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집(寒岡集)》 속집 제7권 / 서(書)이자진(李子眞) 순(淳) 에게 답함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 삼가 추운 겨울 날씨 속에 체후가 두루 평안하심을 알고 나니, 감격스럽고 기쁜 마음을 무어라 형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혈(瘀血)로 인한 통증이 심하고 피고름이 계속 흘러나오는 가운데 오랫동안 신음하고 있을 뿐,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용력에 관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광주광역시 충효동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실존인물로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김덕령이 열다섯 살 때에 글공부를 위해서 서봉사에 갔다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이 임진왜란을 대비해서 무기를 만들고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장소와 관련한 지명에 관한 이야기.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무등산 원효계곡 상류의 주검동(鑄劍洞)에 대장간을 세우고 칼과 창을 만들어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는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종방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과 사검에 관한 이야기.「김덕령과 사검」은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하늘에서 내려준 사검(蛇劍)을 받은 이야기이다. 2018년 1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종방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김봉희[남, 71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관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 입암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 장군의 누나에 관한 이야기. 「김덕령 누나가 세운 바위들」은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누나가 세운 바위에 관한 지명설화이다.2018년 1월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 입암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김용례[여, 79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한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조선 중기 선조 때의 공신 정충신의 비범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조선 후기 인조(仁祖)[재위 1623~1649] 때의 공신인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어린 시절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은 당시 광주목사이던 권율 장군과 관련되어 있다. 1981년에 광산군지편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영정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풍영정(風詠亭) 이름의 유래와 현판 글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풍영정 현판의 글씨체가 다른 이유와 임진왜란 때 불에 탈 뻔하였으나 현판 글씨가 오리로 변해서 화재를 막았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
광주광역시에서 옛날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서사 구조를 지닌 이야기. 1. 설화의 정의 설화는 입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입으로 전해 오는 모든 이야기가 설화는 아니다. 일상의 신변잡기, 역사적 사실이나 현재적 사실을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설화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설화는
광주 목사 죽음 영공이 경양의 방죽에서 고기 잡는 것을 보고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차운하다〔光牧竹陰令公觀漁景陽坊築有詩 次韻〕비단 나무 서리에 잎이 지는데 / 錦樹經霜葉脫枝성 서쪽의 더딘 모임을 한하네 / 城西此會恨差遲촌에 일 없고 정무에 짬 많으니 / 村居無事政多暇태수가 출유해도 백성은 모르네 / 太守出遊
광주의 중심 서구에는 광주정신의 뿌리가 되는 눌재 박상 선생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삽봉 김세근, 회재 박광옥 등 많은 선혈등의 의로운 마음이 담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당산에는 김덕령 장군과 옥녀의 사랑이야기도 있고, 매월동에는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은 주역각시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오고 있습니
동명집 제8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61수금포가〔錦袍歌〕그댄 보지 못하였나 / 君不見금남군 정 절도사를 / 錦南鄭節度그댄 보지 못하였나 / 君不見함릉군 이 사군을 / 咸陵李使君이 두 영웅 발해 바다 동쪽에서 태어나서 / 兩雄挺生渤海左삼한 사직 곤륜산과 같이 안정되게 했네 / 三韓社稷安崑崙장안에선 선비들 다 이 두
전라도(全羅道) 창의통문(倡義通文)가경(嘉慶 청 인종(淸仁宗)의 연호) 임신년(1812, 순조 12) 봄에 패서(浿西 평안도(平安道))의 토적(土賊) 홍경래(洪景來)ㆍ이희저(李禧著) 등이 정주(定州)를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관군이 이를 포위하여 3개월 동안 이기지 못하였다. 이때 내가 다산(茶山)에 있으면서 일도(一道)
대동야승-난중잡록1 ; 조경남(趙慶男)임진년 상 만력 20년, 선조 25년(1592년) 5월14일. 전라 감사 이광(李洸)이 또 근왕병 도합 10여 만을 동원하여 전주(全州)에 주둔하였는데 군량을 수송하는 자가 갑절로 늘어나다.○ 군사를 징발하는 교지가 있었다. 당초에 조정이 송도(松都)에 머무르고 있을 때 호남과 영남에 교지를
월봉서원(月峯書院) 묘정비명(廟庭碑銘) 병서 - 고봉전서(高峯全書) 보유 최근덕(崔根德)조선조 명종ㆍ선조 연간에 문운(文運)이 빈빈(彬彬)하고 사류(士類)가 성(盛)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전대(前代)에 겪은 사화(士禍)의 남은 불씨가 아직도 척신(戚臣)과 간인(奸人) 사이에 남아 있어서 은밀히 선비를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논(論)을 씀1. 머리말이 책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문집과 저술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4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고봉집(高峯集)》은 198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하여 펴낸 바 있다. 1970년에 간행된 석인본을 대본으로 한 기왕의 국역서
신광필(申光弼)호남에서 인걸이 태어났으니 / 湖海生人傑사문 책임 진실로 그에 있었네 / 斯文儘在玆사우로 말미암아 얻지 않았고 / 不由師友得혼자 힘으로 성현을 기약하였네 / 獨與聖賢期등용함과 물리침은 내 일 아니고 / 用舍非吾事염량세태 이러한 때 어찌하리오 / 炎凉奈此時반생 동안 하많은 한일랑 / 半生多少恨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