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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부사 이공 묘갈명 병서〔密陽府使李公墓碣銘 幷序〕 - 이유달

동주집 문집 제9권 / 묘갈명(墓碣銘)- 밀양 부사 이공 묘갈명 병서〔密陽府使李公墓碣銘 幷序〕


이유달(李惟達) 공의 자는 겸선(兼善)이다. 나와 함께 임자년(1612, 광해군4)에 과거에 급제하여 평소 서로 흠모하며 매우 즐겁게 지냈다. 일찍이 밀양 부사(密陽府使)가 되었는데, 성종(成宗)을 섬기면서 직언(直言)을 잘했고 연산군 때에 억울하게 죽은 헌납(獻納) 박한주(朴漢柱)가 본래 밀양 사람이었다. 공이 부임한 뒤에, 서신으로 나의 글을 요청해 박한주가 살던 마을을 표시함으로써 무너진 풍속을 진작시키려고 하였다. 대개 공의 생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좋은 글을 나에게 맡길 만하다고 잘못 여겼던 것인데, 나는 그 후의에 매우 부끄러워 글은 완성하였으나 돌에 새겨 넣지 못하였다.

그런데 공이 이듬해 숭정(崇禎) 을해년(1635, 인조13)에 병으로 운명하니, 향년 겨우 57세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공의 아들이 행장(行狀)을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묘갈명(墓碣銘)을 요청하며 말하기를 “이것이 아니면 제 선친(先親)을 영원히 전할 수 없습니다. 또 선생께서 그 남은 자손을 감싸 주고 돕는 것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아아, 이 말은 곧 공의 뜻이었을 것이다.

공은 지극한 성품을 소유하여 단정하고 성실하였으니, 사귀기는 쉬웠으나 허물없이 가까워지기는 어려웠다. 평소 일찍이 크게 소리치거나 성난 낯빛을 보이지 않았으며, 지나치게 겸손하여 의관조차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을 만나면 스스로 주도하여 능히 그 정도를 잃지 않았다. 벗들과 어울리는 곳에서 오래 있어도 더욱 엄격하였으니, 일찍이 고결한 체 꾸며서 남들과 영합하기를 구하지 않았다.

집안에서의 행실이 잘 갖추어져서, 계모 황씨(黃氏)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며 백발이 되도록 한결같았다. 맛난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가지고 돌아가서 올렸으며, 일찍이 계모의 뜻을 미리 헤아려 기쁘게 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므로, 황씨가 편안히 여겼다. 제사가 돌아오면 제물을 갖추고 공경을 다하여 몸소 제수 준비를 살폈는데, 일찍이 풍성하면서도 깨끗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족형(族兄) 유종(惟宗)과 한집에서 10년을 같이 살며 의복과 음식을 서로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종들이 일찍이 흠잡는 말을 하지 않았다. 관직을 맡아서는 청렴하고 결백하며 삼가고 부지런하였을 뿐 명예를 취하지 않았다. 고을살이할 때마다 번번이 기록할 만한 공적이 있었으므로 여러 번 임금의 칭찬을 받았고, 임지를 떠난 뒤에는 일찍이 백성들의 사모함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은 젊어서 사부(詞賦)를 공부하여 향시(鄕試)에서 장원하였고, 병오년(1606, 선조39)에 성균관에 들어갔다. 과거에 급제한 뒤에는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에 뽑히고 시강원 설서(侍講院說書)와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를 역임하였는데, 어떤 일로 인하여 권세 있는 관리에게 밉보여 해미 현감(海美縣監)이 되었다. 내직으로 들어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병조 좌랑(兵曹佐郞)이 되었다.

