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간사록〔江南幹事錄〕 직무 수행 기록 - 미산집 제8권 / 기(記) : 한장석(韓章錫, 1832~1894)갑술년(1874) 2월에 나라에 원자(元子) 탄생의 경사가 있어 증광시를 시행하였으므로 내가 왕명을 받고 호남좌도에 가게 되었다. 3월 상순 임자일에 대궐에 이르러 하직인사를 올리고 계판(啓板) 앞에서 별도로 분부를
광주로 가고 싶다, 생질 홍득복에게 보내는 편지〔與洪甥得福〕 -도곡집 제31권 / 서독(書牘) : 이의현(李宜顯, 1669~1745)흥양(興陽)의 화(禍)는 옛날에 들어보지 못한 일이고 혜백(惠伯)은 또 고문을 당했다고 하니, 두 양친의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구나.진하(陳賀)의 반열에 가서 참여한 친구들이 많고 자용(子容)
광주 서구문화원이 마련한 제6회 광주시민연극제가 3팀이 연극을 올리고 폐막했다.코로나19로 인해 초반 참가신청을 한 7개팀 가운데 결국 3개팀만이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빛고을국악전수관 공연장 무대를 밝혀주었다.코로나로 인해 비대면공연으로 기획했던 이번 연극제는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연습부족 등을 이유로 참가
2월 26일 창평(昌平) 장세방(張世方)ㆍ정만의(鄭萬儀) 등이 토주(土主 고을의 수령)를 모함하여 거짓말로 의송(議送)을 바친 일을 조사하여 보고하다 - 보첩고(報牒攷) ○영조(英祖) / 영조(英祖) 42년(1766) 첩보(牒報)하는 일. 방금 전에 도착한 창평현(昌平縣)의 이문(移文 공문(公文)을 보내 조회함. 또는 그 문건)에,
정단(正壇) 32인 - 홍재전서 제60권 / 잡저(雜著) 7 : 정조대왕(正祖大王, 1752~1800) 사판(祠版)에는 ‘충신지신(忠臣之神)’이라고 쓰고, 제사의 의식은 축문이 있으며 - 축문은 본릉의 한식절 수향(受香) 때 같이 싸 가지고 감 -, 제품(祭品)은 밥 한 주발, 소탕(素湯) 한 대접, 나물과 과일 각 한 소반, 술 한 잔이고, 제
비국備局이 광주(光州) 진사 이창우(李昌)의 농서에 관하여 회계한 것에 대한 판부 - 홍재전서 제47권 : 정조대왕(正祖大王, 1752~1800) 아뢴 대로 윤허를 한다. 매우 좋은 말이다. 한 말이 모두 보기 드물 정도로 핵심을 찌르고 있다. 이(李) 유생의 유식함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의 대책(對策)에서 알고 있었다. 종자가 있
남원(南原) 정충사(貞忠祠)의 비문 - 청음집 제29권 : 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만력(萬曆) 계사년(1593, 선조26)에 왕사(王師)가 왜병들을 바닷가에서 크게 무찔러 왜적들의 수괴인 풍신수길(豊臣秀吉)이 깊이 원망하였다. 그해 6월에 자신의 장수인 가등청정(加藤淸正)으로 하여금 정예병을 모두 거느리고 진주성(晉
무등산(無等山) - 임하필기 제13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 광주(光州)의 동쪽 10리에 무등산이 있는데 백여 리의 지역을 걸터타고 앉아 있다. 산 위에는 수십 개의 돌기둥이 서 있는데 마치 사람이 일부러 깎아서 세운 듯하며 높이가 거의 백 척이나 되고 모두 여섯 개의 모
무등산곡(無等山曲) - 백제의 음악, 임하필기 제12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 지리산가(智異山歌)는, 구례(求禮) 고을 사람의 딸이 지리산 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자색이 아름답고 여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였으므로 임금이 그 여자가 이처럼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는 궁중으로
김천일(金千鎰)ㆍ양산숙(梁山璹) - 연려실기술 제16권 / 선조조 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 전라 우도의 의병장 김천일이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였다.○ 천일은, 자는 사중(士重)이요,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나주(羅州)로 이사하여 두 대[二代]째이다.이항(李恒)에게 배웠다. 은일로 천거를 받아 대간이 되었는데, 그는
최신(崔愼)의 기록 - 하, 송자대전 부록 제18권 / 어록(語錄) 5 :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신] 세속(世俗)에 전하기로는, 김덕령(金德齡)은 용력(勇力)이 있는 외에도 신이(神異)한 일화가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두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었다는 말과 수감(收監)되었을 적에 고문을 무수히 당했으나 살갗이
이 지평(李持平)의 묘갈명(墓碣銘) - 기언 별집 제22권 / 구묘문(丘墓文) :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공은 휘(諱)는 완(梡)이요, 자(字)는 자완(子完)이며, 성은 이씨이다. 그 선대는 연안(延安) 사람으로, 고려 때 태자 첨사(太子詹事) 이습홍(李襲洪)의 후예이다. 6대에 도관찰사(都觀察使) 이귀산(李貴山)이 있고,
석서정기(石犀亭記) - 목은문고 제5권 :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광주(光州)의 지세(地勢)를 보면, 삼면이 모두 큰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오직 북쪽만이 평탄하게 멀리 터져 있다. 그리고 남산(南山)의 계곡에서 두 개의 물줄기가 흘러나오는데, 그 물의 근원이 또 멀기만 하다. 따라서 이 두 개의 물줄기가 합류
갑술년 10월 광주 진사 박논 등의 상소[甲戌十月光州進士朴碖等上疏] - 기축록 속(己丑錄續) : 《기축록》에 이어 효종 8년 정유(丁酉 1657)로부터 숙종 28년(1702)까지 45년간에 일어났던 정개청(鄭介淸)의 서원 철훼를 두고 동서(東西) 양파간의 싸움을 기록한 일기이다. 이 일기를 쓴 사람은 누구인지는 알
광주향교(光州鄕校) 중수기(重修記) - 고봉집 제2권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ㆍ존재(存齋)이며,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아, 도(道)가 상실된 지 오래되었다. 삼대(三代) 말엽 이후에도 오히려 성인(聖人)의 세대가 이미 멀어지고 훌륭한 교훈이 매몰되었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 제8권 / 기(記)광주(光州)는 호남 지방의 이름난 고을로써 서석산(瑞石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계산(溪山)과 임천(林泉)의 승경(勝景)이 있을 뿐만 아니라 토지가 비옥하여 백성의 생활이 넉넉한 편이다. 그런 가운데 대사(臺榭)와 원유(園囿)가 또한 많아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