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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이씨 족보(光山李氏族譜)》 서문〔光山李氏族譜序〕- 서형수

명고전집 제7권 / 서(序)

《광산 이씨 족보(光山李氏族譜)》 서문〔光山李氏族譜序〕


족보의 간행은 위진 시대 이후로 성행했다. 박학한 선비들이 왕왕 전문가가 되어 종족을 단합하고 풍속을 돈후하게 하여 사람들에게 근본을 잊지 않게 했다. 이는 본디 주관(周官) 소사(小史)가 하던 직무를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관직을 숭상하고 성씨를 숭상하는 폐단이 일어나 관직에는 대대로 물려받는 주손(胄孫)이 있고, 성씨에는 대대로 물려받는 관직이 있다. 나라에서는 왕실의 보첩(譜牒)을 간행하는 기관을 설치하고, 역사가는 씨족의 계보를 기록한 책을 전하였으니, 가보(家譜)를 만드는 것은 불필요하다. 족보 간행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자로 말하면 공물(公物)을 몰래 가로채어 개인의 사유물로 만든 것에 가깝지 않겠는가.

그러나 계보와 씨족의 역사는 가문에서 채록하고 전문가에게서 얻은 것이 아님이 없다. 가문과 전문가가 없다면 최씨, 노씨, 이씨, 정씨가 무엇을 근거로 원류를 상세히 밝힐 수 있겠는가. 문헌이 국사를 증명해주는 일에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의 풍속은 가문으로 우열을 다투어, 산동(山東)의 인척과 강좌(江左)의 인물, 관중(關中)의 벼슬을 아울러 숭상한다. 이 때문에 고관대작의 집안에는 예외 없이 족보가 있고, 전문가가 또 가첩(家牒)을 종합하여 전보(全譜)를 만든다.

내가 일찍이 여러 족보들을 읽어보니, 가학(家學)이 전해 내려오는 문헌고가(文獻故家)는 문장과 조행을 지닌 인물이 성대하였고, 정승과 목민관을 배출한 주문세가(朱門勢家)는 영화와 부귀가 혁혁하였다. 그러나 몇 세대가 채 되지 않아 자후(子厚)가 순공(郇公)을 더럽히고 채경(蔡京)과 채변(蔡卞)이 단명(端明)을 욕보인 것과 같은 사례가 어느 집안이고 없는 집안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책을 덮고 “대대로 덕을 간직한다는 것이 이만큼이나 어렵구나. 어떻게 하면 시종일관 덕을 오롯이 지킨 집안의 족보를 구해 읽을 수 있을까?” 하고 탄식하였다.

올해 정사년(1797) 광주 목사로 내려와, 정무를 돌보는 여가에 즐겁게 고을의 수재들과 《예기》를 강독하였다. 하루는 이덕인(李德仁) 군이 그의 족보를 가져와 무릎을 꿇고 청하였다.

“광산 이문은 세상에 크게 현달한 집안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한과 벼슬이 오래전부터 대대로 이어졌으니 실로 한 지방의 명문입니다. 계보를 밝히고 소목(昭穆)을 서술하여 당세의 전문가에게 질정을 받으려 하니, 부디 선생께서 한 마디 말로 품평해주십시오.”

내가 족보를 읽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훌륭하다. 그대 집안의 족보여. 고려조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수백 년에 이르도록 덕으로 이름난 분도 있고, 높은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한 분도 있고, 절개가 있는 분도 있고, 공훈을 세운 분도 있어 농서 이씨(隴西李氏)에 부끄러운 불초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리 조선의 명문가에 드문 사례이다. 전문가로 하여금 이 족보를 편찬하게 한다면 불태워지지 않고 국사에 보탬을 줄 수 있으리란 것을 내 장담할 수 있다. 어찌 벌열가보다 못하겠는가. 속담에 ‘높은 벼슬을 이룰 수도 있고 명성을 널리 떨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대로 가학을 돈독하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였다. 힘쓸지어다. 이 족보가 숭상하는 것은 벼슬도 아니고, 성씨도 아니다. 바로 전래의 가학이다.”

