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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102건)

월봉서원 / 月峯書院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452(광곡길 133)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전기 기대승을 추모하기 위해 1578년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로 호남정신문화의 산실로 일컫고 있다. 기대승(奇大升), 박상(朴祥), 박순(朴淳),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등 조선 명신들을 배향하고 있다.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
송호영당 / 松湖影堂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송정공원로 74)박상(朴祥) 박순(朴淳)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장의(掌議) 2인, 색장(色掌) 2인 원생(院生) 15인 1728년(영조 4) 창건고종 무진(戊辰, 1868)에 철폐계묘(1903)년의 조령(朝令)에 의해 다시 복설(復設)되었다.    -광주읍지(1924)1992~1995년 사당, 담장, 진입계단
사암 박순(1523~1589)
박순은 1523(중종17년)년 서울에서 당시 홍문관 교리였던 아버지 박우와 어머니 당악김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성균관 대사성 박우의 아들이며 눌재 박상의 조카이다. 8세 때 다니던 서당 훈장이 '내가 감히 너의 스승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동국삼박의 하나였던 아버지 육봉 역시 차남이 지은 글
회재로
회재로는 전남 나주시 남평읍에서 지석천을 건너 서창방면 좌측 도로에서 바로 시작해 광주광역시 남구 독립로까지 이어진 15.534km 연장의 꽤 긴 도로다. 또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또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옛 광이리에서 1번지를 시작하는 회재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먼저 하얗게 무리지어 늘어
방하동(芳河洞), 거기는 꽃다운 강물이 흐르고
방하동(芳河洞), 거기는 꽃다운 강물이 흐르고        오소후 아버지 눈썹 같은 구름을 따라 걸었다 한 계곡을 지나자 난향에 취해 견딜 수 없었다또 한참 후    어머니 젖가슴 같은 둥근 구릉을 지났다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향기 거기서, 오래 머물며 주저했다
이종범, “호남의 사림과 향약 오늘에 되새겨야”
"호남의 정신은 실사구시의 사림정신과 향약으로 다져진 올바른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13일 조선대 지역인문학센터 주최, 광주 서구문화원 주관으로 서구문화원 강의실에서 가진 ‘도로에 새겨진 호남 사림의 정신: 필문 이선제와 눌재 박상’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밝혔다.이 원장
눌재 박상 행장비- 訥齋先生集附錄卷第一
서구 사동길 93(서창동)   訥齋先生行狀[尹衢]      귤정(橘亭) 윤구(尹衢, 1495~?)가 박상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인 1531년 4월에 두 아들 부사공 박민제와 진사공 박민중의 요청으로 쓴 글이다. 윤구는 윤선도(1587~1671)의 증조부이다. 윤구는 1516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제교, 경연
[앙코르! 향토극단] 창작연극 맥 잇는 부산극단 '시나위'
박상규 대표 "연극 몰입할 수 있는 사회 제도적 환경 필요"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부산 남구 경성대 앞 대학로는 부산지역 '소극장 1번지'로 불린다. 이 일대에만 소극장 10여 곳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지난 4일 오후 극연구집단 '시나위'의 제54회 정기공연 '참 세기'(연출 김동현)가 공연되는 하늘바람 소극장을
<光州西倉>, 서구문화원 인문학총서 제1권 발간
설날 전후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다녀갔다. “예전 그대로인데!”, “와, 많이 바뀌었네.”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광주 서구 서창동을 다녀간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마을에 따라 바뀐 모습의 양상이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극락’이다.우리나라에서 ‘극락’이라는 지
박지흥-찬성공 박지흥 묘역
광주시 서구 서창동 산 92 부근(송학산)서창 절골마을의 입향조인 박지흥의 묘소가 있다. 그의 아들이 눌재 박상이며 손자가 사암 박순이다.
