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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알려드리는 다양한 전시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 전남의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소식과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곽인식(1919~1988) In Dialog, 소통의 여러 방식
강릉 솔올미술관, 사후에 주목받는 작가

유리가 깨졌나? 호기심이 든다. 유리가 깨진 것 같으면서 바탕을 철핀으로 마구 긁어놓은 듯 하다(작품 63-G, 1963). 도기도 깨졌는데? 너무 불에 구워서 가운데가 벌어진 것 같기도 한데 깨지지는 않았네(무제 1981, 1981). 아니 이것은 동판이 어디에 부딪혀 가운데가 찢어졌던 것인가?(작품 65-5-1, 1965).


작가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을 강조한 작품의 과정에 연출이 들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곽인식의 작품은 일상적 평면의 캔버스 회화가 아니라 유리 조각, , 나무, 동판, 점토 등 다양한 물질을 화면에 부착하거나 깨거나 찢는 등의 조형적 구성을 해왔다. 주변 사물의 물성을 탐구해 이를 미술로 적용시킨 물성 탐구의 선구자로 불린다.

1919년 경북에서 태어난 곽인식은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니혼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에서 수학하였고, 서구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경험하는 등 일본에 정착한 재일 한국인 화가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폰타나의 공간주의 등 서구 미술의 주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탐구했다.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미술언어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감행했다. 1954년 요미우리[讀賣] 앙데팡당전 출품, 1957신 에콜드 도쿄창립 회원, 1965년 일본국제미술전(도쿄비엔날레)에 초대 출품 등의 활약을 보였다.

1960년대 초 노랑, 빨강 등 원색의 물감과 석고로 이루어진 모노크롬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원색 물감에 석고를 쌓아 텁텁한 질감을 표현한 시리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불린다. 그 이후 국내에서도 이러한 표현기법을 답습한 작가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일상적 오브제인 철사, 바둑알, 유리병, 전구 등을 부착하는 등 사물화의 과정을 거쳤다. 재료의 물질성에 집중한 곽인식은 화면에 변형을 가하거나 돌이나 유리, 철판 등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창작했다.

이런 방식을 일본에서는 모노파(物派)’, 또는 물상파(物象派)’라는 이름으로 1960년대 이후 각광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사물의 말을 듣는다라는 표현처럼 재료 자체에 수행적 행위를 가하며 고유한 감각으로 물성을 깊이 탐구했다.

 

이 시기에 그의 독보적인 작품은 바로 유리깨기이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신주쿠에 고층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새로운 건축자재인 대형유리판이 건물 전면에 보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당시로는 보기 드문 큰 빌딩의 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유리의 투명성에 매료됐다. 그는 너무 커서 눈에 다 들어오지 않기에 크면 클수록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희한한 존재인 유리를 깨뜨리고 붙인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했다. 유리 크기만큼 땅을 파서 그 위에 유리를 놓고 쇠구슬을 떨어뜨려 깨뜨린 다음, 캔버스 위에 깨진 조각을 조심스럽게 다시 붙였다.

이처럼 깨뜨린 유리를 붙여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제시했다. 나중에는 유리작업으로 단색조의 작품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평면 동판을 구부리고 구멍을 내고 칼자국을 내고 자른 부위를 동철사로 꿰매는 행위를 통해 봉합한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 시기는 국내에서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정치적 대립이 극심했던 상황에 대해 물질의 균열과 봉합을 통해 상처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전통적인 일본 종이 화지(和紙), 작은 타원형의 맑고 투명한 일정한 색상 이미지를 통해 동양적 신비감의 평면 회화를 선보였다. 붓으로 종이에 무수히 많은 타원형 색점을 찍는 과정에서 점 위에 점을 겹쳐 찍음으로써, 앞의 점과 뒤의 점의 차이로 인한 공간감을 보여주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딘가 무릉도원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 스스로 그동안의 고달픈 수행의 작업과정을 집어던지고 마음을 내려놓은 심적 상황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강릉 솔올미술관 전시에서는 ‘In Dialog’ 프로젝트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곽인식의 이러한 작품들이 망라하여 소개됐다. 일본 내에서만 10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재일 한국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63년 재일한국미술가연합회는 이사장에 곽인식, 회원으로 곽덕준과 이우환 등이 있었다. 이처럼 곽덕준, 이우환, 김구림, 하야시 요시후미(林芳史) 등 일본의 한국계 작가들과는 물론 국내의 미술계와도 연대를 계속 맺고 있었다. 한국 작가들이 일본으로 와서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거나 편지 등을 통해서 지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1971년 박서보와 1976년 김창열의 편지가 유품에 남아 있다.

곽인식은 한때 과거 조총련계 활동으로 인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한국 방문을 주저했었다. 1982년 현대화랑에서 가진 개인전을 계기로 3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게 된다. 현대화랑 대표 박명자와 일본미술학교 후배인 서양화가 임직순이 그의 신분을 보증했다.

이후로 1985년 대구 두손화랑과 수화랑,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996년 서울 미화랑, 2001 서울 가나아트센터, 2002 광주시립미술관, 2014년 서울 갤러리 현대, 2017년 서울 갤러리 신라,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 곽인식등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강릉 솔올미술관 전시는 414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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