이덕인이 수긍하기에 이윽고 써서 돌려보냈다. 이 글을 《광산 이씨 족보》의 서문으로 삼는다.

[주-D001] 광산 이씨 족보(光山李氏族譜) 서문 : 

【작품해제】 저자는 1796년(정조20) 7월에 광주 목사(光州牧使)로 부임하여, 고을의 유생들과 《예기》를 강독하였다. 그러던 중 이덕인(李德仁)이라는 사람의 부탁을 받아 1797년에 이 글을 써주었다. 보학과 서지학에 관해 전문적 정보는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를 참고한 듯하다.

[주-D002] 족보의 …… 것이다 : 

족보의 기원은 하ㆍ은ㆍ주 왕실의 계보를 기록, 정리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주례》 〈소사(小史)〉에 “소사는 나라의 기록을 관장하여 세계를 정하고 소목을 밝힌다.[小史掌邦國之志, 奠系世, 辨昭穆.]”라고 한 기록이 그 실상을 보여준다. 이후 후한에서 위진(魏晉)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가(世家)와 대족(大族)의 가족 제도가 형성되면서 족보의 편찬이 본격화되었다.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는 집안을 일으킨 대표 인물의 전기를 모아놓은 가전(家傳) 형태이다. 대표적으로 《순씨가전(荀氏家傳)》, 《원씨가전(袁氏家傳)》 등이 있다. 둘째는 한 가문의 계보를 정리한 단성(單姓) 족보이다. 대표적으로 《완씨보(阮氏譜)》, 《곽씨보(郭氏譜)》, 《원씨세기(袁氏世紀)》, 《왕씨가보(王氏家譜)》 등이 있다. 셋째는 국중의 망족(望族)을 집대성하여 만든 백가보(百家譜) 류이다. 대표적으로 《백가보(百家譜)》, 《십팔주보(十八州譜)》, 《천하망족보(天下望族譜)》 등이 있다. 특히 서진에서 남북조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문벌의 고하가 요직으로 진출하는 중요 근거가 되었기 때문에 대를 이어 보학에 필생의 노력을 기울이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위진남북조 시대의 가필지(賈弼之), 가비지(賈匪之), 가연(賈淵) 3대와 왕승유(王僧孺) 일가를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보학과 족보 간행이 크게 성행했다. 첨언하자면 보학이 발달하고 족보 간행이 성행하게 된 데에는 새로운 문벌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물론 있었다.

[주-D003] 관직에는 …… 있다 : 

특정 성씨는 특정 관직을 세습하는데, 그 관직은 장손에게로 승계된다는 의미이다. 이로 인해 관직명이 성씨로 정착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사마씨(司馬氏), 사공씨(司空氏), 사도씨(司徒氏), 윤씨(尹氏)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문장은 당나라 유방(柳芳)의 〈성계론(姓系論)〉에 “관직은 대대로 이어받는 주손이 있고, 보학은 대대로 전담하는 세관이 있다.[官有世胄, 譜有世官.]”라고 한 것을 변용한 표현이다.

[주-D004] 나라에서는 …… 설치하고 : 

왕실의 세계와 계보는 종부시(宗簿寺)에서 관장한다. 도제조(都提調)는 2인으로 종실(宗室)의 존장이 맡는다. 《大典會通》

[주-D005] 역사가는 …… 전하였으니 : 

앞 시대 왕조의 역사서를 정리하는 사관(史官)들은 주요 인물들에 대해 가문 단위로 열전을 편찬하여 해당 인물의 가계를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정사의 경적지(經籍志)나 예문지(藝文志)나 총서류의 예문부 등에도 족보 및 총보류의 서적을 정리, 소개하였다.