사암박순선생신도비명
광주시 광산구박순(1523∼1589)의 신도비인 思庵朴淳先生神道碑銘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하는 데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동안 기록 착오로 경기도 포천 옥병서원 앞에 있는 것을 광산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순은 후손이 없자 양자를 들이지 않고 외동딸이 시집(군수 이희간에게 출가)간 포천에서 은거하
해광송선생지천
광주시 북구 무등로 1040(화암동)이 해광송선생지천(海狂 宋先生支阡)은  《송자대전》과 《해광집》에는 海狂處士宋公墓表로 기록되었고, 이 해광송선생지천은 석곡수원지 위 관광도로 동쪽에 있던 묘비를 옮겼다.호남에는 옛날부터 으뜸가고 위대하며 어질고 뛰어난 선비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세상을 잘못
려헌거사박공기적비
광주시 광산구 지평동 지정마을1983년이 려헌거사박공기적비(藜軒居士朴公紀蹟碑)는 박상호(朴尙鎬)의 기적비이다. 건립 당시에는 광산구 지평동 지정마을 입구에 1983년에 세웠다. 마을 앞에 도로가 나면서 마을 뒤에 있는 공의 묘 앞으로 옮겼다. 그의 셋째 형인 박영호(朴泳鎬)의 유적비도 마을 골목 안에 세워
눌재 박상朴祥(1474~1530)
박상朴祥(1474~1530)은 진사 박지흥의 차남이며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던 조선 중종 때의 관료로 사림 운동에 전력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호남 사림의 대부이다. 본관이 충주이며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이다. 눌재는 1474(성종5년)년에 광주 방하동 본가에서 성균관 진사였던 부친 지흥과 모친 계성서씨 사이에
정인서 문화비평13, 광주, 문화콘텐츠를 놓치고 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작가이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 이후로도 비판적인 글들을 발표했다. 1974년 2월 시민권 박탈과 강제 추방당했다.소련 붕괴 이후 1994년 20년간의 망명
박효덕-湖南五十縣 호남의 많은 고을 쉰 곳에 이르지만
湖南五十縣  호남의 많은 고을 쉰 곳에 이르지만君子也斯亭  군자가 거한곳은 이 정자 뿐이로다.極浦流如白  극랑강 흐르는 물은 그 빛이 청백하고瑞岑節彼靑  서석산 높은 봉은 그 기운 청청하네.孝思千古篤  효도의 그 생각이 천고에 독실하고忠義一心明  충의의 그 마음이 한없이 밝았도다
신응시-만절정, 사암 박상공을 위해 짓다(晩節亭 爲思庵朴相公作)
一曲溪山萬勝專  한 구비의 시내와 산은 온갖 승경을 독점하였고繞亭松樹政堪憐  정자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는 정녕 사랑스럽다.千章擁翠層雲合  빽빽이 들어선 나무는 푸르름 둘러 높은 구름과 합쳐있고十里聞聲爽籟傳  십리 밖에서 소리 들어도 상쾌한 가락 전한다.不獨大材棟樑用  큰 재목으로
박상-광주향안 서문(光州鄕案序), 訥齋先生續集卷第四
訥齋先生續集卷第四 / 序 金文谷編 吾州之座首金叔讓,別監金敬寶,薛崇。价別監柳子華簡訥齋曰。我朝鮮受命以來。倣周卿大夫之制。州與府與郡與縣與。設留鄕所。以鄕之有職秩名望者補其員。長曰座首。亞曰別監。所所攝之公事。長主之而亞佐之。長不可顓也。亞不可擅也。所以耳目於本官。而司其聞睹焉。又於都下。置之邸
박정-登瑞石山賦
處人世之僻陋 인간 세상 편벽하고 비루한 데 살다보니 動皆窒而不通 움쩍하여도 다 막히고 통하지를 않는다思登高而望遠 높은데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一盪余之愁胸 나의 시름찬 가슴 후련히 씻고 싶어져穿芒鞋而捫薜 짚신을 신고 담장이를 붙들고서陟瑞石之層峯 서석산의 층진 봉우리를 올라가超積蘇而獨立 쌓인 나무 뛰어
박상-遊瑞石山韻 贈鄭萬鍾
昔年曾謫永平官  지난해 남평에 유배되어서無等山雲借登攀  무등산 구름 속을 등반하였지 念佛庵中成邂逅  염불암 안에서 즐거워하고天王峯上與盤桓  천왕봉 꼭대기에 서성거릴제南州五十彈丸小  남쪽오십 고을 탄환처럼 조그맣고 北闕三千咫尺間  한양 삼천리 길 지척으로 여겼었네衰病日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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