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정신은 실사구시의 사림정신과 향약으로 다져진 올바른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13일 조선대 지역인문학센터 주최, 광주 서구문화원 주관으로 서구문화원 강의실에서 가진 ‘도로에 새겨진 호남 사림의 정신: 필문 이선제와 눌재 박상’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밝혔다.이 원장
서구 사동길 93(서창동) 訥齋先生行狀[尹衢] 귤정(橘亭) 윤구(尹衢, 1495~?)가 박상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인 1531년 4월에 두 아들 부사공 박민제와 진사공 박민중의 요청으로 쓴 글이다. 윤구는 윤선도(1587~1671)의 증조부이다. 윤구는 1516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제교, 경연
박상규 대표 "연극 몰입할 수 있는 사회 제도적 환경 필요"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부산 남구 경성대 앞 대학로는 부산지역 '소극장 1번지'로 불린다. 이 일대에만 소극장 10여 곳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지난 4일 오후 극연구집단 '시나위'의 제54회 정기공연 '참 세기'(연출 김동현)가 공연되는 하늘바람 소극장을
설날 전후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다녀갔다. “예전 그대로인데!”, “와, 많이 바뀌었네.”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광주 서구 서창동을 다녀간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마을에 따라 바뀐 모습의 양상이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극락’이다.우리나라에서 ‘극락’이라는 지
광주시 광산구박순(1523∼1589)의 신도비인 思庵朴淳先生神道碑銘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하는 데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동안 기록 착오로 경기도 포천 옥병서원 앞에 있는 것을 광산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순은 후손이 없자 양자를 들이지 않고 외동딸이 시집(군수 이희간에게 출가)간 포천에서 은거하
광주시 북구 무등로 1040(화암동)이 해광송선생지천(海狂 宋先生支阡)은 《송자대전》과 《해광집》에는 海狂處士宋公墓表로 기록되었고, 이 해광송선생지천은 석곡수원지 위 관광도로 동쪽에 있던 묘비를 옮겼다.호남에는 옛날부터 으뜸가고 위대하며 어질고 뛰어난 선비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세상을 잘못
광주시 광산구 지평동 지정마을1983년이 려헌거사박공기적비(藜軒居士朴公紀蹟碑)는 박상호(朴尙鎬)의 기적비이다. 건립 당시에는 광산구 지평동 지정마을 입구에 1983년에 세웠다. 마을 앞에 도로가 나면서 마을 뒤에 있는 공의 묘 앞으로 옮겼다. 그의 셋째 형인 박영호(朴泳鎬)의 유적비도 마을 골목 안에 세워
박상朴祥(1474~1530)은 진사 박지흥의 차남이며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던 조선 중종 때의 관료로 사림 운동에 전력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호남 사림의 대부이다. 본관이 충주이며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이다. 눌재는 1474(성종5년)년에 광주 방하동 본가에서 성균관 진사였던 부친 지흥과 모친 계성서씨 사이에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작가이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 이후로도 비판적인 글들을 발표했다. 1974년 2월 시민권 박탈과 강제 추방당했다.소련 붕괴 이후 1994년 20년간의 망명
一曲溪山萬勝專 한 구비의 시내와 산은 온갖 승경을 독점하였고繞亭松樹政堪憐 정자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는 정녕 사랑스럽다.千章擁翠層雲合 빽빽이 들어선 나무는 푸르름 둘러 높은 구름과 합쳐있고十里聞聲爽籟傳 십리 밖에서 소리 들어도 상쾌한 가락 전한다.不獨大材棟樑用 큰 재목으로
處人世之僻陋 인간 세상 편벽하고 비루한 데 살다보니 動皆窒而不通 움쩍하여도 다 막히고 통하지를 않는다思登高而望遠 높은데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一盪余之愁胸 나의 시름찬 가슴 후련히 씻고 싶어져穿芒鞋而捫薜 짚신을 신고 담장이를 붙들고서陟瑞石之層峯 서석산의 층진 봉우리를 올라가超積蘇而獨立 쌓인 나무 뛰어
조선 전기의 문신 남촌(南村) 윤지화(尹之和 1476~1558)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순경(順卿)이다. 현감(縣監) 윤응(尹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봉상시(判奉常寺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尹起畝)이다. 연산군의 외삼촌인 참판(參判) 윤구(尹遘)의 아들이자, 첨정(僉正) 윤지임(尹之任)의 동
오랫동안 광주문학관 건립을 놓고 설왕설래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2010년 광주시가 용역 의뢰한 ‘용아.다형 문학관 건립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이라는 보고서가 나온 뒤 강운태 시장, 윤장현 시장을 거치면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이번 민선7기 이용섭호의 문화공약 가운데 문학유산 계승 및 문학인들의 창작 지원을 위한
문학관과 문학공원 하나도 없는 문화도시 광주에 그나마 있는 주요 시비(詩碑·문학비)들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광주지역은 남구 사직공원에 11개의 시비가 있고 광주공원에 영랑과 용아의 시비, 북구 광주문화예술회관 고정희와 정소파, 중외공원에 김남주, 서구 마재근린공원에 정덕채, 광산구
청백리淸白吏 이야기는 역사상 청빈한 관리로부터 비롯되곤 하지요. 전라도사全羅道事로 새로 부임해온 조공趙公의 이야기입니다. 조공은 청백리와 무척 연관이 돼 있습니다. 눌재 박상의 후임으로 부임한 조공은 나이에 비해 성품이 칼날같이 예리하고 엄격해 일체의 부조리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눌재와 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