[주-D006] 조선의 …… 숭상한다 : 

이 부분의 문장은 중국의 속담에 “산동 지방 사람들은 질박하기 때문에 인척을 숭상하니, 미더움을 인정할 수 있다. 강좌 지방 사람들은 문아하기 때문에 인물을 숭상하니, 지혜로움을 인정할 수 있다. 관중 지방 사람들은 호방하기 때문에 벼슬을 숭상하니, 현달함을 인정할 수 있다.[山東之人質, 故尙婚婭, 其信可與也; 江左之人文, 故尙人物, 其智可與也; 關中之人雄, 故尙冠冕, 其達可與也.]”라고 한 것을 인용한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인 관계와 인물과 벼슬을 모두 중시하기 때문에 가문의 우열을 더더욱 따지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자연히 족보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주-D007] 가학(家學)이 …… 성대하였고 : 

원문의 청상(靑箱)은 뛰어난 자제가 가학을 잇는 문헌가(文獻家)를 상징하는 말이다. 《송서(宋書)》 권60 〈왕준지열전(王准之列傳)〉에 “증조 왕표지(王彪之) 때부터 집안 대대로 강좌(江左) 지방의 고사에 정통하여 사실(史實)을 푸른 궤[靑箱]에 넣어 대대로 전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왕씨 청상학(王氏靑箱學)’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다.

의문(義門)은 대대로 가문의 전통을 고수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유서 깊은 고가(故家)를 상징하는 말이다. 절강(浙江) 지방의 고가인 사인(士人) 정만습(鄭萬習)의 집안은 9대가 함께 살았다. 한 집안의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르면서도 화목하기 그지없기에 천자가 그 집안의 문에 정려를 세워 ‘의문(義門)’이라 했다. 《孤臺日錄》

[주-D008] 자후(子厚)가 …… 사례 : 

자후는 장돈(章惇, 1035~1106)의 자로 건주(建州) 포성(浦城 지금의 복선성) 사람이다. 순공(郇公)의 후예라는 설이 있고, 먼 일족의 족항이라는 설이 있다. 순공을 욕보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일을 추측할 수 있다. 먼저 하나는 장동이 진사시에 응시하러 경사에 올라와 순공의 집에 머무를 때 그의 첩과 사통하다 들통이 났다는 이야기로, 사마광의 《온공쇄어(溫公瑣語)》에 실려 있다. 둘째는 장돈이 순공의 후예라는 《오중기문(吳中紀聞)》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장돈이 말재주와 아첨으로 장순(張峋)의 천거를 받아 왕안석(王安石)에게 중용되고 그로 인해 뒷날 목주(睦州)로 유배 가 죽은 것이 결과적으로 순공에게 욕을 끼친 것이 된다.

단명은 송나라 채양(蔡襄, 1012~1067)을 가리킨다. 자는 군모(君謨), 호는 보양거사(莆陽居士)로, 19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가 되었으므로 흔히 채 단명이라 불린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채경과 채변은 모두 채양과 같은 집안의 사람이고 채양에게 글씨를 배웠다. 그러나 뒤에 간신이 되어 정권을 농단하고 재물을 착취하여 간신과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되어 채양의 이름에 먹칠하였다.

본문의 표현은 “자후는 못된 행실로 순공을 더럽혔고, 채경과 채변은 간사함으로 채 단명의 명성을 빌렸다.[子厚無行, 有玷郇公; 京卞憸人, 借名端明]”라고 한 《만성통보(萬姓統譜)》에 실린 문장을 변용한 것이다. 《만성통보》의 이 말은 명나라 능적지(凌迪知, 1529~1600)의 《씨족박고(氏族博攷)》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이다. 《만성통보》는 18세기 이전 시기 어느 때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저술한 《해동역사(海東繹史)》의 인용 서목에도 그 이름이 보인다.

[주-D009] 정사년 : 

정조 21년으로 저자의 나이 49세 때이다.

[주-D010] 농서 이씨(隴西李氏) : 

이씨 성을 가진 모든 가문이란 의미이다. 중국에서는 “천하의 이씨는 모두 농서를 본으로 한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농서 이씨의 시조는 노자(老子)라고도 하고, 이백의 선대 세거지가 농서이기 때문에 이백을 농서 이씨라고도 한다. 농서는 중국의 감숙성(甘肅省)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이래 농서 이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으레 이씨를 농서 이씨에 비겨 불렀다. 또 당나라 왕실이 농서 출신에 성이 ‘이(李)’이기 때문에 조선 왕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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