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최후 의병장이자 조선의병 총수인 김덕령(1568∼1596)의 자는 경수(景樹)로 광산이다. 양녕대군의 장인인 한로(漢老)의 12세손이며 1470년 무렵 광주 서구 금호동에서 충효마을(당시, 석저촌)로 터를 옮긴 문손(文孫)은 그의 고조부이다. 1568년 12월 29일 붕변(鵬變)과 남평 반씨 3남 3녀 중 둘째아들로 석저촌(石底村)
김덕홍(1558∼1592)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증조부는 김후(金珝), 조부는 김극효(金克孝)이다. 부친은 습독(習讀) 김붕변(金鵬變)이다. 동생은 김덕령(金德齡), 김덕보(金德普)이다.김덕홍의 호는 성암(省菴)으로 아우 김덕령과 매형 김응회와 함께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김덕령과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452(광곡길 133)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전기 기대승을 추모하기 위해 1578년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로 호남정신문화의 산실로 일컫고 있다. 기대승(奇大升), 박상(朴祥), 박순(朴淳),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등 조선 명신들을 배향하고 있다.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
회재로는 전남 나주시 남평읍에서 지석천을 건너 서창방면 좌측 도로에서 바로 시작해 광주광역시 남구 독립로까지 이어진 15.534km 연장의 꽤 긴 도로다. 또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또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옛 광이리에서 1번지를 시작하는 회재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먼저 하얗게 무리지어 늘어
광주시의 광주다움이 묻어나는 문화정책은 무엇일까. 최근 광주시는 광주가 문화적으로 디자인되고 문화가 시민들의 일상이 되는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2020년 문화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정책의 주요 책임자는 문화경제부시장이다. *2020광주비엔날레 GB토크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파트 2
"호남의 정신은 실사구시의 사림정신과 향약으로 다져진 올바른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13일 조선대 지역인문학센터 주최, 광주 서구문화원 주관으로 서구문화원 강의실에서 가진 ‘도로에 새겨진 호남 사림의 정신: 필문 이선제와 눌재 박상’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밝혔다.이 원장
광산구 본량본촌길 29 동호사는 1956년 이 고장 유림들의 발의로 조선 개국공신인 정안 청성백 심덕부(沈德符, 1328~1401)를 비롯하여 인수부윤 심징(沈澄), 관찰사 망세정忘世亭 심선璿, 기묘명현 묵헌 심풍灃, 선무원종공신 김해부사 삼암三巖 심광헌光憲, 심용 등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우로 매년 2월 2
그때 회재 박광옥(朴光玉) 선생은 20여 년간의 관직에서 물러나 광주 집에 돌아와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파죽지세로 쳐들어오는 왜군에 경상도 상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회재는 수레를 타고 달려가 광주목사 정윤우를 급히 만나 전라도 순찰사 이광에게 어서 가서 왜군을 막기 위해 북쪽 요새지 길목
5‧18 민중항쟁 행사를 앞둔 가운데 5‧18사적지나 사적지 표식 주변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변 정리가 시급한 실정이다.광주서구문화원이 지난 4일 5‧18 39주년을 맞아 시민을 대상으로 <서구 義 길> 1차 답사프로그램을 통해 40여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서구의 주요 관련 사적지를 답사했다.
설날 전후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다녀갔다. “예전 그대로인데!”, “와, 많이 바뀌었네.”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광주 서구 서창동을 다녀간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마을에 따라 바뀐 모습의 양상이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극락’이다.우리나라에서 ‘극락’이라는 지
광주시 광산구 광곡길 133 너브실마을월봉서원 연혁과 고봉 기대승 선생의 행장 등을 기록한 묘정비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을 기리는 월봉서원은 고봉 사후 7년만인 1578(선조 11)년 호남유생들의 공의로 지은 신룡동의 망천사(望川祠)로부터 비롯되었다.그 후 정유재란의 화로 피해를 입고 월봉산 아래
광주시 광산구 1885년瑞山柳氏鍾城府使雪江公諱泗 설강유사선생묘갈명은 덕은 송병선이 짓다.유사柳泗(1503~1571)는
조선중기의 문신, 본관은 서산이며 자는 중연(仲沿), 호는 설강(雪江)이다. 남구 유등곡柳等谷(현 이장동
양과동) 출신으로 봉훈랑(奉訓郞, 문관 또는 종친에게 준 종 5품 벼슬) 경흥교수(慶興敎
광주시 광산구 용아로 460(경장각)유애서원은 광산구 흑석사거리 부근에 1754년 시정 유애사로 건립되어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2005년 유애서원으로 복원하여 성균관에 등록하였다. 광주 유림들의 주관으로 매년 (음)2월 20일 문정공 석탄 이신의 선생의 춘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1551~16
광주시 광산구 진곡동 진곡마을1935년이 진천사유허비(眞泉詞遺墟碑)는 김동수가 찬했다.진천사
유허비는 진곡동 진곡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사우는
임진왜란(1592)때
소실되었고 현재 당시의 구비 2기와
새로이 대리석으로 개각된 비각이 단장되어 있다.
유허비의
초건 시기는 숭정기원후 을해(1635)에
광주시 북구 생용동 136-1(생용마을 앞)1962년광주시 북구 훼미리랜드 앞에는 범씨들의 자가촌 생룡부락이 있다. 마을 깊숙한 314번지 구릉에는 용호사와 복룡사유허비각(伏龍祠遺墟碑閣)과 입구에는 죽천범선생순의숭모비(竹川范先生殉義崇慕碑)가 있다. 이 비는 李丙燾 짓고 金忠
광주시 북구 본촌동 378-1(동주민센터 앞)1961년이 통훈대부희천군수의암김공충의비(通訓大夫熙川郡守義菴金公忠義碑)는 金珍鉉이짓고 金容仁(전면) 李玟秀(후면)이 썼다.이 충의비는 1961년 광산김씨 문중에서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힘쓴 희천군수 김기명(金基命, 1540~1593) 장군의 숭고한 충절을 높이 기리기
광주시 북구 송강로 13(금곡동)2004년증 좌찬성 충장 김공 신도비(贈 左贊成 忠壯 金公 神道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우리 선조(宣祖)께서 국운을 어루만지신 지 20여 년 만에 섬나라 왜적이 크게 방자하여 우리 8도의 백성(生靈)들을 짓밟자, 당시의 의사들이 갑옷 입은 말을 타고서 칼날과 살촉을 뚫고 중흥의 공적을 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