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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정엄) 묘지명 병서〔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贈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鄭公墓誌銘並序〕 - 성재집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증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정공 묘지명 병서〔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贈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鄭公墓誌銘並序〕 - 성재집 제41권 / 가하산필(柯下散筆) :  유중교(柳重敎, 1832~1893)


부인은 경주 김씨이며,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6세손이다. 고(考)는 김연(金堧)으로 목사(牧使)이다. 아들 하나와 딸 넷을 두었다. 아들 참봉 김대신(金大伸)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딸 넷은 각각 첨정(僉正) 박동언(朴東彦), 봉사 박선(朴瑄), 통사랑(通仕郞) 정민구(鄭敏求), 선교랑(宣敎郞) 기효맹(奇孝孟)과 혼인했다. 김대신의 양자〔系子〕 황(韹)은 선교랑(宣敎郞)에 올랐다. 박동언의 양자〔系子〕 황(潢)은 대사헌을 지냈고, 딸은 승지(承旨) 오익(吳翊)과 혼인했다. 박선의 아들 시영(時英)은 진사(進士)가 되었다. 기효맹의 아들 징헌(徵獻)은 봉사를 지냈다. 증현손 이하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공의 묘소는 광주(光州) 무등산 간좌(艮坐) 언덕에 있으며, 부인은 부좌(祔左)했지만 봉분은 달리했다. 이전에는 묘지명이 없었다. 금상 경진년(1880, 고종17), 공의 몇 대손 정인직(鄭寅直)이 여러 부형의 명을 받고 와서 중암 김평묵 선생에게 신도문(神道文)을 청하고, 또 중교에게는 묘지명을 써 달라고 부탁했는데 뜻이 매우 간절했다. 생각해 보니, 공은 이른 나이에 이름이 나서 밝은 시대를 만나 직언(直言)과 혜정(惠政)으로 위아래에서 신임을 받았다. 저렇듯 혁혁하니, 금석(金石)에 새겨 후세에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면, 또한 효를 근본으로 하고 배움을 바탕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더욱 귀하다. 안타까운 점은 수명이 길지 못하여, 살아계실 때 그가 쌓은 것을 모두 펼치지 못했고, 또 돌아가신 후 두 번이나 병란을 겪으면서 문적(文籍)이 산일되어 버린 것이다. 사우와 강학한 것은 후학에게 은택이 되어야 하지만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하나 공에게 어떤 흠이 되겠는가? 묘지명은 다음과 같다.


공은 평소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밤 늦도록 의관도 벗지 않았다. 또 손수 약을 달이고, 변을 맛보고,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복상 중에는 상복을 벗지 않고 피눈물을 흘렸으며, 지나치게 슬퍼한 나머지 여위어 이듬해 죽었다. 이 날이 경진년(1580, 선조13) 12월 3일이며, 향년 쉰 셋이다. 돌아가실 때, 부인이 직접 영결(永訣)하고자 했으나 예(禮)에 따라 거절하고, 이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임금 은혜를 갚지 못하고, 어머니 상을 마치지 못해 몹시 안타깝다.” 32년 후, 신해년(1611, 광해군3) 조정은, 문충공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상소에 따라 그 마을에 정표를 하고 사헌부 대사헌에 추증했다.


임자년(1552, 명종7), 생원시 장원, 진사시 제3등으로 뽑혔고, 무오년(1558, 명종13),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에 보임되었으며, 예문관 검열(藝文舘檢閱)과 대교(待敎)에 천거되었다. 얼마 후,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이조랑(吏曹郞), 삼사(三司)의 차관을 역임했다. 갑자년(1564, 명종19), 유연(柳淵)의 옥사가 있었는데, 애매한 사건으로 유연이 죽게 되었다. 공은 당시 장령(掌令)으로서 굽은 옥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항언(抗言)했는데, 그 풍채가 온 조정을 압도했다. 얼마 후, 여산 부사(礪山府使)로 나갔다. 관리와 백성은 그의 어진 정치를 마음에 품고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만력(萬曆)연간 계유년(1573, 선조6)에 남원 부사(南原府使)가 되었으며, 치적이 으뜸이었다. 임금은 특별히 정옥(頂玉)을 하사하고 친서〔璽書〕를 내려 위로했으며, 아울러 이전에 어사대에서 홀을 바로잡고 직언했던 일을 포상했다. 갑술년(1574, 선조7),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임명되었으나, 부모의 노환으로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조정은 그가 사는 곳을 살펴 나주 목사(羅州牧使)에 임명했는데, 부모를 편히 봉양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무를 맡고 풍년이 들어 은혜가 아래까지 미쳤다. 어머니 상을 당하자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통곡하며 전송하는 자가 끊이지 않고 길에 이어졌다.


