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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79건)

벽진나루
『세종실록』에는 광주의 나루터로 북구 용두동의 거진巨津과 함께 서구의 벽진碧津을 이야기한다. 벽진나루가 『세종실록』151권 지리지 편에 광주 옛 무진군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무등산은 진산이며 벽진도와 거진도가 있다고 했다.군의 서쪽에 있는 벽진나루는 영산강을 기준으로 그 동쪽에 위치한 광주 관아와 그 서쪽
개산제(전평호수)
서구 매월동 519-1옛날에는 개산, 회산마을 사이로 하천이 흘렀다. 각시봉과 백마산에서 내려온 작은 물줄기가 개산을 지나 개산제로 모여 세하천으로 흘러갔는데 개금산의 작은 물줄기도 회산을 거쳐 개산제로 흘러들었고, 학산사 뒷산과 화방산花芳山 물도 매월제에 모여 개산제로 흘러들었다. 이곳 들판의 야트막한 산에
마재
서구 세하동 ‘마재’하면 금호동과 풍암동 경계에 있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시청자미디어센터와 119풍암안전센터가 자리한 곳 일대를 마재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재마을은 광주시 서구 서창동 관할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에 있는 백마산의 말발굽자리에 소재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광
노인고개
서구 풍암동노인고개는 이름 때문에 ‘노인老人’으로 생각하기 쉽다. 명칭이 그럴 뿐 노인과는 무관하다. 어느 평범한 도심구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곳이다. 백운동 쪽에서 풍암동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노인고개가 나온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고개라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게 됐지만 상당히 가파른 형세 때문에 어림잡
사월산
서구 벽진동서창동 관할인 벽진동에 소재한 사월산은 높이 101.5m로 아담한 산이다. 광주-송정리간 도로에서 공항 혹은 순환도로 접어들기 전 좌측에 솟아있는 산으로, 광주와 송정 간을 잇는 극락교를 비롯해 극락평야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이 산의 앞 쪽으로 극락강(영산강)이 흐른다.금당산에서 북쪽 짚봉산으로 내려
금당산
서구 풍암동 광주 풍암지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금당산은 해발 303.5m로 100m대의 백마산이나 개금산에 비해 월등히 높다. 산등성이를 따라 남구 진월동과 서구 풍암동의 경계에 속하는 산이다. 무등산에서 분적산을 거쳐 북서쪽으로 내려선 능선이 1번 국도를 거쳐 오른 산이다. 금당산의 지질구조는 백악기 후반 유
개금산
서구 매월동 회산마을 북쪽풍암 유통단지와 전평호수, 서광주역을 품고 있는 듯한 개금산은 매월동 회산마을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백마산과 마주보고 있다. 개금산蓋金山은 ‘아름답고 돈이 많이 모인다 하여 마치 금으로 덮인 것 같다’는 뜻을 갖고 있다. 높이는 179.2m로 일명 계관산鷄冠山으로 불린다. 산봉우리가 세 갈
운리사(벽진서원) 묘정비
광주시 서구 송풍로 42(풍암동)운리영당이 훼철되고 운리사가 세워지자 운리사 묘정비廟庭碑를 쓴 박석무 전 한국고전번역원 원장(다산연구소 이사장)은 “학향이자 의향인 광주의 상징적 인물이던 선생은 살아계시던 당시에 옥玉 같은 마음과 옥 같은 용모, 이름까지 옥이어서 삼옥三玉이라고 불렸다”고 쓰고 있다. ‘옥 같
박광옥-회재 박선생 유허비
광주시 서구 매월동 519-1(전평호수 입구)회재 박광옥(1526~1593)의 고향인 서구 매월동 회산마을 전평호수 인근에는 그의 유허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의병 모집 활동을 주도하고 의병도청을 설치하여 의명의 무기와 군량을 모아 왜적을 토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후학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하는
박광옥 비지
서구 매월동(회산마을 입구)서구 매월동 회산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 편에 2000년에 서구문화원에서 세운 ‘임란공신회재박광옥선생비지 壬亂功臣懷齋朴光玉先生碑誌’라는 회재 선생의 기록비가 처음 세워졌다.
