기운을 담아 둔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뜻에서 이런 배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 석상들은 액막이보다는 수구막이의 의미가 더욱 중시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은 '금반옥호金盤玉壺, 옥녀가 소반을 앞에 두고 있는 형상'의 명당을 이루는 기운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문인석 뒤편에 '수곡영모계기적비'가 함께 있어 북구지역 뿐만 아니라 광주광역시 전체에서 위친계기적비가 있는 곳은 이곳과 용전동을 제외하고는 그 사례가 드물고 석장승 역시 도로변에 일괄로 있어 지역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2020-05-19 | NO.8
  • 지산동 능성마을
    광산구 지산동 능성마을 선돌은 산음마을과 중간 농로 사이에 세워져 있다. 크기는 높이 114cm, 폭 80cm, 두께 30cm이다.다른 선돌에 비해 폭이 넓고 얇게 판석형으로 되어 있다. 전면에는 인공의 흔적이 엿보이며 조잡스러운 선각이 조식되어 있다. 선돌의 중상부에는 직경 15cm의 구멍이 2개 나있으며 이 마을 농로에 물이 유입된 곳에 위치해 있다.
    2020-05-16 | NO.7
  • 지산동 지동마을
    광산구 지산동 지동마을 선돌은 삼도에서 임곡간 도로변의 본량동초등학교 옆 우측 논 어귀에 있다. 크기는 높이 205cm, 폭 63cm, 두께 25cm이다. 모양은 상협하관형이다.하부는 할석과 잡석으로 채워져 있으며 하부는 지면에서  50~60cm 가량 묻혀있다. 이와 같은 경우의 선돌은 대부분 수구맥이의 기능을 가졌던 선돌로 보인다.
    2020-05-15 | NO.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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