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는 1일 이연 광주시 시민안전실장을 초청, ‘뛰어난 창조는 끊임없는 열정으로부터’라는 주제로 문화원 회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가졌다.이 실장은 이날 특강에서 “내 자신의 주변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갖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뛰어난 창조의 첫걸음이다.”면서 “융복합시대에
百里蒼山一日還 백리길 푸른 산을 하루에 돌아오니夢魂仍在水雲間 꿈속의 넋 물과 구름 사이에서 맴도네.斗酒更對神明宰 말(斗)술로 다시 신명한 재상을 대하니爽氣催詩入我班 상쾌한 기운 재촉하여 시를 짓게 하네- 광주읍지,월봉집(月峯集)고부천(高傅川, 1578-1636)의 자는 군섭(君涉)이며
十二闌干對遠岑 열두 난간이 먼 산을 대했는데, 올라가 보니 登臨倦容散幽襟 고단한 손이 그윽한 흉금을 터놓을 만하다榴花竹葉有佳色 석류 꽃과 대잎은 아름다운 빛이고紫鷰黃鸝俱好音 검은 제비 누른 꾀꼬리는 모두가 좋은 소리로다憑檻欲招丹蓑侶 난간에 기대어서 단전(丹篆)의 짝을 부르
지난 2006년 광주천 정화사업을 벌이면서 옛 정자 중 하나인 석서정을 복원했다.석서정은 1800년경에 편찬된 광주읍지에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다고 한 기록으로 보아 정조 연간 이전에 사라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석서정 터는 신증동국여지승람(1481) 광산현 고적조에 현 남쪽 2리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정자가 많던
편방사(片坊祠) 유허비(遺墟碑)는 <광주읍지>에 따르면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음기(陰記)가 있다.최초의 경렬사는 인조 22년(1644)에 현재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 74번지에 편방사(片坊祠)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이곳은 정지 장군이 말년에 낙향했던 곳이 광주목 편방면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경렬공
민고혁창사적비(民庫革刱事蹟碑)<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서쪽 1리의 거리에 있는 비석으로 졸은(拙隱) 박현(朴絢)의 기문(記文)이 있다.기문(記文)졸은(拙隱) 박현(朴絢) 지음우리 고을에 별다른 민막(民瘼)의 폐단이 없다는 일은 온 나라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일 뿐 아니라 이 고을의 사람들
광주시 광산구 장덕동 1291-1(수완지구 근린5-4호 공원)율원군(栗元君) 이종(李宗) 사당(祠堂) 유허비(遺墟碑)<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북쪽 30리의 거리인 완동(莞洞)에 있는 비석이다. 그의 후손인 긍의(兢儀) 기섭(起攝) 강호(康五) 등이 서로의 힘을 모아 설치(移建)하였다. 이들의 이러한 일은 오로지 옛날
광주시 북구 금곡동 산 164-1(충장사 주변)1830년이 유명조선국숭정대부판결사의정부예의찬성김공함신도비(有明朝鮮國崇政大夫判決事議政府禮義贊成金公瑊神道碑)는 金致洙 쓰다.<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동쪽 20리의 거리인 배재(梨峙)마을에 있는 비석이다. 후손 면식(冕植)이 이를 세웠다. *瑊은 올돌 감, 또
광주시 북구 송강로 13(금곡동) 충장사 내1842년김덕령 은륜비각이 있고 그 안에 비석이 있다. 원래는 충효동 배재마을 899번지에 백비로 있었으나 나중에 목사 조철영이 이 사실을 알고 글을 새겨 충장사로 옮겼다.은륜비(恩綸碑)는 <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동쪽 20리의 거리에 있는 빗돌로 명나라 영력(永曆)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신라왕자단비(新羅王子壇碑)는 <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북쪽 50리의 거리인 평장동(平章洞)에 있는 건물로 광산김씨시조(光山金氏始祖)의 제향(祭享)을 모시는 김씨문중(金氏門中)의 단소(壇所)이다.기문(記文)후손 참판(參判) 김철현(金喆鉉) 지음우리의 시조(始祖) 이신 신라왕자(新羅王
광주시 남구 도촌동 산 181606~1679이 취병조공강생구지비(翠屛趙公降生舊址碑)는 <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서북쪽 30리 천곡(泉谷)에 있다. 조형(趙珩)공의 6세손 운한(雲漢)이 본주(本州) 목사로 부임하여 비석을 세웠다. 찬자는 운한(雲漢)이다.기문에 따르면 7세조 승지공(承旨公)이 병오(丙午)년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