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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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 중건기〔藥師庵重建記〕 - 운양속집
서구문화원
날짜 2020-12-31 12:58
약사암 중건기〔藥師庵重建記〕 - 운양속집 제3권 / 기(記) : 김윤식(金允植, 1835~1922)
옛날에 서석산(瑞石山)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약사암(藥師庵)이다.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부서진 집 몇 칸만이 남았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 학산 선사(鶴傘禪師)는 젊어서 사방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명산 고찰(古刹)에 발자취가 두루 미쳤다. 이윽고 중생 제도에 지쳐서 조용히 쉴 만한 궁벽한 장소를 얻어 편히 앉아서 도를 닦으려고 생각했다.
이러하던 차에, 약사암 옛터를 보고는 흔연히 마음에 들어 “여기라면 노년을 마칠 만하다.”라고 말하고는 마침내 그곳에 머물렀다. 군(郡)의 신사(紳士)와 원근의 시주들 중 선사의 풍모를 사모하는 자들이 다투어 재물을 바쳐 약사암 건축 비용을 도왔다. 이에 기와 조각과 자갈을 쓸어 제거하고 다시 기초를 다지니, 새 날개처럼 날아갈 듯한 용마루며 길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 풍경소리며, 의젓한 한 구역의 사찰이 되었다. 마침내 암자의 공사가 끝나자 선사께서 내게 청하여 글을 써 기록하게 하고 이를 산중의 고실(故實)로 전하려고 했다.
내가 말하기를 “지난날 경신년(1860, 철종11) 가을에 서석산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그 꼭대기에 올라가서 이백(李白)의 시 〈낙안봉(落鴈峯)〉을 큰 소리로 읊고는 산중의 장관이 여기에 다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약사암이 어디 있는지 몰랐는데, 지금 60년 후에야 비로소 그 이름을 들었고 또 우리 선사께서 차지하셨습니다. 사물이 드러나고 감춰지는 것과 땅이 참 주인을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각각 그 때가 있습니다. 이로부터 암자의 이름이 이 나라에 알려질 것이니, 이 어찌 땅이 사람으로 인해 드러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암자에서 바라본 경치에 대해서는 내가 상세하게 말할 길 없지만, 삼황봉(三皇峯)의 소탈하고 깨끗하고 맑고 탁 트인 모습과 입석대(立石臺)와 광석대(廣石臺)의 빼어나고 우뚝한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삼삼한 게 잊혀지지 않는다. 암자가 그 사이에 있다니, 분명 온갖 아름다움을 다 끌어 모아 온 산의 승경을 독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기를 지으니, 초당(草堂)의 신령들이여, 부디 낯선 사람이라고 내치지 말기를!
- [주-D001] 서석산(瑞石山) :
-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의 옛 이름이다.
- [주-D002] 약사암(藥師庵) :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무등산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여래좌상이 보물 제60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주-D003] 학산 선사(鶴傘禪師) :
- 함명 태선(涵溟 太先, 1824~1902)이 지은 〈무진주 무등산원효암중수상량문(武珍州無等山元曉庵重修上樑文)〉에 의하면 1894년 학산 대사(鶴傘大師)가 관청에 호소하여 100금의 재력을 시주받고 고을의 유지들의 도움으로 원효사(元曉寺)를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주-D004] 중생 제도에 지쳐서 :
- 원문의 ‘진량(津梁)’은 중생을 제도(濟渡)함을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 “유공(庾公)이 일찍이 불도(佛圖)를 들여왔는데 와불(臥佛)을 보고 말하기를 ‘이 부처는 진량에 피곤했구나’라고 했다”고 했다.
- [주-D005] 머물렀다 :
- 원문의 ‘탁석(卓錫)’은 석장(錫杖)을 꽂는 것으로, 승려가 머무는 것을 말한다.
- [주-D006] 낙안봉(落鴈峯) :
- 섬서성 화산(華山)의 남봉(南峰)이다. 《화산지(華山志)》에 “이백(李白)이 낙안봉에 올라 말하기를 ‘이 봉우리가 가장 높은데 호흡하는 기가 상제(上帝)의 좌석에 닿을 것 같다. 사조(謝朓)의 경인시(驚人詩)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한스러운데, 머리 긁적이며 푸른 하늘에 물어볼 뿐이다’라고 했다”고 했다.
- [주-D007] 삼황봉(三皇峯) :
- 무등산의 천황봉(天皇峰), 지황봉(地皇峰), 인황봉(人皇峰)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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