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묘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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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菴先生集 卷三十一 / 墓碣[一]
이재(李縡, 1680~1746) 숙종6년~영조22년
장령 최공의 묘갈명
이재(李縡)가 짓다 ― 『도암선생문집』 권31, 「묘갈(一)」
옛날 연산군 시대에는 사화(士禍)가 극심하여, 한때의 현인과 군자들이 무차별하게 제거되고 베어졌으니,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통탄할 만하다.
나는 예전에 호남 출신 유생들과 교류하며, 신참봉 응순(辛參奉 應純)이 편찬한 자료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장령 최형한(掌令 崔亨漢)은 경주(慶州) 사람으로, 생원 최영원(生員 永源)의 둘째 아들이다. 연산군이 무도하고 방탕하던 시절, 그는 직언을 감히 올리고 궁궐 아래에서 명을 기다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분이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최공이 시대를 잘못 만나 충정을 품고 억울하게 죽은 것을 마음 아프게 여긴다. 하지만 당시 실제 사정을 가장 정확히 기록한 것은 《무오당적(戊午黨籍)》인데, 거기에도 최공에 대한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혹시 그가 죽은 일이 무오사화 이전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점은 단정할 수 없다.
최씨 집안의 가승(家乘, 족보)은 병화(兵火)로 모두 소실되어, 선배 문인들의 글 속에 일부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최공은 성화 경자년(1480)에 진사가 되었고, 그로부터 4년 뒤인 계묘년(148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복상을 마친 뒤 관원 추천으로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었으며, 사신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옥과현감에 제수되었고, 이어 영암군수로 부임하였다가, 다시 조정으로 들어와 장령(掌令)이 되었다.
이것이 최공의 관력(官歷)이다. 옥과현감으로 부임할 당시, 조정에서는 그의 하향을 안타까워하였다. 이때 탁영 김일손(金馹孫)이 ‘송최옥과서(送崔玉果序)’를 지어 보냈고, 거기서도 그의 문학이 뛰어나고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다고 칭송하였다.
최공은 광주에 세거하였으며, 고을 서쪽 건지산(巾之山) 자락에 조상의 묘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집과 겨우 한 길(1리) 떨어진 곳에 정자를 짓고 ‘영사(永思)’라 이름 붙였으며, 《성용재기(成慵齋記)》에는 그의 효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그는 한 시대의 문인·관료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독 죽음에 이르게 된 사연에 대해 믿을 만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아, 옛사람들은 임금에게 간언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물러나거나, 직위 아래에서 죽음을 택하곤 하였다. 혹은 분노와 울분으로 뜻을 펴지 못해 자결로 그 뜻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최공은 물러나지도 못했으니, 그의 죽음은 이 두 경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올린 직언의 내용이나 죽음의 구체적 방식(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약을 복용했는지 등)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런 일은 마땅히 국사 편찬자가 상세히 기록해야 할 일이며, 후세 사람들이 이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후대에서 알든 모르든, 그것이 최공의 진실한 삶의 가치에 무슨 손상이 있겠는가?
掌令崔公墓碣
往在燕山之世。士禍罔極。一時賢人君子。芟刈斬伐。殆不可勝記。至今思之。可爲於邑。余從湖南士友。得辛參奉應純所爲輯錄者讀之。有曰掌令崔亨漢。貫慶州。生員永源之第二子也。燕山荒淫無度。乃敢抗直。待命闕下。遂自盡焉。公卽其人也。余竊悼公遭時之不幸。懷忠掩抑而死。然當時事實。莫詳於戊午黨籍。而公則無少槪見。豈公之死。在於戊午之先歟。是未敢知也。崔氏家乘。盡逸於兵燹。惟得於先輩文字者。略有可据。蓋公成化庚子進士。越四年癸卯及第。連喪二親。服闋始由館薦拜司憲府監察。充書狀朝燕。比還出監玉果縣。旋授靈巖郡守。入爲掌令。是公履歷。而其赴玉果也。朝廷咸惜其去。濯纓金公馹孫作序以將之。謂公文學優贍。引重甚盛。公世居光州。州之西巾之山。親墓在焉。去家纔一里。公作亭於其側。名曰永思。成慵齋俔爲記文。稱道其孝。公之見推於一代名士大夫者如此。而獨恨夫致命一事。無足以考信者。嗚呼。古之人諫於其君。而不聽則去。否則死於職下。又往往憂憤鬱塞。無以見其志。則寧引决以自快焉。公旣不能去。則其死也。固不出於斯二者矣。然其抗直之辭。不可得以詳。而况所謂自盡者。或引敺或仰藥。其事不一。則不知公所處。又果如何也。是則國史氏必有大書特書者。後之人當自知之。然知不知。於公亦何加損焉。公字倬卿。其先自麗朝政丞雞林府院君光位始。其後孫潞中領郞將。郞將之子仲濟縣監。輯錄所稱生員。其子也。公外祖曰生員陰城朴繼陽。公娶靈光金氏。郞將孝本之女。三男三女。男長彥漴生進兩試。次彥泓進士。次彥冲生員。女爲進士宋驌,參奉丁需,參奉張俔妻。彥漴男松年文科縣監。彥泓男栢年部將。春年參奉。彥冲男應期,應世,應時。張壻之子以吉司諫。三房子孫甚蕃。而俱以儒業承家云。公之墓亦在巾之山。八世孫進士洛及沃。來請樹隧之文。余謂公之事迹。固微而不章。而乃其心則蓋所謂天理民彝之不可泯者。理必終顯於世。盍少遲之。洛作而言曰。雖然。願且得子之言以眎諸後也。余不能辭。銘曰。
我聞濯纓。節行之士。餘事文章。闊步高視。而獨於公。引重若是。聲氣之同。孰疑其死。百世之後。請徵國史。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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