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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189건)

다리의 역사
광주에 다리가 언제부터 놓여 졌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나 강을 건너게 하는 다리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옛 다리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광주의 옛 다리는 광주의 교통로를 따라 만들어졌다. 광주는 옛 길이 별로 크지 않았고, 타 지역으로 가는 데는 광주읍성의 4대문을 통
사동제
서구 서창동 358-9사동제는 절골마을의 뒤편, 송학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사동제는 1968년에 조성됐고 갈대와 줄 및 물억새가 자생하고 있고, 주변은 대나무 숲으로 에워싸인 특이한 자연생태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 대나무 숲 위로는 소나무군락이 송학산 능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녹지축이 잘 연결되어 있어 야
봉학제
서구 용두동 2334봉학제는 1943년에 축조됐고 면적은 19,194㎡이다. 서창마을로 가는 8차선 도로와 인접하고 있고 확 트인 곳이지만 접근은 쉽지 않다. 진입로를 찾아 들어가면 데크 산책로와 정자 등이 있고 제방 위로 데크 산책로가 바람길의 통로역할을 한다. 봉학제는 겨울철새들의 낙원이다. 이곳 겨울철새는 쇠오리로
사망당고개
서구 매월동만취당을 가는 길에 사망당고개가 있다. 광주시의 서구 서창동 관할 매월동에 있는 고개이다. 개금산蓋金山 남쪽 안산으로 이어지는 등성이를 넘는 재로 서편 회산마을과 동편 화개마을 간 길목이었다. 서낭당이 회산마을 쪽에 있어 ‘사망당’과 관계된 듯하고, ‘춤만동고개’라는 별명도 있다. 서낭당은 돌무더미
마재
서구 세하동 ‘마재’하면 금호동과 풍암동 경계에 있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시청자미디어센터와 119풍암안전센터가 자리한 곳 일대를 마재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재마을은 광주시 서구 서창동 관할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에 있는 백마산의 말발굽자리에 소재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광
노인고개
서구 풍암동노인고개는 이름 때문에 ‘노인老人’으로 생각하기 쉽다. 명칭이 그럴 뿐 노인과는 무관하다. 어느 평범한 도심구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곳이다. 백운동 쪽에서 풍암동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노인고개가 나온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고개라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게 됐지만 상당히 가파른 형세 때문에 어림잡
한생이산(팔학산)
서구 서창동 1번지 164.1m의 이 산은 지도에서는 한생이산이지만 삽봉 김세근 장군 문중에서는 팔학산이라 부른다. 김세근 장군의 학산사가 있다. 아마도 여덟개의 봉위리가 학의 날개 처럼 보인 때문이라는 구전이 전한다.
송학산
서구 용두동 산 전체의 모습이 둥글둥글 해 무등산을 연상시키는 송학산은 높이 212.3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산 곳곳에 큰 바위가 박혀있다. 서창동 학동마을과 절골마을 뒤에 자리한 송학산은 남구 압촌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자락에는 고인돌이 있다. 이는 오랜 역사의 증거다. 산 중턱에는 잡목림 숲이 우거져 가
사월산
서구 벽진동서창동 관할인 벽진동에 소재한 사월산은 높이 101.5m로 아담한 산이다. 광주-송정리간 도로에서 공항 혹은 순환도로 접어들기 전 좌측에 솟아있는 산으로, 광주와 송정 간을 잇는 극락교를 비롯해 극락평야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이 산의 앞 쪽으로 극락강(영산강)이 흐른다.금당산에서 북쪽 짚봉산으로 내려
봉황산
서구 용두동과 남구 압촌동광주 무등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는 수레바위산 - 소룡봉 - 분적산 - 금당산을 지나 화방산 - 송학산 - 봉황산 - 등룡산으로 이어지다가 승촌에서 영산강을 만나 끝을 맺는데 그중에 봉황산은 167.8m이다. 서창과 대촌의 중간에 있으면서 눌재로를 사이에 두고 송학산과 마주보는 산이다.
