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알려드리는 다양한 문학/책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 전남의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소식과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방하동(芳河洞), 거기는 꽃다운 강물이 흐르고
오소후
아버지 눈썹 같은 구름을 따라 걸었다
한 계곡을 지나자 난향에 취해 견딜 수 없었다
또 한참 후
어머니 젖가슴 같은 둥근 구릉을 지났다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향기
거기서, 오래 머물며 주저했다
내 풍류의 도가
저 향기의 강물처럼 멈추지 않고 흐를 것인가
의문당(疑問堂)
그 앞에서 서서 오래 그윽하게 머물며 주저했다
희고 붉은 들국화꽃길을 걸으며 본다
쓸쓸한 바람이 꽃이파리를 쉼 없이 흔든다
팔랑팔랑 떨어져 내리는 꽃나비들
온 곳이 있으니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인가
정녕 돌아가 향기를 모으며 쉴 곳이 있는가
꽃다이 핏물이 번지던 나의 육신도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던 나의 열정도
이 가을
텅 빈 채 병든 쌍골대마냥
남의 눈 피해 잘리지 않고 살아 서있다
이제는 소리를 내야 한다
만파식적의 그 소리를 빼닮은 소리로
달빛을 타고 한을 해원하고
지극한 그 한 소리가 선계에 이르러야한다
저기 꽃다이 흐르는 방하동
그 실개천이, 냇물이 극락강에 이르러
소리치며 때론 침묵하며 흐르고 있지 않는가
‘높고 맑고 쓸쓸하고 황홀하게’
/광주시문학 2018
*방하동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의 옛지명. 눌재 박상의 집안이 광주에 정착하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대(代)부터다. 성균관 진사를 지낸 부친 박지흥(朴智興)은 처가의 향리 인근인 방하동 봉황산 아래에 닻을 내리면서 눌재가 태어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마을 앞에 상당히 규모가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 못에 가득히 연꽃이 만발하여 꽃향기가 이 일대를 뒤엎어 조선시대말까지 방하동(芳荷洞)이라 하였다. 이후 일제 시대에 접어들어 마을명을 한자식으로 정비할 때 사동(寺洞)으로 고쳤다)
시작노트
절골만 가면 행복했다. 산세가 낮으막했지만 시낭송지도를 하거나 산책을 하고 싶을 때는 절골에 들어섰다. 한적한 기운이 바쁘게 사는 사람을 이끈 것일까. 그 당시 감히 눌재 박상이 태어난 곳이라는 정보는 접해본 적도 없었다. 강천사 삼인대 박 상, 송호영당의 박상, 갈재의 고양이 이야기 묘답, 용아 박용철 시인 모두 따로 따로 블록 조각처럼 쌓아두고 있었다. 이제 비로소 그 조각들을 맞추고 꽃향기를 깊이 들이 마신다. 김형미시인이 서창답사팀에 촌강을 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 시간 특강이 방하동을 더 자세히 알도록 했다. 눌재로에 달빛이 쏟아진다. 눌재의 시는 따뜻하다. (소후)