공은 휘(諱)가 엄(淹), 자가 문중(文中), 자호가 양촌(楊村)이다. 정씨(鄭氏)의 본은 전라도 광주이다. 먼 조상은 고려 문하찬성사 정신호(鄭臣扈)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정귀진(鄭龜晉)이 이조 참의로서 예조 판서에 추증되었는데, 문장을 잘 지어 그 이름이 《동국문선(東國文選)》에 올랐다. 이 분이 공의 5세조이다. 고조는 정지하(鄭之夏)이며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관은 사헌부 장령에 올랐고, 이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증조는 정계우(鄭繼禹)이며 진사가 되었지만 덕(德)을 수양하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품자(品資)는 수의교위(修義校尉)이며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조(祖)는 정윤적(鄭允績)이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고 이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고(考)는 정만종(鄭萬鍾)이며 호가 조계(棗溪)이다. 문장에 뛰어났고 재주가 뛰어나고 그릇이 컸으며 문과(文科)에 급제했다. 예문관 검열(藝文舘檢閱)에 제수되고 호당(湖堂)에 선발되었으며, 내직(內職)으로는 네 조(朝)의 참판을 역임했고, 외직(外職)으로는 팔도 관찰사를 모두 지냈다. 비(妣)는 정부인(貞夫人) 안동 권씨이며 승의랑 승금(承金)의 딸이다. 공은 그의 셋째 아들이다. 가정(嘉靖) 7년 무자년(1528, 중종23)에 태어났다.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어, 두 형을 사우(師友)로 삼아 공부에 힘쓰고 행실을 닦았다. 자라서, 당시 명사(名士)와 함께 사귀었는데 눌재 박상(訥齋 朴祥),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제봉 고경명(霽峰 高敬命),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이 그의 평생 지기(知己)이다. 호남(湖南)에 살 때부터 그 명성이 서울에까지 자자하여, 사람들은 모두 그가 상경하기를 기다렸다.



조정에 들어가 홀(笏)을 꼿꼿이 세우면 / 入而正笏
노종도(魯宗道), 조변(趙抃)의 풍모가 있고 / 有魚頭鐵面之風
외직에 나가 백성을 다스리면 / 出而鳴琴
소부(召父)와 두모(杜母) 같은 은택이 많았다네 / 多召父杜母之惠
이에 선조대왕(宣祖大王)의 두 말을 새기니 / 勒玆聖祖之兩言
영원히 증명할 수 있으리라 / 足徵我公於百世


[주-D001] 호당(湖堂) : 
문신 가운데 문장이 뛰어난 사람에게 휴가를 주어서 오로지 학업을 닦게 하던 서재(書齋). 1426년(세종8)에 시작되었고, 그 후 1515년(중종10)에 동호(東湖) 북쪽 기슭, 즉 지금의 두모포(豆毛浦)에 창설하였는데, 이때부터 ‘호당’이라 일컬었다. 독서당(讀書堂)이라고도 부른다.
[주-D002] 유연(柳淵)의 옥사 : 
유연이 그의 형 유유를 죽였다고 하여 일어난 옥사(獄事)이다. 당시 사안이 애매했는데, 달성령(達城令) 김지(金禔)가 채응규(蔡應圭)를 유유(柳游)라고 하여 그 아우 유연(柳淵)을 죽였다. 이후 김지는 자신의 죄를 승복하였다. 이항복은 유연을 위해 《유연전(柳淵傳)》을 짓기도 했다.
[주-D003] 거사비(去思碑) : 
지방관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하여 그 지방 백성들이 세운 공덕비이다.
[주-D004] 정옥(頂玉) : 
당상관(堂上官)의 조관(朝冠)에 매다는 옥관자(玉貫子)를 말한다.
[주-D005] 노종도(魯宗道) : 
성품이 강직하여 바른말을 잘했는데, 귀척 대신이 그를 꺼려하여 ‘어두참정(魚頭參政)’이라 불렀다. 이 말은 그의 성(姓)인 ‘노(魯)’ 자의 머리에 ‘어(魚)’ 자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 낸 말이다. 《宋史 卷286 魯宗道列傳》
[주-D006] 조변(趙抃) : 
중국 송(宋)나라 때 구주(衢州) 서안(西安) 사람이다. 자는 열도(閲道)이다. 송나라 인종(仁宗) 때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있으면서 권세가나 황제의 총애를 받는 사람까지도 거리낌 없이 탄핵하였으므로 철면어사(鐵面御史)라는 칭호를 얻기도 하였다. 그가 촉(蜀) 지방에 들어갈 때 거문고 하나, 학 한 마리를 가지고 가서 간이(簡易)하게 정치를 했다고 한다. 《宋史 卷316 趙抃列傳》
[주-D007] 백성을 다스리면 : 
원문은 ‘명금(鳴琴)’이다.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자천(子賤)이 선보(單父)에 수령(守令)이 되어 가서 거문고를 타면서 백성을 다스린 고사가 전한다.
[주-D008] 소부(召父)와 두모(杜母) : 
한나라 때 인물을 빗대어 지방 장관의 선정(善政)을 비유한 말이다. 전한(前漢)의 소신신(召信臣)과 후한(後漢)의 두시(杜詩)가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다 같이 덕정(德政)을 베풀었으므로 남양 백성들이 “앞에는 소부가 있고 뒤에는 두모가 있다.〔前有召父 後有杜母〕”라고 칭송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89 循吏傳 召信臣》;《後漢書 卷31 杜詩列傳》
[주-D009] 이에 …… 새기니 : 
선조(宣祖)는 남원 부사 정엄의 치적을 기리면서, “入而正笏 有魚頭鐵面之風 出而鳴琴 多召父杜母之惠”라는 글을 내려 표창했다. 《重菴集 卷46 楊村鄭公淹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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