백석산
서구 금호동과 마륵동 경계서구에는 백白자로 시작하는 산이 많다. 백마산이 있고, 백일지구라고 해서 붙여진 백일산이 있다. 그리고 백석산까지 있으니 서구는 유난히 ‘백’자와 인연이 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백석산은 금호동과 마륵동의 경계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 79.8m로 채 100m가 안 되는 야트막한 구릉이다. 이처럼
백마산
서구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백마산은 서구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금당산에서 남서쪽으로 화방산을 거쳐 송학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절골[寺洞] 동편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서 솟아있다. 서쪽으로 극락강이 흐르고, 광주공항과 송정리 일대가 조망된다. 개금산을 마주보고 있으며 해발고도는 162.1m
열부흥성장씨행적비
광주시 서구 서창동 산46-101986년김해김씨 열부각 열부흥성장씨 행적비는 서창동 백마교차로 사거리에서 서창주민센터방향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있다. 구산재와 백마교 사이 산자락에 있다. 1986년에 세워진 것인데 빨간 벽돌로 사면 담장을 두르고 김해김씨 열부각이라는 석조물로 집을 만들었고 ‘열부흥성장씨
열부유인김씨행적비
광주시 서구 눌재로 420(세하동)이 비는 서창한옥문화관 주차장 입구에 있다, 상산김씨商山金氏 전라도 병마절도사 김수정金守貞의 후손인 김채호金彩鎬가 산송山訟 사건으로 1905년 악한에게 피살된다. 그 부인 김씨(1871~1930)가 남편의 원수를 갚고 열부가 되기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 부인은 삽봉 김세근 장군
광산이씨 효열비각
서구 금호동 702-37 인근광산이씨효열정려는 음성박씨 박성립朴性立의 처 광산이씨의 효열을 기리는 정려였다. 음성박씨정승공파백암문회에서 관리했다. 광산이씨의 아버지는 이중근, 조부는 이경욱, 증조는 이언식으로 대제학을 지냈으며 외조부는 조계원이다. 광산이씨는 1795년에 출생하여 박성립과 성혼하였으나 출가한
관산임씨 기행비
서구 백설길 37(마륵동)운천사를 끼고 돌아가면 그 길목 중간쯤에 효열문孝烈門이 하나 서 있다. 효열부 관산임씨(1909~1969) 기행비孝烈婦冠山任氏紀行碑이다. 서창 출신 김평길金平吉이 그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1993년에 세운 것이다. 비문 내용을 보면 관산임씨는 임윤재任允在의 딸이며 김해 감무공파 김천두金千斗(1
학산사 묘정비
광주시 서구 불암길 82-100(서창동)1592년 임진왜란 때 충남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삽봉 김세근 장군의 업적을 새긴 비이다. 1974년(갑인년)에 유림 지도자인 안동 김윤동金潤東이 글을 지었다. 묘정비 내용은 극락강변 팔학산 아래에 건물을 짓고 창렬단이라 하였다. 고제봉, 유월파, 안청계, 고학봉 등과 함께
최석규-은사 야은 최공석규 공적비
서구 유촌동 374 인근은사야은최공석규공적비恩師野隱崔公錫圭功績碑는 최석규의 제자들이 글을 짓고 李容九이용구가 글씨를 썼다. 최석규(1902~?)의 본관은 탐진이며 일제강점기 때 한글이 폐지되고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서당을 건립하여 서창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의 문맹 퇴치와 지역문화 발전에 선봉장이 되었다.서창
전참봉정락교시혜비
광주시 서구 화정로309번길 45(농성동)극락, 서창, 송정, 동곡, 하남, 비아 면 등 6개 면의 소작인 일동이 1937년 2월 세운 ‘전참봉정공낙교시혜비’가 서있다. 비문에는 “배를 두드리며 격양가를 부르는 그 풍족한 재벌 마음에 들었네. 빈민구호의 방법을 찾아 공정한 처리로 가감하였네. 원근에 은혜를 베풀어 칭송이 서로
박호련시혜불망비
서구 눌재로 258 서창치안센터 맞은 편농선대시주비 근처에는 박호련의 이름자가 선명한 송덕비(朴浩連施惠不忘碑) 2개가 서 있다. 하나는 을축년인 1925년에, 다른 하나는 기사년인 1929년에 세운 것이다. 비석에 적힌 글귀를 보면 박호련은 참봉도 한량도 아니었다. 이 비석들을 세울 쯤에 그런 직함을 쓰기엔 너무 늦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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