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광산구 본동로 158오준선吳駿善(1851~1931)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字)는 덕행(德行), 호(號)는 후석(後石)이다. 현재의 광산구 삼도동 도림에서 출생하였다. 기정진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방대한 분량의 저술인 <후석유고>를 남긴 한말 유학자이다. 특히, 그는 1910년 망국 직후 일제가 지급한 이른바
류인대(柳寅大, 1895~1976)의 자는 국남(國南), 호는 월호(月湖)이며 본관은 문화이며, 좌상공파 대승공 31대손으로 전남 광산군 본량면 동호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서 태어났다.조선 전기의 화가인 서산(西山) 류자미(柳自湄, ?~1462)의 후예로 광산 본량동으로 이거한 농포(弄圃) 류희달(柳希達)의 9
서구 용두동 산 79(봉산사)봉산사 묘정비鳳山祠廟庭碑는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1855~1934)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의 건립 취지와 그 사당의 주인, 곧 주벽主壁으로 모시는 인물에 대한 추앙의 문장 등이 적혀 있다. 1976년에 묘정비를 세워 기록을 남겼다.전 성균관장 영가永嘉 권중해權重海가 글을 지었고 덕양德陽 기영
광주시 서구 전평길 62(매월동)1929년매월동 개산마을에는 흥성 장씨興城張氏의 향제소享祭所이며 효우공孝友公 장창우張昌友(1704~1774)의 제향을 위한 재각이 영식재永式齋이다. 1928년 11월 문중회의에 의해 건축하기로 의결하고 1929년 8월에 건립되었다. 장정섭張整燮 장안섭張安燮 장창섭張昌燮 등이 주도적 역할을 하
서구 매월동 (동산부락)만취정(晩翠亭)은 1925년에 김용희(金容希, 1860.5.27~1927.7.21)가 매월동 화개산 기슭에 처소로 지었다. 김용희의 호는 송암(松菴) 또는 만취정이다. 유고가 2권 있다고 족보에 기록되어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현와 고광선이 행장을 썼다. 삽봉 김세근 장군의 후손이다.만취정은 『광
서구 눌재로 420(세하동)야은당野隱堂은 야은野隱 김용훈金容燻(1876~1948)을 기리는 정자이다. 자字는 봉현奉賢, 호號는 야은野隱, 우호又號는 우재愚齋이다. 광주향교의 『광주지』(1968)에는 김용훈을 기리는 서호영당瑞湖影堂이라 불렀다. 지금은 서창한옥문화관과 함께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정자로 활용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