박광옥 묘비
광주시 서구 송풍로 42(풍암동)서구 풍암동 벽진서원(운리사) 인근 음성박씨 풍암선산묘에 있는 회재 박광옥의 묘비 뒤에 새겨진 묘비문이 눈에 띈다. 자헌대부 우의정 허목許穆이 엮은 것이라 써있다. 묘비 글씨는 1952년 태인泰仁 박래호朴來鎬가 번역하고 영천永川 이돈흥李敦興이 썼다. 전체적인 내용은 회재의 출생과
벽진서원
서구 송풍로 42(풍암동)벽진서원壁津書院은 선조 때의 문신인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의 영정과 문집 목판 등을 보관하기 위해 1999년에 준공한 운리사雲裏祠로 개원한 서원이다. 박광옥의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 본관은 음성이며, 광주에서 사예司藝 박곤朴鯤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조광조의 문인
회재유집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1996. 3. 19.)
서구 풍암동 769-1 음성박씨문중회재유집목판懷齋遺集木板은 조선 선조 때 사헌부 시평 등을 지낸 문신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이 남긴 유집의 목판으로 18세기에 제작됐다. 현재 가로 54.5㎝×세로 33㎝의 69매가 남아있다. 판면은 좌우 쌍변으로 가로 34.5㎝×세로 21㎝이고, 반곽은 가로 16.5㎝×세로 21㎝에 계선
개산송당
서구 매월동 회산마을43세 때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 방죽을 막았다. 방죽 위에 수월당水月堂을 짓고 이 정자에서 고봉 기대승과 같이 성리학을 논했다. 그는 당대를 함께 산 광주 출신의 고봉 기대승(1527~1572)과는 소년 시절부터 절친이었다. 고봉은 1년 아래였지만 젊은 시절부터 도의지교道義之交
서창루 세동각 세하당
서구 눌재로 420(세하동)1998년 조성된 기존의 서창향토문화마을이 2017년에 정비사업을 통해 서창한옥문화관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내부의 한옥 건물에 대하여 정인서 서구문화원장의 제안으로 지역의 명칭을 따라 건물 이름과 방 이름을 정하여 생명을 갖도록 했다.서창루西倉樓는 서창지역이 옛 세곡창고였다는
수월당
서구 매월동 513 (개산제) 전평제서구 풍암유통단지를 지나면 바로 오른 편에 아담하고 아름다운 저수지인 개산제가 있다. 이곳에는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이 지었다는 수월당水月堂이 저수지 서편 고목을 옆으로 하고 자리하고 있다. 매월동, 벽진동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재해방지를 위해 축조했던 저수
풍암정2 -금당산
서구 풍암신흥로50번길 48 (풍암동)해발 302m의 금당산金堂山은 남구 효덕동 관할 진월동과 서구 풍암동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금당산 서쪽 끝 서구 풍암동에 해당하는 곳에는 금당산의 주 물길이 흘렀다. 금당산 오르는 초입에 풍암저수지를 바라보는 곳에 풍암정楓巖亭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아래에 약수터가 있어 이곳에
옛 지도 속 서구는 어떻게 생겼나
언젠가 ‘고산자 대동여지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도에 목숨 걸고 지도 때문에 딸도 잃는 일들이 벌어진다. 지도는 문물이 소통하며 사람이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위성지도나 내비게이션 등으로 길 찾는 일이 쉬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지도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지도는 삼
광주를 이끌어온 광주의 중심
서구의 이름과 연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으로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남부·서부·지산출장소를 통합하여 45개 동으로 구성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가 신설되었다. 남부출장소의 사·구·양·월산·농성·백운 등 14개 동, 서부출장소의 유·누문·북·임·상무 등 15개 동, 지산출장소의 본촌·우치·삼소 등 16개 동을 합해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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