계해년(1623, 인조 원년)에 인조(仁祖)께서 즉위하시자, 어사(御史)에 충원되어 호남에 선유(宣諭)하였다. 그 뒤로 조정에서 13년 동안 벼슬하면서, 제조(諸曹)의 경우 예조(禮曹)와 병조(兵曹)의 정랑(正郞)을, 사유(師儒 성균관)의 경우 직강(直講)과 사예(司藝)를, 각사(各司)의 경우 제용감(濟用監)ㆍ예빈시(禮賓寺)ㆍ군자감(軍資監)ㆍ군기시(軍器寺)ㆍ종부시(宗簿寺)ㆍ사도시(司䆃寺)의 정(正)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경우 사서(司書)ㆍ문학(文學)ㆍ필선(弼善)을, 사헌부(司憲府)의 경우 지평(持平)ㆍ장령(掌令)ㆍ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겸관(兼官)은 지제교(知製敎)와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이었다. 외직(外職)의 경우 경기 도사(京畿都事), 광주 목사(光州牧使), 밀양 부사(密陽府使)를 지냈으니, 이상이 공의 이력이다.

처음 성종(成宗) 강정대왕(康靖大王)에게 지자(支子) 휘(諱) 수(????)가 있었는데, 작호(爵號)는 완원군(完原君), 시호(諡號)는 소도공(昭悼公)이다. 이성군(伊城君) 휘 수강(壽剛)과 의원군(義原君) 휘 억(億)과 신흥 군수(莘興郡守) 휘 몽윤(夢尹)으로 전해졌다. 충의위(忠義衛) 휘 찬(璨)에 이르러 밀양 박씨(密陽朴氏) 사의(司議) 효원(效元)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니, 이분들이 공의 선고(先考)와 선비(先妣)이다.

공의 부인 숙부인(淑夫人) 진천 송씨(鎭川宋氏)는 출가 전에도 출가 후에도 공손하고 또한 온화하였으며, 공보다 앞서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운명하였다. 아들은 담(????)이며, 두 딸은 관찰사(觀察使) 윤명은(尹鳴殷)과 사인(士人) 김경주(金慶胄)에게 출가하였다.

공은 너그럽고 온화하며 순수하고 독실하였다. 안으로 기량을 지녔지만 밖으로 드러내어 꾸미고 과장하는 행실이 없었는데, 나이와 지위가 그 덕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식자(識者)들이 천도(天道)를 의심하였다. 오직 공의 아들 담(????)이 삼가고 조심하며 그 가문을 이어가고 또 자손이 끊이지 않았으니, 아마도 이른바 천도가 여기에 있는 것인가.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질박하면 저속하고 / 質則近俚

꾸미면 방자해지니 / 或文而肆

휩쓸리는 것과 오기 부리는 것은 / 惟隨與敖

둘 다 같은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지 / 弊一于二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 / 溫溫恭人

뽐내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아 / 不矜不盈

말할 때는 어눌한 것처럼 했고 / 出言若吶

종요로움을 잡아 바름에 거하였네 / 操約居貞

처음에 외로운 몸 떨쳐 일으켜 / 始奮孤身

바른 자취 물들여 / 漸厥矩武

조정에 모범 되니 / 儀于朝署

그 위의 드날렸네 / 有翽其羽

심은 덕 도타우니 / 有樹其惇

높은 지위 올라 끝내 명예롭게 되어야 하는데 / 歷敭終譽

어찌 장수도 누리지 못하고 / 胡不臷茂

지위는 대부에 그치고 말았던가 / 而止大夫

저 둥근 무덤에 / 彼睪之丘

이 빗돌 세우니 / 有揭斯石

내가 내 글을 새겨 / 我銘我辭

삼가 그 무덤 표시하노라 / 式表窀穸

[주-D001] 박한주(朴漢柱) : 

1459~1504.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천지(天支), 호는 우졸재(迂拙齋)이다.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 때 평안북도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고,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였다.

[주-D002] 조정에 …… 드날렸네 : 

이유달이 조정 관리로서 모범적인 인물이었다는 말이다. 《시경》 〈권아(卷阿)〉에 “봉황이 나니, 그 깃이 퍼덕인다.[鳳凰于飛, 翽翽其羽.]”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이유달의 아름다운 위의를 표현한 말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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