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구 계안길 27-17 (율리전사) 석음 박노술(1851~1917)은 율리전사를 짓고 제자를 양성하였다. 율리栗里는 중국 진대晉代 도연명陶淵明이 살던 마을로 ‘귀거래사하는 삶’의 의미이다. 계안마을로 들어가는 직선 막바지의 왼편에 정남향의 기와집이 율리전사이다. 박노술은 밤나무 밭이 있는 계안마을의 초가에서
광산구 안청동 495번지 외성당은 안촌安村 박광후朴光後(1637~1678)가 거처한 서실이다. 《광주읍지》(1879, 1924)에 따르면 주의 북쪽 30리에 있다. 박광후의 스승 우암 송시열이 쓴 ‘외성당’이라는 글씨가 현액되었으나 지금은 없다. 1930년대에 철거된 후 텃 자리에는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후에 아들 소은素隱
광주광역시 동구 오방정(五放亭), 지금은 춘설헌으로 이름이 바뀐 집이다. 증심사와 약사사를 올라가는 길 등산로 산 기슭 오른편에 있는 건물이다. 기존의 정자와는 다른 방 두짜칸짜리 집과 같다.이곳은 독특한 사연이 있다. 기독교 목회자, 독립운동가, 교육가, 한센병환자 구호사업가였던 최흥종崔興琮(1880~1966)이
동구 계림동 동계정/동계초당은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동쪽 10리에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등촌(登村)마을은 청풍이라는 동이름 처럼 산수가 수려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 자연마을이다.등촌(登村)마을 골짜기 대밭골에는 1774년(영조 50년)에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사후에 증지
광산구 안청동옛 하남면 안청리, 광산구 안청동에 조선 후기의 문신 관어헌觀魚軒 박양동朴陽東(1829~1905)이 지어 지낸 정자이다. 안호(安湖) 박제방(朴濟邦)의 아들로, 아버지에 이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평소 성품이 너그러우면서도 엄격하였고 학문을 즐겼으며, 여러 후학을 가르치며 한
광주, 담양 등지에서 일제군경과 친일파를 응징한 김동수(1879∼1910)는 본관은 김해로 광주목 경양면景陽 병문리屛門 , 현 북구 우산동 283번지에서 태어났다. 처가는 중흥동 84-3번지이다.(후손 김홍두 증언) 그는 포목상과 농업에 종사하였다. 한말의 망국과정을 지켜보면서 의분을 품고 살다가 결국 의병을 주도한 전남의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양동시장 아주머니들이 시민군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주먹밥이 광주의 새로운 대표 음식으로 브랜드 굳히기에 나선다.광주시는 지난 5월 광주대표음식 및 올해의 음식으로 ‘광주주먹밥’이 선정된 이후 상품·브랜드화 작업을 추진, 광주주먹밥 시범 판매를 시작하면서
광주의 연극판도가 바뀔 수 있을까?아마추어 연극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광주시민연극제가 회를 거듭할수록 내용이 풍성해지고 연극무대도 짜임새가 있는 등 활발한 모습이다.지난 1일부터 9일까지 7개 극단이 광주시 서구 금호동 빛고을국악전수관 공연장에서 펼치고 있는 제5회 광주시민연극제는 예년과 달리 ‘광주’를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