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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당
서구 금화로 23(금호동)『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서쪽 20리 거리에 일신당日新堂이 있었다. 뒤로는 얕은 산이 둘러싼 고즈넉한 만호마을이었다. 개촌 때는 만호곡晩湖谷이라 불렀고 정자는 상당히 오래전에 지어졌다. 1827년 이 마을에 살던 당시의 의식있는 지식인 3성씨인 음성박씨 일산日山 박호언朴浩彦, 순천박씨
청우당
주의 서쪽 10리청우당淸友堂은 『광주읍지』(1924)에 주의 서쪽 10리 거리에 송병효宋炳孝가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송병효는 이에 대한 많은 문적을 남겼고 월성月城 최영조崔永祚(1859~1927)의 기문과 김문제金文濟의 제액이 있다고 했다.
옛 지도 속 서구는 어떻게 생겼나
언젠가 ‘고산자 대동여지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도에 목숨 걸고 지도 때문에 딸도 잃는 일들이 벌어진다. 지도는 문물이 소통하며 사람이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위성지도나 내비게이션 등으로 길 찾는 일이 쉬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지도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지도는 삼
광주를 이끌어온 광주의 중심
서구의 이름과 연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으로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남부·서부·지산출장소를 통합하여 45개 동으로 구성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가 신설되었다. 남부출장소의 사·구·양·월산·농성·백운 등 14개 동, 서부출장소의 유·누문·북·임·상무 등 15개 동, 지산출장소의 본촌·우치·삼소 등 16개 동을 합해 광
옛지도에 나타난 광주의 모습
우리나라에서 지도는 삼국시대부터 그려졌다고 하지만 광주를 그린 지도는 조선시대 것만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광주를 그린 지도는 대략 40여 점이 알려져 있다. 이들 지도는 전국을 다룬 지도첩에 속한 것, 읍지邑誌나 지지地誌에 실린 것, 특별한 목적에서 개별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나뉠 수 있다.지도는 한 시대의 초상
선사시대부터 21세기의 광주까지
선사시대광주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적, 유물을 통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상무 신도심을 개발하면서 확인된 인근의 서구 치평동 구석기 유적은 12만5천년 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삶의 흔적임이 확인되었다. 이 지역의 구석기 문화는 뗀석기로 대표된다. 이 뗀석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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