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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37건)

'광주정신'과 '광주다움'
이용섭 광주시장이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문제와 관련하여 ‘광주답게’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보도를 접한 일이 있다. 광주의 모든 행정과 건축, 시설을 설치할 때 ‘광주답게’하자는 의도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광주답게’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선행요건으로 ‘광주정신’
석서정
지난 2006년 광주천 정화사업을 벌이면서 옛 정자 중 하나인 석서정을 복원했다.석서정은 1800년경에 편찬된 광주읍지에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다고 한 기록으로 보아 정조 연간 이전에 사라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석서정 터는 신증동국여지승람(1481) 광산현 고적조에 현 남쪽 2리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정자가 많던
정인서 문화비평 3, 문화도시 광주, 길을 묻고 답을 구했는가
문화도시 광주, 길을 묻고 답을 구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번이 네 번째 행사다. 지난해 7월 두 차례 가진 이후 12월에 세 번째 행사를 치렀다. 그 내용에 기대가 컸다. 우선 광주지역 청년문화활동가인 정두용 대표와 광주시의 박향 문화관광체육실장이 발표하는 자리이니 요즘 트렌드인 청년예술인 문제와 민선7기의 광주시
송태만-용은 홍주송공태만 효행비
광주시 남구 대촌동 상신마을1996년 4월용은홍주송공태만효행비는 상신마을 뒤 내동마을로 가는 길가에 있다. 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효도는 강상의 으뜸이요 백행의 근원으로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행해야 할 본분으로 알면서도 언행이 일치해서 세인으로부터 효자라고 칭송받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므로 한 가문에
효열부풍산홍씨실적비
광주시 남구 원산동 961-81956년 이 효열부풍산홍씨실적비(孝烈婦豐山洪氏實蹟碑)는 황산사 아래쪽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김해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비석이다. 주변은 대리석의 돌기둥을 세워 돌담장을 둘러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효열부 풍산홍씨 실적비는 아들인 김선진행적비와 같이 원산마을 황산사 바로 밑 도로
정지장군유적정화기념비
광주시 북구 경렬사길 46(망월동) 경열사1981년경열사 경내에는 이병도(李丙燾)가 짓고 안규동이 쓴 ‘정지장군유적정화기념비’(1981년 7월 1일 건립)가 있다.
포충사묘정비
광주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 포충사 內원래 포충사는 이 자리였으나 1980년 동쪽에 새롭게 포충사를 지으면서 사당 기능을 그곳으로 넘겨주었다.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인 포충사(褒忠祠)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 1533~1592) · 종후(從厚, 1554~1593) · 인후(因厚,
전상의-충민공 전상의 신도비
광주시 북구 무등로 1050 충민사 內(화암동)1972년전상의신도비(全尙毅神道碑)는 충민사에 있다. 구성부사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시충민 전공 신도비(龜城府使 贈資憲大夫 兵曹判書 諡忠愍 全公 神道碑)라 한다.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627(정묘)년에 건노(建虜, 후금국)가 반적(反賊) 강홍립(姜弘立)을 앞세워 쳐들어올
문틈, 산세비에리아 살리기
작년에 하도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기에 화분 몇 그루를 구해 집안에 들여 놓았다. 벵골 고무나무, 산세비에리아, 등등. 이것들이 미세먼지를 정화시켜 준다는 신문기사들을 보고서다. 그런데 식물마다 다 식생이 다르다. 산세비에리아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물을 조금 주어야 한다고 화원 주인이 말했다. 내 생각에
정화 군수와 보성보
보성보寶城洑는 옛날에 보성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 군수가 지금의 광주 화정동 일대에 만들어놓은 보를 말하지요. 서구 화정2동 광주은행 화정지점 옆 자리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조그만 수문이 있었습니다. 이곳을 가로질러 보성보라 불리는 일종의 방죽이 있어 인근에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풍암호수
서구 풍암동 432풍암楓岩호수는 1956년 농업용 목적으로 축조했다. 면적은 244,587㎡이고 저수량은 30만 톤이다. 1999년 국토공원화사업의 일환으로 수변생태공원을 조성하였고 풍암지구가 대거 조성되면서 금당산이나 중앙공원과 함께 시민들의 건강을 다지는 공간이자 휴식처가 되고 있다. 도심 속 호수가 대개는 각종 건
돌고개
서구 경열로(양동.농성동)돌고개는 서구와 남구의 경계에 놓여있다. 월산동과 농성동, 그리고 양동의 경계에 자리한 돌고개는 지금은 그저 그만한 곳이 됐지만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고개로 기능했다.고개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일정높이를 담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그렇지 않더라면 굳이 고개라 했을리 만무
전통문화관, 춘향가를 판소리와 한국무용으로
판소리 춘향가를 바탕으로 한 판소리와 한국무용이 어우러진 창작무대가 펼쳐진다.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 토요상설공연은 5월 26일(토) 오후 3시 서석당에서 ‘나빌레라국악예술단’(대표 박진표)을 초청해 ‘舞, 춘향 歌, 천하’ 무대를 선보인다. 이날 공연은 춘향이 이몽룡을 처음 만나던 날부터 이별과 시련을 겪고 다시
화담사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화담사花潭祠는 하동 정씨 사당이다. 문절공 정수충鄭守忠(1401∼1469)에 대한 집을 지어 영정을 모시라는 왕의 교시가 내려졌고, 1478년 보성군수를 지낸 정화鄭和(1434∼1505)가 군분으로 이사,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을 만들면서 출발한다. 화담사를 중심으로 하동 정씨 집성촌이
화담사/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8호(1993. 3. 20.)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광주지하철 화정역 4번 출구로 나와 하동정씨 추선회관 쪽으로 내려오다 왼쪽 골목으로 꺾어 조금 걸어 들어가면 도심과는 낯선 풍경 하나가 펼쳐진다.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과 아파트를 담벼락과 병풍 삼아 자리하고 있는 화담사花潭祠가 그곳으로, 하동 정씨 사당이다. 1776년(영조5
서구의 동(주민센터) 유래와 연혁
광천동 광천동의 유래와 연혁광천동은 일제 때의 광천정光川町을 1947년부터 고쳐 부른 이름이다. 엣날에는 광주천가에 새로 방죽을 쌓았다고 해서 새방천 혹은 신방천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후기 기록인 『여지도서』 및 『호구총수』에 따르면, 현 광천동 지역은 광주목 군분면軍盆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광주를 이끌어온 광주의 중심
서구의 이름과 연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으로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남부·서부·지산출장소를 통합하여 45개 동으로 구성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가 신설되었다. 남부출장소의 사·구·양·월산·농성·백운 등 14개 동, 서부출장소의 유·누문·북·임·상무 등 15개 동, 지산출장소의 본촌·우치·삼소 등 16개 동을 합해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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